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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로 영화의 기승전결

[기타] 한국 에로 영화의 기승전결

[글. 영화평론가_김형석] ? - 조짐, 호스티스 영화와 토속 영화 ? <영자의 전성시대>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충무로에 ‘성인물’, 즉 ‘에로티시즘 영화’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82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조짐은 있었다. 심의와 검열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지만, 196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시도되었던 에로틱한 표현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를 통해 조금씩 그 수위를 높여갔다.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과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쏟아지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여성의 운명을 담보로 펼쳐지는 인생 역정 드라마였다. 이 영화들은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여성의 육체에 짐 지운다. 변장호 감독의 (1978)는 그 전형이다. 주인공은 관광회사 안내원이었지만 아버지의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호스티스가 된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거쳐가며, 이 과정에서 여자는 무정한 남자들 틈에서 상처만 입는다. 두 번째 조짐은 <애마부인> 이전에 등장한 ‘토속 영화’였다.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던 이 영화들은 1960년대부터 지속되었던 ‘문예 영화’, 즉 문학적 가치가 높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과 에로티시즘의 결합이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정진우) <산딸기>(1982. 김수형) 등이 대표적인데 이 영화들 역시 여성의 육체에 가학적이라는 점에서 호스티스 영화와 궤를 같이 했다. ? ? - 시작, <애마부인>과 <변강쇠> ? <애마부인>과 <변강쇠> ?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를 시기 구분해본다면 기승전결의 구성이 가능하다. ‘기’(起)에 해당하는 1981~84년은 앞에서 언급한 토속 영화가 등장하고 <애마부인>으로 남한 사회에 거센 에로의 물결이 불기 시작한 기간이다. 여기엔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의 우민화 전략인 ‘3S 정책’(섹스, 스크린, 스포츠)도 크게 한몫 했다. 5공화국은 자신들의 정당하지 못한 정체성을 무마하기 위해 통금을 없애고,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으며, 컬러 TV 시대를 열었다. 강요된 화려함의 시기였다. 이때 영화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발판이었으며, ‘최초의 심야 상영’ 영화였던 <애마부인>은 섹스와 스크린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던 1980년대 초 한국영화를 확실한 에로티시즘의 왕국으로 끌어들였다. 사실 <애마부인>은 모순적인 영화였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 성적 욕망에 대한 표현만큼은 분명 이전 시대와 단절된 지점이었다. 여성의 욕망은 더 이상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같은 해에 나온 <빨간 앵두>(1982. 박호태)도 기억할 만하다. <애마부인>과 <빨간 앵두>는 ‘유부녀의 억눌린 욕망’이라는 주제를 끌어들이며 1980년대 에로 영화를 이끌었던 쌍두마차로, 이후 비디오 영화 시기까지 긴 시리즈로 이어졌다. 염재만 원작의 <반노>(1982. 이영실)는 1980년대 초기 에로의 이색지대다. 이 영화는 거미줄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여성의 강력한 성욕을 다루는데, 이 영화의 유산은 이후 <색깔 있는 남자>(1985. 김성수) 같은 ‘팜므파탈 에로’로 이어진다. 이 시기를 마무리하는 영화는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이장호)였다. 정신분열증적 상황을 통해 여성의 뒤틀린 욕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당대의 파격이었던 이 영화는 한때 소프트코어 포르노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5~86년은 기승전결의 ‘승’(承)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사극 쪽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영화는 <어우동>(1985. 이장호)과 <변강쇠>(1986. 엄종선)와 <뽕>(1986. 이두용)이었다. <어우동>은 사극과 에로티시즘의 결합이 엄청난 흥행력을 지닐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다. 왕과 사대부를 농락했고 신분과 계급을 넘나들었던 여인 어우동. 사실 이 영화는 당시로선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지닌 영화였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에로 영화’라는 레이블로 이뤄졌다. <뽕>은 앞에서 언급한 토속 영화의 흐름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잘 버무린 코믹 에로 사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사극 장르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변강쇠>다. ‘변강쇠’ 이대근과 ‘옹녀’ 원미경이라는 완벽한 조합을 바탕으로, 이 영화는 당대 에로 사극의 관습과 트렌드를 확립했으며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낳았다. 특히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 옹녀는, 에로 사극의 중심 캐릭터였던 ‘수절하는 과부’에서 벗어나 이 시기 에로 영화의 여성 캐릭터 스펙트럼을 한 뼘 정도 넓혔다. ?? - 번성, 비디오 영화의 등장과 <매춘> ? <매춘>과 <애란> ? 1987~88년은 한국 에로 영화가 양적으로 완전한 성숙기에 들어선, 기승전결의 ‘전’(轉)에 해당하는 시기다. 1980년대 전반기에 등장했던 <애마부인> <변강쇠> <빨간 앵두> <산딸기> <뽕> 등의 에로 흥행작들은 이 시기 우후죽순처럼 속편을 내놓았고, 거의 매달, 아니 매주 ‘에로 신작’이 개봉되었다. 신작이 등장한 건 극장가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IPTV로 넘어간 ‘에로 비디오 문화’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첫 비디오는 1988년에 나온 <산머루>. <산딸기>를 패러디한 제목이며, <자녀목>(1985. 정진우)의 제목을 변형한 <나녀목>(1988)도 등장했다. 에로 영화가 비디오 시장으로 서서히 영역을 이동했다는 건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한국에 VCR 보급률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데, 그러면서 좀 더 많은 영상 콘텐츠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 한 축을 에로 콘텐츠가 든든히 맡게 된 것. 유호프로덕션을 선두로 굴지의 ‘에로덕션’들이 1990년대에 등장하며 극장가에서 서서히 사라지던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통을 가정 속으로 가져왔다. 한편 1987~89년 한국 에로 영화는 조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양적 팽창의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전복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매춘>(1988. 유진선)은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매매춘이라는 한국 사회의 음지에서 이뤄지는 행태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사회파 에로’로 분류할 만하며, <어둠의 자식들>(1981. 이장호)와 맥이 닿는 작품이다(두 편 모두 나영희 주연이다). 1989년 이후 1990년대 초까지는 기승전결의 ‘결’(結)에 해당한다. 올림픽 전후로 다소 느슨해졌던 검열을 등에 업고 번성했던 극장용 에로 영화들은 급속히 비디오 시장으로 흡수되었고, 충무로에선 서서히 ‘에로 장사’를 접게 된다. 특히 1992년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른바 ‘기획 영화’의 흐름은 로맨틱 코미디와 모던 스타일의 액션에 초점을 맞추며 에로의 끈적끈적한 정서를 지워나갔다. 그럼에도 그 끝물인 1989년엔 몇 편의 인상적인 에로가 등장했다. <사방지>(1989. 송경식)는 겉모습은 여자이지만 남성의 물건을 지닌 ‘사방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중엔 거의 유일한 퀴어 시네마가 된다. <애란>(1989. 이황림)도 1980년대 에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마치 ‘한국판 <감각의 제국>’과도 같은 이 영화는 엑조티즘과 에로티시즘의 기묘한 결합이다. ? ? - 쇠퇴와 부활, IPTV 시장의 등장 ? <물 위의 하룻밤>과 <젊은 엄마> ? 사실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모든 것은 1980년대에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 시기 사극과 현대극을 아우르며 모든 에로 공식이 확립되었고, 비디오 영화를 통해 에로만의 마켓을 형성했다. 1990년대 말, 이승희를 내세운 <물 위의 하룻밤>(1998. 강정수)이나 심의 이슈로 화제가 된 <노랑머리>(1999. 김유민) 등이 있었지만 이미 멸종한 극장용 에로의 흐름을 잇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면 <젖소부인 바람났네>(1995)로 스타덤과 결합하며 빅뱅을 맞이한 에로 비디오 산업은 2000년대 초 미소녀 트렌드와 결합하면서 절정을 맞이했지만, 대여점 산업의 몰락과 함께 순식간에 파산했다. 이후 짧은 동영상 중심으로 모바일 등을 통해 유통되던 에로 콘텐츠는 IPTV 시장이 열리면서 다시 장편화 경향을 띠기 시작하며 부활한다. 그 기폭제 역할을 했던 작품은 공자관 감독의 <젊은 엄마>(2013). 이 영화의 흥행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에로 영화들의 양적 위용은 유호프로덕션과 한시네마타운과 클릭엔터테인먼트가 건재하던 시기를 방불케 한다. 1980년대 퀴퀴한 동시 상영관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한국의 에로 영화는 비디오를 거쳐 산업적 팽창을 겪었지만, 산업적 격변 속에서 21세기 극도의 침체를 겪다가 지금은 IPTV와 다운로드 시장에 둥지를 튼 상태. 담는 그릇은 계속 변했지만 그 도도한 흐름은 한 세대 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위 글은 위원회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작성일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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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이 있나요? <소공녀>

