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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추석 시즌 한국영화들

[기타] [기자노트] 추석 시즌 한국영화들

[글. 국제신문_이원 기자] 온가족과 친지가 모여 가을 추수의 기쁨과 조상의 공덕에 감사드리는 추석이면 긴 연휴에 다양한 영화가 개봉하기 때문에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올해는 연휴가 길어 ‘물괴’를 시작으로 ‘협상’, ‘명당’, ‘안시성’까지 무려 4편의 한국영화가 관객과 만났다. 각 영화들은 각기 다른 장르와 흥행 포인트를 가지고 관객을 맞았는데, 특히 추석 코앞인 19일에 개봉한 ‘협상’, ‘명당’, ‘안시성’은 2003년에 개봉한 ‘클래식’의 주연배우인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이 주연을 맡아 소위 ‘클래식 매치’를 성사시켰다. 화려하고 다양해진 라인업으로 우리의 설레게 만든 추석 시즌을 겨냥해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만나보자. ? ?■ 한국 최초 크리쳐 액션 사극 영화를 표방한 ‘물괴’ ? ‘물괴’는 중종 22년, 조선에 나타난 괴이한 짐승 ‘물괴’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로 강렬한 스토리,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개, 스릴 넘치는 긴장감까지 갖춘 오락영화다.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 방에서 나와 서명문을 향해 달아났다.’는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59권’에 실린 이 문장에서 시작된 ‘물괴’는 한국영화 최초 크리쳐 액션 사극을 표방한 영화다. ‘크리쳐 영화’란 생명이 있는 존재를 뜻하는 ‘크리쳐’(Creature)와 영화의 합성어로, 실존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장르물을 일컫는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과연 물괴가 어떻게 디자인되어 나올지 궁금증이 많았다. 출연배우들인 김명민이나 김인권 또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했는데, 실제 물괴는 마치 광화문 앞의 해태상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괴수이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드는 한국적 괴수가 매력적이다.또한 정치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중종(박희순)을 도와 물괴를 쫓는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과 그의 오른팔 성한(김인권), 윤겸의 외동딸 명(이혜리), 왕이 보낸 허 선전관(최우식)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히 김명민과 김인권 콤비는 마치 ‘조선명탐정’의 김명민, 오달수 콤비에 버금가는 케미를 보이며 ‘물괴2’가 제작된다며 더욱 기대되는 콤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물괴’는 역사적 배경 속에 친근하지만 압도적인 괴수 캐릭터, 그리고 물괴를 쫓는 인물들의 탄탄한 호흡이 영화적 재미를 주는 영화다. ? ■ 손예진과 현빈의 모니터 케미 ‘협상’ ? 손예진, 현빈 주연의 ‘협상’ 또한 한국영화 최초로 협상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로, 태국 방콕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시간 내에 인질범 민태구(현빈)의 살상을 막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이 12시간의 피말리는 협상을 하게 되는 영화다. 역시 ‘협상’의 관전 포인트는 협상가와 인질범으로 나선 손예진과 현빈의 호흡과 이를 위해 한국영화 최초로 대부분의 장면을 이원 촬영으로 진행된 촬영 방법을 들 수 있겠다. 장르, 역할을 가리지 않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손예진은 자타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협상’에서도 전형적인 협상가가 아닌 ‘손예진화’된 협상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왜 최고의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협상가의 모습은 사건 앞에 냉정하고, 논리적인 그래서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손예진이 연기한 하채윤은 직업인으로서 협상가의 모습을 지녔으면서도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범인의