[칼럼] 당신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이 있나요? <소공녀>

2011년, 경향신문의 특별취재팀은 사회적,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채 사는 청년층을 ‘삼포세대’로 명명했다. 이 용어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곧 포기 항목을 늘린 ‘오포세대’, ‘칠포세대’ 등의 단어까지 유행시켰다. ‘삼포세대’에서 ‘오포세대’로 넘어갈 때 동시에 추가된 것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이 모여 사는 서울시의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은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 중 하나인 ‘집’(住), 즉 안정적으로 살아갈 울타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메뚜기처럼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하는 처지의 설움이 인간관계 포기, 즉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을 죽이는 것과 유사한 성격 혹은 비중으로 다루어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후 포기 항목에는 꿈, 희망, 건강, 외모관리 등이 추가되더니, 이제 다 헤아릴 수조차 없어 N(natural number)이라는 알파벳으로 표기하기에 이르렀다. 더러는 이 안에 ‘삶’까지 포함시키며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대기를 뒤덮지 않아도 우리 청춘들의 가슴은 충분히 답답하다. ? 지난 수년간 한국 독립영화는 이 절망적인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해왔다. <10분>(이용승),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족구왕>(우문기) 등이 2014년과 2015년 사이에 쏟아져 나왔고, <스틸 플라워>(박석영)와 <초행>(김대환) 등이 뒤를 이어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3월 22일 개봉한 <소공녀>(감독 전고운)는 이런 작품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캐릭터와 화법으로 눈길을 끈다. ? ? 대학을 중퇴하고 가사도우미의 길을 택한 ‘미소’(이솜)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처지다. 일당도 적고 일도 불규칙한데다 한 겨울의 반지하 월세방은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눌 수도 없을 만큼 춥고 낡았다. 궁핍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늘 우울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 만족감의 중심에는 착한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이 있고, 소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위스키와 담배가 있다. 이 세 가지는 N포세대인 미소가 감히 포기하지 않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자 그녀의 취향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 어느 겨울 날, 담배값과 월세가 한꺼번에 오르자 미소는 응당 집을 포기하고 나와 대학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그 때부터 영화는 미소가 스스로 ‘여행’이라고 부르는 떠돌이 생활을 통해 다섯 가지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같은 대학을 나왔고 함께 밴드 활동을 했지만, 몇 년이 흐른 후 멤버들은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가고 있다. 미소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 캐릭터와 가장 가깝냐고 물어오는데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무례하거나 폭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 ? 미소가 처음 찾아간 곳은 베이스를 치던 동기, ‘문영’이 일하는 대기업 빌딩이다. 점심시간에 손수 링겔을 꽂아가며 일할 정도로 성실한 직장인이 된 문영은 보증금을 모아 월세가 싼 곳을 얻어보겠다는 미소에게 ‘바람 든 것 같다’는 말로 응수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예민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잘 수 없다는 그녀에게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서 더 좋은 직장에 가겠다는 목표가 현재 가장 중요해 보인다. 대학 합격과 동시에 취업을 준비해온 세대들이라면 십분 이해할 만한 인물이다. ?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있는 ‘현정’은 미소를 뜨겁게 환영하지만, 시댁에 얹혀사는 처지로 손님을 들이는데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학창시절 키보드도 잘 치고 곡도 잘 쓰고 잘 놀고 잘 웃던 현정은 이제 시댁에서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남편과도, 시부모님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고 겉도는 그녀의 형편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미소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 이들에게도 그 자체가 위안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또 한 명의 인물이 후배, ‘대용’이다. 결혼한 지 8개월도 안 돼 이혼남이 된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던 그가 드디어 미소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들려주는 아파트 이야기는 재미있는 대사들로 가득 한 이 영화 안에서도 압권이다. 그는 결혼할 때 아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빚을 내서 산 아파트가 이제 20년 동안 꼼짝 없이 대용을 묶어두는 감옥으로 전락해버렸음을 고백한다. 그나마도 술병과 쓰레기로 가득한 더러운 감옥이다. 바로 앞 신(scene)에서 미소가 한솔에게 인생의 목표가 빚 없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이러한 대용과의 대화 중에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타인들이 으레 하고 있는 행위들을 미소는 그녀의 기준에 따라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타인과 구분시키고 자존감을 지킨다. ? 네 번째로 찾아간 ‘록이’의 집에서, 미소는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적당한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 록이에게 미소는 집은 없지만 자신에게도 생각과 취향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타협 같은 것은 그녀의 사전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소의 삶의 태도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재워준 ‘정미’에 의해 무참히 공격당하고 만다. 자기 취향이 아님에도 시부모님이 준 큰 집에서 아이와 남편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는 정미는 록이가 언급했던 안정감을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도 끊지 않으면서 남의 집 신세를 지는 것은 ‘염치’가 없고, ‘한심’하다며 미소를 비난한다. 정미가 후배를 쫓아내며 마지막으로 내미는 것은 따뜻한 말 한 마디 대신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다. ? 등록금이 비싸 대학을 중퇴했던 과거도, 가사도우미라는 직업도, 집이 없다는 사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꿋꿋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소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멤버들의 집을 떠날 때마다 그녀가 보여주는 개념 있는 행동들, 예의, 따뜻함과 배려는 그녀를 그저 멋진 N포세대의 한 사람이 아니라 성녀(聖女) 같은 존재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청소와 요리, 엽서 등을 통해 멤버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해고하기 직전인 술집 아가씨를 오히려 위로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미화는 다분히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장례식장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미소를 회상하는 장면은 마치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 안에서처럼 가공된 판타지적 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 타인들의 기억 속에 웃는 게 예쁘고, 밥을 잘하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고, 스타일이 멋있었던 미소는 집에 이어 인간관계도 포기해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위스키를 즐긴다. 친구들도, 고용주도, 남자친구도 떠나보낸 그녀가 위스키를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연출된 장면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한심해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허세로 보일지 몰라도 미소는 그렇게 우아한 자신의 취향을 끝까지 고집함으로써 팍팍한 사회를, 고된 인생살이를 버텨낸다. ? ‘소공녀’의 미덕 중 하나는 N포세대, 특히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에서 익숙히 보아왔던 사건이나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고운 감독은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행, 강간, 폭언과 욕설 등을 배제하고, 자극적인 영상 하나 없이 동시대 청춘들의 씁쓸한 자화상을 그리는데 성공했다. 어두운 시대를 끔찍한 사건들로 설명하기보다 주변에 있음직한 캐릭터를 유심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조명해낸 점이 훌륭하다. 주인공과 달리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전전긍긍 하는 인물들까지도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은 데서 신인감독답지 않은 여유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빚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누가 뭐래도 포기할 수 없는 취향 하나가 간절해지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 글. 영화평론가_윤성은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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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고뇌와 결단/영화 <더 포스트>

[칼럼] 세상을 바꾼 고뇌와 결단/영화 <더 포스트>

뉴욕타임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약칭한 제목의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감독과 배우 이름만으로도 기대치를 높인다. 세계영화사를 통틀어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온갖 주제와 장르를 넘나든 감독은 찾기 어렵다. 〈E.T>와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와 <마이 리틀 자이언트>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판타지를 곁들인 모험극을 선사한 엔터테이너이자 <쉰들러 리스트>와 <뮌헨>, <링컨>과 <스파이 브릿지>로 시대와 인간 탐구에 몰두한 리얼리스트. 스필버그 작품을 두고 피터팬 콤플렉스나 시오니즘을 지적하는 일은 부질없다. 4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며 유일한 취미가 영화 감상이라는 감독의 웬만한 흠집은 눈감아 주게 만든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인물을 묘사할 단어가 선뜻 잡히지 않는다. ‘메소드 연기’니 뭐니 고리타분한 수식어를 들먹이기보다 다재다능하고 능수능란한 배우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게 낫겠다. 메릴 스트립이 스필버그 영화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스트립이 톰 행크스와 같이 출연한 게 처음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할리우드 어른들의 경륜과 관록이 <더 포스트>를 우뚝 세운다. ? 1966년 베트남 정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 27분을 영화 역사상 가장 리얼한 전투로 꾸민 야누즈 카민스키의 카메라가 다시 생지옥으로 안내한다. 미국인 전략 분석가 다니엘 엘즈버그(매튜 리즈)는 피투성이로 찢겨나가는 미군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작은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처참하게 펼쳐진 전쟁. 존슨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클라크 클리포드의 술회대로 미국인에게 베트남전은 ‘목표와 전략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베트콩이 아니라 베트남의 민족주의와 싸웠으니까. 게다가 상대편은 전쟁 영화의 영웅도 주눅들만큼 맹렬하고 끈질겼다. 7만 여명이 지하 30m 땅굴에서 3년 반을 버티는가 하면, 하룻밤에 산악지대 50km를 내달리는 건 기본이었다. 미군들이 제2차 세계대전보다 4배나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는데도 호치민은 코웃음을 쳤다. “폭격을 해라. 그러면 웅덩이가 파여 연못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그 연못에서 자란 메기를 잡아먹고 투쟁할 것이다.” 호기롭게 덤벼든 미국이 끝까지 멱살 잡혀 끌려간 전쟁에 관한 기밀문서가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로 <더 포스트>에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 ? 다큐멘터리 <전쟁의 안개>로도 알려진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지시를 받아 엘즈버그가 작성한 펜타곤 문서는 한 마디로 ‘미국의 베트남전 기획과 연출’이다. 가장 문제가 된 내용은 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구축함을 선제공격했다는 ‘통킹만(Gulf of Tonking)’ 사건인데, 훗날 베트남전 확전을 정당화하려는 미국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진다. 내부자 엘즈버그로부터 펜타곤 문서를 입수한 뉴욕타임스는 30년에 걸쳐 정부가 감춘 사기극을 폭로한다. 경쟁지가 이토록 엄청난 비밀을 쏟아내는 판국에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의 딸 결혼식 취재에나 열을 올렸으니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의 눈엔 불이 켜진다. 특종 경쟁에 나서거나 기사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은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이익과 안보에 회복 불능의 위해를 끼쳤다며 뉴욕타임스를 닉슨 정부가 기소하자 법원은 추가 보도를 중지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우리의 적이야. 반드시 기소해야 해.” 화면 밖에서 이악스럽게 내뱉는 닉슨의 대사에서 지금 백악관 주인장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이라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가짜뉴스’라며 핏대를 세우니 말이다. ? ? 기밀문서의 주요 내용을 툭툭 넘기던 영화는 기자로서 정의감과 언론사 사주로서 경영 윤리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브래들리는 천신만고 끝에 펜타곤 문서를 손에 넣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딪친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도 힘겨운 상대지만, 경영난을 겪는 자회사 이사들을 설득하기란 한층 버겁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명색만 사주일 뿐 남성들이 장악한 경영진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특종 보도를 놓고 토론을 벌일 때도 밀리는 처지인데, 오랜 친구인 맥나라마 장관의 회유는 캐서린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가정주부의 삶에 만족했고 직업엔 관심조차 없던 캐서린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얼떨결에 신문사 운영을 떠맡았다. “여자가 설교하는 것은 뒷다리로만 걷는 개와 같다.”는 탄식에 담긴 1970년대 미국사회 여성의 위상. 증시 상장 문제로 회사가 존립까지 위협받는 상황인데 언론 자유와 사명감, 독자의 알 권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딜레마이자 속수무책. <철의 여인>에서 날마다 전투를 치른 대처 수상의 파워와 고독을 온 몸으로 재현한 메릴 스트립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다. 고뇌하고 갈등하는 초보 경영자와 어머니에서 단호한 승부사이자 여성 지도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스트립에게 붙여진 ‘액팅 머신(Acting Machine)’ 호칭을 새삼 확인케 한다. 연기 기계나 기계적 연기가 아닌 부속품을 바꿔가며 눈부시게 변신하는 기계 말이다. ? <스포트 라이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조쉬 싱어는 드라마의 빼어난 완급 조절로 몰입감을 높인다. 중반부터 캐서린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스필버그는 첩보 스릴러 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끌어내는 한편 소녀의 레모네이드로 쉼표를 찍기도 한다. 미국은 왜 그렇게 베트남전에 매달렸을까. 패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젊은 목숨들을 사지로 내몬 까닭이 무엇일까. 굴욕을 잠재울 굴욕이라니, 미련하고 저급한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를 잇는 제4부로서 언론이 제 소임을 포기할 때 권력은 녹슨 칼날을 시퍼렇게 다듬어 세운다. 마지막 장면은 워싱턴포스트 100년 역사에서 가장 큰 특종이자 미국 현대사를 뒤흔든 스캔들을 캐낼 것을 예고한다. ‘꿈의 공장’ 공장장 스필버그가 비통한 심정으로 연출 의도를 밝힌다. “이토록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처음이다. 누구도 정치에서 도망칠 수 없다. 올해의 사회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국내 일부 단체와 언론에서 세계인들의 겨울 잔치상에 벌건 재를 뿌릴 때 워싱턴포스트는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을 ‘이번 올림픽의 의미를 규정한 순간’이라 찬사를 보냈다. 국익을 등에 업은 국가의 위선과 폭력, 시도 때도 없이 날뛰는 사이비 애국주의, 어설프고 곰팡내로 찌든 안보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더 포스트>가 세상 모든 언론 매체에 전하는 메시지는 엄중하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라!”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이미지를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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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다!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칼럼] 우리가 역사다!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을 지나는 장례 행렬. 흑인 인권운동에 온 생애를 바쳤던 이를 애도하는 어느 중년 여성의 젖은 눈망울을 클로즈업한 화면에 해설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깔린다. “미국의 역사는 곧 흑인의 역사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라울 펙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I Am Not Your Negro)>는 미국인에겐 민망하고 수치스럽겠지만, 모든 인류가 기억해야할 시간들을 담담하게 되돌린다. 멀게는 백인 기병대가 어린이를 포함한 인디언 라코타족 300여명을 살해한 1890년 ‘운디드 니’ 참극부터 가깝게는 경찰에게 비무장 상태에서 총을 맞은 흑인 소년의 죽음이 촉발시킨 2014년 퍼거슨시 소요 사태까지 인종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친 세월이다. 쇠사슬을 토막 내는 듯 맹렬한 제목을 내세운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1924~1987)의 미완성 회고 에세이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뉴스릴과 텔레비전 좌담회, 강연과 인터뷰, 푸티지 영상과 현장 사진 그리고 할리우드 클래식 등 풍성한 자료화면과 사무엘 L. 잭슨의 내레이션으로 수난의 흑인 역사를 들여다본다. ? ? 본디 다큐멘터리란 플롯보다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어서 각 장면은 극영화보다 훨씬 자유롭게 배열된다. 이 작품도 굵직굵직한 사건에 등장인물이 많고 입자가 각기 다른 흑백과 컬러 영상이 섞이기 때문에 간추린 미국 역사라도 훑어보고 감상하는 게 좋다. 미국 ABC 방송의 딕 카베트 쇼에 출연한 볼드윈이 추억하는 세 사람은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 메드가 에버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들은 스크린에서도 낯선 인물이 아니다. 롭 라이너 감독의 <미시시피의 유령>은 에버스의 피살 사건을 파헤쳤고, <말콤 X>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한 덴젤 워싱턴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남자연기상)을 따냈으며, 재작년에 개봉한 <셀마>는 역사를 바꾼 킹 목사의 행진을 따라갔다. 삶의 목표가 같았을 뿐 아니라 생애도 짧았고 죽음 또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닮았다. 세 사람 모두 40세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으며 똑같이 총격을 받고 숨을 거뒀다. ? 인간사에서 가장 저열한 분규라는 인종 갈등. 피부색이나 겉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증오를 키우고 학대하며 목숨까지 빼앗는다. 아이티 출신 라울 펙 감독은 챕터를 나누듯 ‘노력’ ‘영웅들’ ‘증인들’ ‘순수’ ‘흑인 팔아넘기기’ ‘나는 검둥이가 아니다’ 라는 작은 제목을 붙여 화면을 여닫는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For Whites Only(백인만 출입 가능)’ ‘No Blacks and Dogs(흑인과 개는 사절)’ 같은 문구가 공공장소를 도배한 시대였다. 흑인은, 검둥이가 아니라 검둥개 정도로 취급되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백인들의 피켓엔 저주와 혐오, 살의가 가래침처럼 붙어 있다. “검둥이는 백인이 되고 싶지 않나?” “인종 혼합은 공산주의다.” “인종차별 영원하라.” “주님은 살인과 간통은 용서하시지만, 인종 통합에 대해선 분노를 금치 못하신다.” 경찰들이 거리에서 흑인을 짓이기는 장면은 분노를 넘어 인간 행세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밀도살꾼이 입맛을 다시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동작과 다르지 않으니까. ? ? 온건한 통합주의자 마틴 루서 킹과 과격한 분리주의자 맬컴 엑스. ‘비폭력과 자기방어’, ‘흑백 통합주의와 흑인 민족주의’, ‘기독교 신앙과 이슬람 교리’라는 서로 다른 삶과 사상의 극심한 대립. 현실 인식과 해결 방안 또한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와 “나는 악몽을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의 가치관과 해결책이 합쳐질 무렵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맬컴 엑스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도록 함께 노력한 동료 집단에 사살당했고, 백인들과 공존과 타협을 지향한 킹 목사는 백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킹 목사의 피살 소식을 알리자 비명과 휘파람 소리가 뒤엉킨다. 변화와 희망은 꿈도 꿀 수 없는 건가.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40년 뒤 미국 사회를 예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잠꼬대이거나 뜬구름 잡는 이 목소리를 연결하는 장면이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위대한 기적이자 지혜로운 선택. ? 미국 사회를 지배한 백인 앵글로색슨과 노예 신분을 벗어났어도 만년 빈곤층을 형성한 흑인들.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두 계급의 관계를 꿰뚫어 본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킹콩>, <댄스, 풀스, 댄스>, <더 몬스터 워크스> 등 1920~30년대 서부극과 멜로드라마, 스릴러와 판타지, 뮤지컬 영화는 어떤 통계나 자료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당시 미국인들은 스크린의 흑백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인종 문제에 영화는 어떤 구실을 했을까. “도덕적으로 미성숙도 미덕이 되어버렸다. 평생 영화 속에서 인디언에게 훈계를 해온 그는 성숙해질 필요가 없었다.” 서부 들판과 계곡을 누비는 정의의 카우보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보수 우파 애국자. 볼드윈이 야무지게 꼬집은 그 배우 이름은 퀴즈로 남기겠다. 백인 후손을 낳은 흑인들의 아픔은 <슬픔은 그대 가슴에>(1934)의 초등학교 교실 장면만으로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맬컴 엑스가 자기 머리칼이 붉은 색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게 한다. ? ? 할리우드에서 시드니 포이티어 이전에 주연을 맡은 흑인 배우는 없었다.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베를린영화제 은곰상도 포이티어의 몫이었다. 데뷔작 <노 웨이 아웃>부터 <흑과 백>, <초대 받지 않은 손님>, <밤의 열기 속으로>등 4편을 골라 핵심을 요약하고 상황을 비교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흑과 백(The Defiant Ones)>의 예를 들면, 포이티어가 달리는 열차에서 감방 동기 토니 커티스 때문에?결정한 행동을 놓고 흑인과 백인의 반응을 살펴보는 식이다. 1991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과 폭동에 <하오의 연정>과 <브로드웨이의 자장가>의 댄스 장면을 얹는 수법도 눈길을 끈다. 게리 쿠퍼와 도리스 데이를 두고 ‘세상에 실현되지 않은 순수를 가장 그로테스크하게 대표’ 한다거나 를 열창하는 레이 찰스는 ‘음지에 있지만, 꼭 필요하며 부정당한 존재의 이미지’라 규정하는 대목은 예리한 대중문화 비평으로 읽힌다. ? “예전에는 흑인을 목화 농장에서 썼지만 이제 더는 필요 없어서 너희를 전부 죽일 거야 인디언한테 한 것처럼.” 2007년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비무장 흑인 7명 사살, 서부 개척시대 <커스터 장군>과 <솔저 블루>에서 기병대의 인디언 공격. 차별과 편견, 적개심에서 나온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뿐더러 마침표를 쉽게 찍을 수도 없음을 일러준다. 이 영화 제목이 저항과 다짐의 현재 진행형으로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손을 든 흑인 소년이 사격 표시판처럼 총탄을 여섯 발이나 맞고 죽은 게 겨우 4년 전 일이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에겐 자유로울 권리뿐 아니라 자유로울 의무가 있다.” “우리는 역사를 품고 산다. 우리가 역사다.” 언제나 당당했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메시지가 힘차고 명확하다. ?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이미지를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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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 일상으로 다가온 VR, 어디까지 왔나?

[기타] [기자수첩] 우리 일상으로 다가온 VR, 어디까지 왔나?

[글. 한국일보_김태헌 기자] 2016년 증강현실(AR)을 활용한 ‘포켓몬고(pokemon go)’가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열풍은 AR을 뛰어넘어 보다 진보된 기술인 가상현실(VR)로까지 이어진다. 글로벌 기업들은 포켓몬고 성공에 VR의 가능성을 확신했고 과감한 투자는 계속됐다. 그 결과 VR은 우리 일상인 게임, 교육, 레저, 영화 등 다양한 곳까지 활용되기 시작했다. VR은 AR과 유사한 기술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AR은 현실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보여주는 반면, VR은 그래픽 등을 통해 현실이 아닌 환경을 현실과 흡사하게 만들어 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VR기술은 게임 분야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 분야로 빠르게 접목되고 있다. 영국 IT시장조사기업 디지캐피탈에 따르면 VR산업 세계 시장 규모는 2016년 39억달러에서 2020년 1485억달러(159조원)로 급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이미 국내 최초의 상용화 VR콘텐츠는 2016년 4월 출시됐다. 바로 KT의 VR야구 생중계다. 같은해 6월에는 음원제공사이트 지니가 아이돌 가수 콘서트 장면을 VR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VR을 통해 좀 더 실감나는 경기를 감상할 수도 있게 됐다. 인텔은 ‘트루 VR’을 이용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가상현실 방송을 생중계한다. 경기당 3∼5대의 카메라가 사용돼 시청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점을 선택해 경기를 즐길 수도 있다. ?◇ 게임에서 교육 그리고 영화까지 2014년 페이스북은 VR 전문업체 ‘오큘러스’를 무려 2조원에 인수해 VR산업에 뛰어들었고, 삼성전자도 ‘기어 VR’을 출시하며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의 소니는 VR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출시하며 2016년 이후 약 20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VR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 ?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VR이지만, 그 정점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가장 대중적이며 상업적이고, 시각과 청각의 활용이 중요시되는 산업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영화와 VR접목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웹드라마나 단편, 다큐와 독립영화 등이 지속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상업 영화는 여전히 등장하지 못했다.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는게 업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VR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도 여전히 없다. 영화관으로서는 VR로 제작된 상업 영화 수가 적어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VR영화 상영을 위해서는 헤드셋이나 기존 좌석 재배치, 진동의자 등이 필요한데, 기존 상영관을 상영일수가 적은 VR 영화를 위해 빼둔 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관객을 위한 극장가보다 이보다 소수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VR게임방이 차츰 등장하고 있다. ? 하지만 극장가도 VR영화에 대한 실험은 계속 중이다. 롯데시네마는 지난 19일부터 VR영화 9편을 특별상영 하고 있다. 상영되는 영화는 △'나인 데이즈' △'거제도: 제3의 전선' △'선유기' △'우리의 발자취' △'해피랜드360' 등이다. 나인데이즈는 송윤아와 한상진이 주연한 국내 최초의 극장형 VR 영화다. ? 삼성전자 역시 저시력 장애인들을 위해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VR헤드셋은 기기를 안경처럼 착용하기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관보다 더욱 더 선명한 화질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두 개의 빛:릴루미노'를 상영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도 VR을 통해 볼 수 있다. CGV는 'VR툰'(VR TOON)을 도입했다. VR툰은 360도 구(球) 형태의 이미지를 활용해 독자가 실제 만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용자의 시선에 따라 만화 속 말풍선이 내레이션과 효과음 형태로 바뀌면서 만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 ?◇ 활용도 높은 VR이지만 부작용도 주의해야 ? 교육과 훈련도 VR이 적극 사용될 분야다. 수학여행을 떠나야만 신라와 백제 문화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VR기기 착용만으로 수업 중 그 장소에 다녀올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미국 알파인스키 대표팀은 VR을 이용해 스키 훈련을 하기도 한다. 또 운전 연습, 승마, 자전거, 놀이기구 체험 등에서도 VR은 활용된다. 정부도 이르면 2019년까지 VR 훈련센터를 구축해 예비군 훈련에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제 전투훈련이 가상현실로 가능해진 셈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초음파 태아 영상을 VR로 볼 수 있는 기술도 제작됐고, 미국에서는 전쟁에참여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치료에도 VR이 활용된다. 고소공포증을 이기기 위한 훈련과 음주운전 예방 등에도 VR이 이용된다. 이처럼 다양한 곳에서 사용이 가능한 VR기술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VR의 경우 기본적으로 안경처럼 기기를 착용하고 영상을 시청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시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높다. 또 일부에서는 VR착용시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VR기기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이 같은 문제점이 나타낸다. 다만 학자들은 전자 기기 화면을 장시간 응시하는 것이 시력 저하를 야기한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부족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 VR기기가 본격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관련 연구도 많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VR기기의 장기 부작용 등에 대한 의견이 대립된다. ?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VR기기와 관련한 연구가 부족한 만큼 아이들의 기기 노출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제조하는 삼성과 오큘러스는 자사의 헤드셋의 권장 연령을 13세 이상, 소니의 경우는 12세 으로 설정했다. HTC는 자사의 VR기기를 어린이에게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 반면 VR 콘텐츠를 이용할 경우 아동의 학습능력이 높아진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경제경영연구소인 디지에코는 6세 아동들에게 VR콘텐츠 본 아동들의 뇌파 리듬이 26% 높아졌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양방향 콘텐츠를 시청할 때 두 뇌파 모두 각각 39%, 34%로 대폭 증가한 것이다. 또 주의력이 요구될 때나 각성 상태에서 나오는 SMR파 또한 양방향 콘텐츠를 봤을 때가 26% 더 높았다. ? 이처럼 VR 사용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대립 견해가 있는 만큼, 과도한 몰입 대신 시간을 조절해 이용한다면 새로운 기술을 통한 긍정적 효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위 글은 위원회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작성일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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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 영화 <1987>

[칼럼]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 영화 <1987>

“... 뜨겁게 살다 젊어서 죽어/ 깊은 시간에 합류한 벗이여/ 살아남은 나를 너무 노여워 마라/ 살아 있는 나를 너무 부러워 마라/ 나는 부끄럽게 아직도 살아남아/ 깊은 곳을 향해 발버둥치고 있으니/ 자꾸만 가볍게 떠오르는 들뜬 시대에/ 부끄럽게 살아남은 나는/ 살아서는 너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나는/ 좋았던 벗이여/ 그래도 몸부림치는 내가 가여워/ 너는 깊은 시간의 중력으로/ 내 발버둥에 묵직한 돌멩이로/ 나를 끌어 당겨주고 있구나.” (박노해의 시 <깊은 시간>에서). ‘땡전 뉴스’와 보도지침. 야만과 폭압의 정권이 앗아간 젊은 생명들. 6월 민주항쟁과 ‘87년 체제’ 탄생. 금지곡 500곡과 금서 431종 해금. 그럼에도 좌절과 희망, 전진과 퇴행을 반복한 세월. 그러나 반동의 정점에서 타오른 분노와 열망의 촛불.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1987>은 30년 전 광장의 복판에 투신하듯 뛰어들어 넋을 흔든다. 뜨겁고 아픈 129분. 한국 영화 2017년의 베스트. ? 실화에 근거한 줄거리가 아니라 실제 사건 그대로다. 새내기 여대생 연희(김태리)를 제하곤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로 더러는 실명을 밝히기도 한다. 사람 잡는 '백골단'을 포함한 엑스트라까지 모든 인물과 사건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1987년 1월 14일, 대공분실에 끌려가 심문을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한다. 증거 인멸을 꾀하는 대공수사처장 박처원(김윤석)은 시신을 화장하라고 지시하지만,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부검을 고집하며 끈질기게 버틴다. 언론들이 앞 다퉈 사망 기사를 올리자 박처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심장 전문의도 까무러칠 해명을 한다. 꾀를 내도 죽을 꾀를 낸다더니 ‘탁 치니 억’은 한동안 정권의 궤변과 비도덕성을 조롱하는 유행어로 퍼졌다. 하나하나 사건을 조각처럼 맞춰가며 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 흥미를 더한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바통을 주고받는 릴레이 경주이고, 음악으로 치자면 독립된 여러 선율이 흘러가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하는 폴리포니 기법에 가깝다. ?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 기관이 인권을 짓밟고 말살하는 내용의 영화는 <1987>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양심과 용기, 신념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묻는 한국 영화는 생각나지 않는다. 특정 인물을 내세우거나 캐릭터를 강조하기보다는 광고 문안대로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불의와 악행엔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뱃심 좋은 검사를 필두로 물고문한 사실을 털어놓는 의사, 위협과 회유에도 꿋꿋한 부검의, 받아쓰기를 온 몸으로 거부하는 열혈 기자, 음험한 정보를 외부로 빼돌리는 교도관 등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낸다. 간첩을 색출하기보다 빨갱이 제조에 골몰하는 시절. 누군가는 분노와 탄식으로 돌아보는 시간일 터이고, 또 누군가는 중세 암흑기의 광기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거대악과 보통 사람들의 대결이 점점 팽팽해지더니 스릴러 영화에 버금가는 긴박감을 끌어낸다. 핸드헬드 촬영과 클로즈업, 줌인 줌아웃을 구사하며 카메라는 추악한 권력의 실상을 멀미나도록 맹렬하게 파헤친다. ? ?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 5층은 이른바 ‘공사’를 하던 장소였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난도질하는 공사.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그곳에서 장의사로 통하는 고문기술자에게 갈가리 찢겨진 김근태 의원의 22일을 몸서리치도록 묘사했다. 검은 벽돌로 둘러싸인 건물 내부는 고문하기엔 최적의 세팅이었다. 방향 감각을 마비시키는 나선형 철제 계단, 자해나 탈출을 막으려는 팔목 하나 길이의 창문, 철망으로 감은 형광등, 비명 소리만 울리게끔 고안된 벽면, 밖에서 조작하는 조명 스위치와 감시용 렌즈, 맞은편에서도 볼 수 없도록 엇갈리게 배치한 출입문,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 극한의 공포와 극도의 수치심을 안겨주려고 치밀하게 설계한 악의 공간, 아니 인간 도살장이다. 영화 후반 도살장에 들어선 카메라는, 물속에 거듭 처박혀 죽어가는 박종철의 고통을 긴 호흡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기술자들의 웃음소리에 섞이는 애국가가 장송곡처럼 늘어진다. 짐승의 시간에 내지르는 인간의 비명.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더럽고 악랄한 폭력이 바로 고문이다. ?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에서 악덕 기업주가 화성인일지 모른다는 발칙한 상상력을 과시한 장준환은 세 번째 연출에서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뚝심과 통찰에 디테일을 곁들인다. 교회 난간에 매달린 재야인사의 그림자에 겹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예수상, 희생과 저항과 승리를 암시하는 교차 편집, 쏟아지는 양초, 구겨진 운동화 한 짝 등 상황과 소품으로 의미를 캐는 솜씨가 빼어나다. 티켓 파워에 기댄 전략인가. 포스터에도 빠졌고 시나리오에도 잘 생긴 남학생으로만 표시할 정도로 철저하게 감춰진 배우가 나온다. 순정 만화나 청춘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의 풋풋한 관계는 반갑고도 당혹스럽다. 뚝배기에 담긴 콜라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항쟁을 이끈 아름다운 기폭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다. 말투와 억양, 표정과 몸짓 등 김윤석의 연기는 소름끼칠 지경이어서 악당이 강해야 영화가 산다는 히치콕 감독의 말을 새삼 확인케 한다. ‘반공’과 ‘애국’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박처장은 사냥개를 자처하는데, 감독은 그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슬쩍 건드리며 이분법의 덫을 영리하게 피해간다. ? “철아,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한국 영화 아니 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비통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신파적 설정이라니, 대꾸할 가치도 없다. “진실은 지하에 묻히면 스스로 자라나 무서운 폭발력을 얻는다.”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드레퓌스 대위의 구명 운동을 펼친 작가 에밀 졸라의 말이다. 이 영화도 상영 시간 내내 진실의 폭발력에 집중한다. “우리한테 남은 마지막 무기는 진실이다.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진실이라는 불씨가 점점 커져 불덩이로 옮겨지고 급기야 용암처럼 터지는 6개월을 지켜보는 일은 괴롭지만 외면하기 어렵다. 마지막 장면은 한국 영화의 역대급 엔딩으로 꼽아도 좋겠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불화살로 날아간 청춘들. 전율과 감격! <1987>은 그때 그 광장에 지금 여기를 투영한다. 야만시대의?어둠을 뚫었던 ‘독재 타도’ 의 함성이 이제 ‘적폐 청산’을 거쳐 ‘개혁 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뿌듯한 감회와 긍지를 안겨줄 터이고, 한국 근현대사를 교과서로만 배운 청소년들에겐 현장을 답사하듯 정확하고 친절한 동영상 강의로 다가갈 영화다. ?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이미지를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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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흥행으로 본 2017년 영화

[기타] [기자수첩] 흥행으로 본 2017년 영화

[글. 국제신문_이원기자] 올해에도 영화계는 풍성한 한 해를 보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스크린을 밝혔으며, 2억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17년에 개봉한 수많은 영화들 중 ‘2017 박스오피스’ 10위(12월 개봉 영화 제외)에 오른 영화들을 통해 지난 1년간의 극장가를 돌아봤다. ? ? ■ 한국영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 그로 인해 일찍 실시된 대통령 선거 등의 사회 분위기는 한국영화의 흥행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래서 시대정신을 반영하거나 사회성이 강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았으며, 반대급부적으로 무거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호쾌한 액션과 코미디 영화 또한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먼저 올해 한국영화의 대표 화제작은 여름 시장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와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였다. 1주 간격으로 차례로 개봉한 두 영화는 명암이 엇갈렸다. 7월말 먼저 개봉한 ‘군함도’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흥행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의 출연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역사 왜곡 논란과 함께 최초로 스크린수 2000개를 넘어 스크린 독과점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660만 관객을 모으며 4위에 그쳤다. 반면 실화를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는 무려 1220만 관객을 모으며 올해 유일한 천만 영화에 등극과 함께 올해 국내외 영화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였지만 송강호를 비롯한 유해진, 류준열 등의 유연한 연기 호흡에 독일 출신의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의 진정성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 (택시운전사 스틸_쇼박스 제공) 우리의 아픈 역사를 스크린으로 담은 영화는 또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왕 인조와 청나라에 맞서 화친과 척화를 외친 두 충신 최명길, 김상헌의 이야기를 그린 ‘남한산성’이 8위, 위안부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아이 캔 스피크’가 9위를 차지했다. 두 작품과는 결이 다르지만 6위의 ‘더 킹’은 정치검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편 올해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투톱 코믹 액션 영화의 성공이다. 각각 2위와 5위를 차지한 현빈, 유해진의 ‘공조’와 강하늘, 박서준의 ‘청년경찰’은 재치 있는 대사와 상황의 코미디를 바탕으로 적당한 액션이 곁들여지며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공조’는 780만 명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일으키며 올초 한국영화 흥행을 이끌었다. 한석규, 김래원의 ‘프리즌’은 코미디는 아니지만 두 배우의 연기 대결과 감옥 액션을 선보이며 10위에 자리했다. 이외에도 ‘마블리’ 마동석의 호쾌한 액션이 돋보였던 ‘범죄도시’는 690만 명이라는 깜짝 흥행에 성공하며 8위에, 멀티캐스팅의 유효함을 보여주며 400만 관객을 모은 ‘꾼’이 7위에 오르며 하반기 한국영화 흥행을 이끌었다. 이로써 조연배우였던 마동석은 당당한 주연배우로 자리하게 됐으며, 군 제대 이후 첫 영화였던 ‘역린’으로 아픔을 맛봤던 현빈은 ‘공조’, ‘꾼’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흥행 파워를 지닌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하게 됐다. 한편 ‘살인자의 기억법’, ‘보안관’, ‘조작된 도시’, ‘재심’, ‘박열’ 등이 차례로 10위권 밖에 자리했다. ? ■ 외국영화 쟁쟁한 한국영화에 맞선 외국영화들은 마블 히어로의 활약과 시리즈 및 리메이크 영화들의 성공 등이 눈에 띄었다. 외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한국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SF 액션이나 판타지 영화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강세를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뿐만 아니라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트렌드다. 그래서 북미에서는 마블과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이 강세인데, 한국 관객들은 너무 진지한 DC 영화보다는 가벼운 유머가 웃음을 주는 마블 영화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북미 2017년 박스오피스에서 2위를 차지한 DC 코믹스 원작의 ‘원더 우먼’이 한국에서는 16위에 그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스파이더맨: 홈커밍?스틸_소니픽쳐스 제공) 2017년 외국영화 1위는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홈 커밍’이다. 현란한 액션과 친근한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726만 관객을 모으며 1위를 차지했다. 마블 영화로는 ‘토르: 라그나로크’가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7 외국영화 흥행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리메이크 및 시리즈 영화가 대세였다는 것이다. 특히 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한 ‘미녀와 야수’는 500만 관객을 훌쩍 넘으며 깜짝 흥행을 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앞서 ‘원더 우먼’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원작이 지닌 장점과 실사 영화의 장점을 잘 살린 뮤지컬 영화라는 점과 벨 역의 엠마 왓슨의 미모가 흥행 요인이었다. ‘미녀와 야수’ 외에 리메이크 영화로는 톰 크루즈가 고군분투하며 뛰어다닌 ‘미이라’가 있었다. 시리즈 영화에는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킹스맨’ 시리즈의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이 있었다. ‘킹스맨’은 전편이 600만 관객을 넘었으며 이슈를 낳았는데, 속편 또한 무난히 흥행에 성공하며 500백 관객에 근접했다. 북미에서는 28위에 그친 것을 보면 ‘킹스맨’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알만하다. 시리즈 영화로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과 ‘슈퍼배드 3’,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10위권에 자리했다. 이외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과 이야기 구조를 지닌 ‘너의 이름은.’과 올해 외국영화 중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가 있었다. 또한 10위 내에 들지 못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보스 베이비’, ‘모아나’, ‘로건’ 등이 뒤를 이었다. ? ■ 다양성영화 올해 다양성영화는 감성 로맨스 영화와 앞서 한국영화 마찬가지로 사회비판적인 한국 다큐멘터리가 강세를 보였다. 우선 감성 로맨스 영화가 다양성영화에서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한국영화 흥행 순위에는 로맨스 영화가 전무하다. 순위를 넓혀 50위권을 봤을 때 ‘싱글라이더’와 ‘어느날’ 단 두 편이 30위권 밖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양성영화 순위에는 1위를 차지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필두로 5위 ‘내 사랑’, 10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 세 편의 로맨스 영화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특히 이들 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4월 이야기’와 같은 일본식 로맨스 영화의 색깔이 강한 영화이지만 앞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과 마찬가지로 한국 관객의 감수성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관객의 로맨스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틸_미디어캐슬 제공) 로맨스 영화와 함께 다양성영화에서는 적폐 청산의 사회의 분위기에 부응한 다큐멘터리도 강세였다.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지난 정부와 이를 맞서는 방송인들을 다룬 ‘공범자들’과 지난 정부의 비자금을 추적한 ‘저수지 게임’이 각각 7위와 13위에 자리해 관객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외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화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한 영화이자, 최초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인 ‘러빙 빈센트’와 흑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문라이트’가 예술영화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각각 4위와 9위에 자리했다. 10위권 밖으로는 ‘예수는 역사다’, ‘눈길’, ‘저수지 게임’, ‘마이펫 오지’,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등이 순서대로 자리했다. ?

  • 작성일 20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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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불굴의 초상 / 영화 <다키스트 아워>

[칼럼] 처칠, 불굴의 초상 / 영화 <다키스트 아워>

2002년 영국의 국영 방송 BBC는 자국민 1백만 명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해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뽑았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다이애나 왕세자비, 넬슨 제독, 존 레넌 등 여러 분야에서 영국뿐 아니라 세계를 움직인 이들이 10위권에 올랐다. 1위는 누구였을까. 90년의 생애에서 55년을 의회 멤버로, 31년을 장관으로, 9년을 총리로 보낸 정치인. 15번이나 전쟁에 나간 군인이자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며, 500점이 넘는 유화를 그린 왕립미술원 소속 화가. 평생 먹고 살 돈을 혀와 펜으로 번 사람. 저명한 정치인을 학교 이름으로 짓는 전통이 없는 영국에서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만 10개가 넘고, 작년에 발행한 플라스틱 재질의 5파운드짜리 지폐 뒷면에 얼굴이 새겨진 사람. 트레이드마크는 두툼한 시가와 승리를 뜻하는 손가락 V자.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흔들었고 21세기에 신화가 된 그 영국인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다. ? ? 처칠의 삶을 다룬 영화는 많았어도 대부분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브라이언 콕스, 앨버트 피니와 시몬 워드가 도전했으나 모두 근접하는 수준에 그쳤다. 불도그를 닮은 얼굴에 매섭게 노려보는 시선은 웬만한 분장과 연기로는?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거장 켄 로치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2013)은 실제 처칠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만, 1945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 정부와 1980년대 대처리즘을 통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쟁을 제기했다. 영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의회 연설문에서 제목을 따왔다. 파리 함락 직전 프랑스 정부와 회담에서 좌절감만 맛본 처칠은 그 상황을 ‘Darkest Hour’ 라 설명했다. 어둠은 짙었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에 맞선 처칠의 라디오 방송. “우리의 의무를 상기하고 분발합시다. 훗날 사람들이 그때가 ‘최고의 시절(The Finest Hour)’이었노라’고 말하도록.” 런던 시민들은 4만3000명에 이르는 가족과 이웃을 잃었지만 9개월 동안 의연하게 버텨냈다. 최고의 시절을 여는 자부심. ?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과 프랑스와 벨기에 연합군의 덩케르트 철수, 다시 말해 다이나모 작전을 실행하기까지 처칠 수상(게리 올드만)의 보름 남짓한 기간을 따라간다. 1940년 5월 9일의 전시 상황을 자막으로 알려준 영화는 도입부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배우 게리 올드만은 없고 정치인 처칠만 있으니 말이다. 감쪽같다는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올드만 특유의 마르고 날카로운 모습은 흔적도 없다. 말라깽이 에디 머피가 자신보다 체구와 얼굴이 서너 배는 큰 화학 교수로 바뀐 <너티 프로페서>(1966)의 분장술을 훨씬 뛰어넘는다. 처음 출근한 여비서 엘리자베스(릴리 제임스)가 작은 실수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닦달하는 처칠. 아내 클레멘타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말대로 거칠고 냉소적이고 고압적이고 무례한 노인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전시 내각 총리로 처칠을 추천하는데, 속내는 ‘급한 불부터 끄자’거나 ‘꿩 대신 닭’이었을 터이다. 국왕 조지 6세(벤 멘델슨)도 처칠이 달갑지 않다.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하자 모든 내각이 동생 조지 6세의 즉위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처칠 혼자 끝까지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그러니 총리 임명은 미운 놈에게 케이크 한 쪽 더 주는 심정이었으리라. ? ? 헝가리와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영국의 유일한 동맹국 프랑스도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었고, 미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있으니 영국은 고립무원의 처지. 5월13일, 내각 수장에 오른 처칠은 그 유명한 어록을 선보인다. “내가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피와 땀과 눈물뿐입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의회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처칠의 연설을 세 번 들려준다. 반복과 대조, 은유와 역설에 유머를 곁들인 처칠의 연설은 비탄과 절망에 빠진 영국인들을 일으켜 세운다. 선동의 천재 히틀러도 넘볼 수 없는 마법의 명연설. 처칠은 평생 하루 여덟 개의 시가를 피우고 매일 낮밤으로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다. “어찌 그렇게 낮술을 잘 드시오?” “연습하면 됩니다.” “나도 당신이 무섭소.” “농담 마십시오, 제가 무서울 게 뭐 있습니까?”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거든요.” 조지 6세와 처칠의 대화가 유쾌하다. ? <다키스트 아워>가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나를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처칠의 회고록과 수상록엔 시리즈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극적인 일화가 넘친다. 처질이 정치가이기 전에 쾌활한 영혼을 지닌 재담가라는 걸 알려주는 에피소드 몇 가지. 할리우드를 방문한 처칠이 채플린에게 어떤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 물었다. “예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라는 채플린 대답에 처칠이 되물었다. “저작권은 확보해 두셨습니까?” 둘째 딸의 인생을 망친 사위를 증오하는 처칠을 부하 직원이 위로했다. “총리께서는 운이 좋으신 겁니다. 무솔리니를 보세요.” 허수아비 독재자로 전락한 무솔리니는 외무장관인 사위를 반역죄로 몰아 총살했다. 처칠의 퉁명스런 한마디. “그래도 무솔리니는 사위를 죽이기라도 했지.” 처칠이 가장 좋아한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이고, 중간에 뛰쳐나오게 만든 건 <시민 케인>이었다. 처칠은 범죄자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존 웨인의 활약에 열등감을 극복한 자신을 투영했을 것이고, 급한 성미 때문에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끝까지 보기엔 좀이 쑤셨을 듯싶다. ?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 등 원작 소설 각색과 시대 재현에 능란한 조 라이트 감독의 또 다른 솜씨는 촬영과 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일필휘지의 영상’인가. 단숨에 죽죽 써내려가는 명필의 붓놀림처럼 카메라는 종으로 횡으로 힘차게 누빈다. 비오는 거리를 떠다니는 행인들과 히틀러 가면을 쓴 아이들, 보따리를 이고 진 피난 행렬과 폭탄 투하 장면의 하이앵글, 미로처럼 얽힌 지하 벙커의 전시 내각실, 파스텔 톤의 깊고 부드러운 화면 등 단락마다 조 라이트의 인장이 빛난다. <엘리펀트 맨>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설국열차>로 친숙해진 존 허트는 독일에게 평화를 구걸하다 밀려난 총리 체임벌린을 열연하는데 안타깝게도 유작이 되고 말았다. 풍전등화의 조국, 지도자로서 무한 책임과 정적들의 무한 압박.?처칠의 겉모습부터 마음 밑바닥까지 체화한 올드만의 연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년 3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덩케르크>가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지만, 남우주연상은 올드만을 제칠 연기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섣부르지만, 따놓은 당상이라는 우리말 축하 인사를 보낸다. ? 5월 29일, 다이나모 작전을 앞둔 처칠은 승부사다운 카드를 던진다. “청동기 시대부터 우리는 바다를 누비며 살아왔소, 독일인은 물이라면 호수밖에 모르는 민족이고.” 히틀러는 군림하고 숭배받기를 원했고, 처칠은 설득하고 격려하며 다가갔다. 결말부의 지하철 장면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위로하려다 오히려 위로를 받은 처칠이 격문처럼 시를 암송한다. “그렇다면 외쳐라/ 이 땅 모든 인간들에게 죽음은 언젠가 오나니/ 나는 가장 명예롭게 죽겠노라/ 두려움과 용감히 맞서.” 18세기 영국 시인 토마스 매콜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에 나오는 <호라티우스> 한 구절로,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톰 크루즈도 들려주었었다. 처칠의 마지막 목소리.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 전쟁에는 결단력, 패배에는 투혼, 승리에는 아량, 평화에는 호의를 신조로 삼았던 생애. <다키스트 아워>는 청소년에겐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용기와 자긍심을 높여주고, 지도자에게는 의무와 책임을 일깨운다.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 작성일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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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할퀸 개인과 가족 /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칼럼] 시대에 할퀸 개인과 가족 /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전설로 남은, 개봉 자체가 기적인 대만 영화. 아시아 영화를 거론할 때 영화 매체와 전문가들이 항상 걸작 목록에 올리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이 마침내 극장에 걸린다. 대형 복합상영관들이 낙동강 황소개구리 포식하듯 스크린을 독점하는 현실에서 이런 일은 횡재나 다름없다. 감격에 겨워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1991년에 제작되었고 러닝타임은 자그마치 236분이며 연출을 맡은 에드워드 양(楊德昌) 감독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느 수입업자가 관심을 갖겠는가. 아무튼 도난당한 골동품처럼 속을 태우던 영화가 불쑥 나타나 15세이상 관람가로 등급 분류를 마쳤으니 관객들과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고령가란 대만 타이베이의 지역 이름이고 소년은 새파란 열네 살.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의 노랫말에서 차용한 영어 제목이 쓸쓸하고 아련하다. “당신의 기억은 어느 눈부신 여름날에 머물러 있나요?” 로큰롤 멜로디는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시대의 공기는 숨통을 죄며 끈끈히 달라붙는다. ? ? 대만에서 최초로 일어난 미성년자의 살인을 소재로 삼은 영화지만, 범죄를 파헤치기보다는 배경과 과정에 주목하기 때문에 대만 현대사를 알고 감상하는 게 좋다. 유혈 진압으로 3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1947년의 2·28사건, 1949년부터 38년 동안 이어진 세계 최장의 계엄령, 철혈 정치와 총통제. 명나라 시절부터 자리 잡은 ‘본성인’과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의 대립과 갈등. 격랑의 시대를 헤쳐 온 우리에겐 그다지 낯설지 않다. 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에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은 타이베이에 수도를 정하고 ‘중화민국’ 정부를 세운 뒤 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 하지만 정당이나 단체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일당 독재에 우익 세력의 폭력, 이른바 백색 테러가 난무했다. 여기에 평화 회담을 주장하거나 민생 문제 개선이며 민주화를 요구하면 용공 분자로 몰려 곤혹을 치렀다. 에드워드 양과 함께 대만 영화에 새 물결을 일으킨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슬픈 역사에 깃든 어느 가정의 수난과 몰락을 풍경처럼 묘사한 <비정성시>(1989)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 누군가의 손이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을 켜자마자 그 불빛을 삼키는 시뻘건 화면과 제작사 이름. 첫 장면의 야릇한 기운은 켜고 끄기를 반복하는 손전등으로 이어진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방황과 악몽으로 채워진 청소년기를 떠올린다. “부모 세대는 자식의 안녕을 바랐지만, 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 의지를 키워나갔다.” 1960년,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타이베이로 이사 온 소년은 장첸이라는 본명보다 2남 3녀 중 넷째라는 뜻에서 샤오쓰로 불린다. 일류 대학에 입학한 큰 딸과 독실한 크리스천 둘째 딸,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딸과 다르게 두 아들은 골칫거리인 집안이다. 전당포를 들락거리며 도박 당구에 빠진 큰 녀석이나 시험 성적이 시원찮아 야간 중학교로 떨어진 작은 놈이나 속 썩이는 건 비슷하다. 밤이면 건달들과 어울려 쏘다니기 바쁜 샤오쓰는 또래 소녀 샤오 밍과 사귀는데, 그녀가 도피 중인 폭력단 두목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켕긴다. 집에서는 아직도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고, 아이들은 존 웨인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에 열광하고 있으며, 고향을 등진 이주민들은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한다. 토박이 주민들에게 국민당 정부는 침입자이자 지배자로 군림한다. ? ? 어느 한 장르로 묶기 어려울 만큼 폭과 깊이가 넓고 깊다. 사건 하나로 개인에서 가족과 이웃, 사회와 국가까지 녹여낸 서사 구조는 어지간한 소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탄탄하다. 감독은 기록자의 눈길로 담담하되 끈질기게 샤오쓰와 이웃을 바라본다. 샤오쓰의 풋내 나는 사랑도 흥미롭거니와 둘을 에워싼 이들은 개성도 뚜렷하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여성 가수를 흉내 내는 땅꼬마 켓, 장군 아버지를 둔 데다 칼부림한 경력으로 압도하는 샤오마, 약삭빠르게 상대 폭력단으로 옮겨가는 친구도 있다. 가장 독특한 인물은 소공원파의 큰형님 허니이다. 대만 국가가 나오자 부동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걷는 뱃심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무협 소설로 소개해 동생들을 주눅 들게 하는 카리스마. 그래서 그의 최후는 허망하고 당혹스럽고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소년과 소녀의 대화를 캐터필러로 뭉개버리는 탱크 행렬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공기. 혼란과 불안, 단절과 고립, 소외. 공부보다 주먹에 익숙해진 아이들답게 어른들 뺨치는 복수전을 벌인다. 칠흑 같은 어둠과 거센 빗줄기, 섬광처럼 번득이는 동작과 튀는 핏물, 외마디 비명. 세계 범죄영화 항목에 ‘청소년 갱스터 무비’를 추가해도 좋겠다. ? 육체와 정신을 송두리째 짓이기는 권력의 야만성. 회유와 조작, 거짓 자백, 누군가를 엮어야만 내가 풀려난다. 백열등과 얼음덩어리, 텅 빈 공간과 퀭한 눈빛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샤오스의 아버지를 취조하는 사내는 주먹질은커녕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나긋나긋하고 때로는 속삭이듯 심문하더니 쉬는 시간엔 오르간을 연주하며 당나라 시인처럼 흥얼거린다. “창문 밖 비바람 소리에 잠 못 이루니/ 오랜 근심과 고뇌가 머릿속에 계속 맴도네./ 꽃거울에 비치는 수척한 얼굴/ 펴지지 않는 주름살.”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떠오른다. 나치 친위대 장교로 집단 학살을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포악하거나 광기를 지닌 악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는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가족에겐 자상했으며 모든 면에서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렌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점”에 악의 평범성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평범성, 다시 말해 생각의 무능이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는 것이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 국정농단 조역들의 변명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 “시켰으니 따랐을 뿐이다.” 라는 미련하고 뻔뻔한 진술. ? 교실 밖에선 텁텁한 습기를 내뿜지만 수업 중엔 이따금 웃음이 터진다. 틀린 답안까지 베껴 쓰다 들통 난 학생, <山>과 을 비교하며 한자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교사. 28자밖에 안 되는 알파벳이 수모를 당한다.?로이 오비슨의 를 비롯해 , , 등 감미로운 옛 팝송은 분위기 조성에만 봉사하는 게 아니라 소년들의 삶을 엮고 인물들의 관계를 잇는 구실을 한다. 극장에서 아이들의 얼굴에 음향으로 처리한 장면은 하워드 혹스 감독의 <리오 브라보> 마지막 총격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두 번에 걸친 자전거 동행은 슬프도록 막막하다. 커닝했다는 누명을 쓴 아들을 아버지가 다독인다. “네 꿈은 네가 만드는 거야. 노력하기에 달렸지.” 두 번째는 실직당한 아버지를 퇴학 맞은 아들이 위로한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말씀 다 기억해요, 그대로 할 게요.” 그들 부자는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영화는 가망이 없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외로움을 달래거나 두려움을 떨쳐내던 샤오쓰의 손전등. 카메라는 촬영장에 되돌아간 손전등을 클로즈업한다. 빛이 꺼졌으니 어둠이 덮칠 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 인간과 파렴치한 인간이지.” 라는 대사가 심상치 않다. ? ?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소년은 믿었지만 소녀는 믿지 않는다. 곁에서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믿기 어렵다. 변하지 않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세상과 인간 앞에서 소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에필로그와 엔딩에 담긴 의미는 곱씹어볼 만하다.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엘비스 노래 녹음테이프. 아이들이 선망했던 문화의 무기력한 퇴장이다. 도입부와 똑같이 반복하는 라디오 멘트. 대학 합격자 명단이 줄줄이 흘러나오자 아들의 교복을 빨랫줄에 널려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실린 이름 하나 하나는, 소리굽쇠가 공기를 진동시켜 공명하듯 귓가를 맴돌다 환청으로 감긴다.?난폭한 시대와 희생자를 기억하라, 추모하라, 기억하라. 주인공 샤오쓰와 같은 나이에 샛별로 데뷔한 장첸은 이후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와 <일대종사>,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김기덕 감독의 <숨>에 출연하면서 이력을 쌓았다. 작년 제53회 금마장 영화축제에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제작 25주년을 기념해 출연자들이 거의 다 모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기념 영상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즐겁게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영원성, 좋은 영화는 세월을 이긴다. 좋은 영화는 제작진이 만드는 게 아니라 관객이 만든다. ?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홍보용 사진을 게시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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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영화로 세상을 이해하다 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칼럼] 소년, 영화로 세상을 이해하다 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내용을 압축해 지은 우리말 제목이 근사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풍년가를 부를 정도로 쏟아진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회고와 증언, 추적과 고발 같은 다양한 형태로 시대와 인간을 돌아보게 했는데, 감동을 받거나 강요에 지치거나 의외성에 놀라는 등 관객들의 반응과 완성도에서 편차가 심하다. 소재를 광맥에 비유한다면, 쉽게 발견했어도 캐고 갈고 닦기가 어려운 게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Life, Animated)>의 카메라는 20년에 걸쳐 영화를 사랑하는 주인공과 사랑이 일군 기적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앞질러 말하면 ‘올해의 실화’ 상 하나쯤 안겨줘도 좋을 만큼 인물도 사건도 생생하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즐겁게 동업하는 데다 낮고 간결한 목소리로 큰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각별하게 느껴진다. 어느 상황에서도 진심은 통하게 마련인가. 저작권에선 깐깐하다 못해 괴물로 소문난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자비로운 장사꾼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디즈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네 영상을 사용하게 했을 뿐 아니라 소유권과 편집권도 주장하지 않았다. ? 비디오 영상에 담긴 서스킨드 부부와 두 아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본보기로 비치는 첫 장면이다. 특히 막내둥이 오웬은 깨물어주고 싶도록 앙증맞게 뛰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웬의 모습이 펜으로 윤곽만 강조한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바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폐증을 가리키는 영어 ‘autism’은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어 가치중립적이지만, 우리말 ‘자폐’는 ‘스스로 닫다’로 풀이된다. 자의적 고립이라?못을?박은?건가. 자폐증은 사회적 상호 작용 장애와 커뮤니케이션 장애, 제한된 관심과 행동의 반복이 증세로 나타나는 발달장애로, 완치는 어렵지만 두 살 이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세 살 난 오웬이 피터 팬을 맡아 후크 선장 아버지에게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자폐증이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토록 씩씩한 아이가 그림자만 남겼으니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버지가 그날을 떠올린다. “누가 우리 아들을 납치한 거 같았죠.” 영화는 서스킨드 부부를 비롯해 의료진과 사회복지사의 인터뷰, 비디오 클립과 갖가지 스케치 영상을 단서로 그림자를 쫓는다. ? 네 살 무렵 오웬이 내던진 <인어공주>의 대사 한마디는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1년 만에 부모와 눈을 마주친 아들은 또다시 혼자서 횡설수설에 비틀비틀. 의사의 진단대로 들은 말을 따라하는 ‘반향 언어’에 그친 걸까. 깜깜한 4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오웬이 투덜거린다. “월터 형은 피터 팬처럼 어른 되길 싫어해요.” 기적이자 신비였고 빛이 내리는 순간이었다. 오웬은 사라진 게 아니고 영화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디즈니 영화를 가이드로 삼아 세상을 구경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 팬은 디즈니 영화 나라를 상징하는 캐릭터라는 점도 흥분을 자아낸다. 오웬처럼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째로 외운 가족들은 영화 대사로 오웬과 말문을 트고, 아버지는 아들의 연기 파트너로 나선다. 그때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알라딘>의 사악한 조수 이아고를 온갖 과장된 표정으로 재연하는 장면이 눈물겹다. 타인과의 교류가 어려운 장애여서 가족의 사랑으로만 감싸야하는 나날. 부모들이 겪는 아픔과 인내, 수고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 ?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내용을 굳이 나눈다면 전반부엔 어린 오웬 모습에 부모의 탄식과 소망이 겹치고, 후반부는 대학 졸업을 앞둔 오웬이 독립생활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잡는다. 청년 오웬은 디즈니 영화 감상회를 주관하며 여자 친구도 사귀고 직장을 구하려 다닌다. 어린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23살 청년과 극진한 사랑으로 격려하는 가족들을 보는 일은 즐겁다. 조바심이 나지도 않거니와 측은한 마음이며 동정어린 시선 따위는 얼씬도 못한다. 세상 문을 두드리는 오웬의 손길을 잡기 위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신데렐라>, <정글북>과 <피노키오> 등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15편이나 띄운다. 꿈과 희망, 설렘으로 유년기를 물들인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행운이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란 자폐 증세와 함께 절대 음감과 기억력, 암산과 미술 등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더스틴 호프만이 아카데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챙긴 <레인맨>과 샤룩 칸이 자폐아를 연기한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은 그런 특성을 적절히 활용했다. 이에 견줘 오웬의 빼어난 그림 솜씨는 천재성이라기 보다는 격정이자 고요한 내면 풍경으로 봐야 한다. ? 어릴 적부터 오웬이 몰두한 작업은 디즈니 영화의 인물들을 스케치북에 옮기는 일이었다. 특이하게도 영웅보다는 그를 보좌하는 들러리(Sidekick)를 그렸다. ‘일곱 난쟁이’의 활약이 말해주듯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들러리들은 대부분 유쾌하고 짓궂은 성격이어서 공주와 왕자, 미녀와 야수, 숙녀 강아지와 건달 강아지 같은 커플들의 중매자로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런 익살스런 감초급 캐릭터들을 미로로 보내고 뒤쫓는 이야기가 오웬의 서명도 뚜렷한 <길 잃은 들러리들의 땅 (The Land of the Lost Sidekicks)>이다. 로저 로스 윌리엄스 감독은 프랑스의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그 오묘한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처음엔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처럼 요동치는 굵고 어두운 붓질로 불안과 공포를 묘사하더니 점점 밝고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들로 채워나간다. 귀기서린 몰골의 악당은 오웬이 마주했던 도전에 상응하는 것이고, 악당의 파워는 오웬의 자폐를 상징한다는 윌리엄스 감독의 해설은 흥미롭다. 비디오테이프를 빠르게 되감는 듯한 음향에 오웬의 혼잣말을 입힌 것도 그런 이유일 터이다. 감독이 가장 공들인 들러리들의 이야기는 세계 어느 단편영화제에서도 박수를 받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 ? 이들 가족에겐 타인들의 시선도 무겁지만 시간은 더욱 짓누르며 흘러간다. 언젠가는 아이와 이별해야 하는 절박함과 두려움.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소원은 딱 한가지이다.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사는 것. 그런 걱정에 마음이 무거운 형 월터를 보면 오웬은 외롭지는 않을 듯싶다. 상처는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가. 잠 못 이루는 오웬이 어머니를 깨운다. “왜 인생은 부당한 고통과 비극으로 차있어요?” “산다는 건 늘 그래왔고 늘 그럴 거야.” “그럼 진실을 마주하고 영원히 슬퍼해요?” “아니, 영원하진 않아. 그냥 진실을 마주하고 견디면 차차 나아지지.” 며칠 사이에 성큼 자란 듯한 오웬이 프랑스 학회의 초청을 받아 강단에 오른다. 자폐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열정을 이용해서 세상을 이해하는가. 오웬은 <노틀담의 꼽추>의 종치기 콰지모도를 인용해 질문에 답한다. 당당하고 힘차고 아름다운 연설은 이 영화가 남기는 교훈과 위로이다. 텅 빈 극장에서 <라이언 킹>과 마주하는 오웬. 지난날에 머문 곳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으며, 이제 세상과 애니메이션은 다르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터이다. 왕국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산을 오르는 심바 왕자처럼 오웬에게도 등정할 일만 남았다. ? 서울 어느 지역에서 장애아 부모들이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설립을 호소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부끄럽고 황당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다. 님비(Not In My BackYard), 다시 말해 지역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지난 15년 동안 서울에 새로 생긴 특수학교는 하나도 없다.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는 전국을 통틀어도 7곳에 그친다. 장애인 학교를 혐오 시설로 몰아붙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혐오시설이라니, 그 아이들이 ‘불가촉천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미성숙한 사회, 문화후진국을 자처하는 판에 헌법의 평등 정신을 거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누기는커녕 주어진 기회마저 빼앗는 건 만행에 가깝다. 오웬 서스킨드를 세상 속으로 떠민 것은 디즈니 영화지만, 가족의 사랑과 이웃의 배려도 큰 힘이 되었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은 사랑스런 청년의 앞날을 응원하게 만들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죽비처럼 내리친다. ?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이미지를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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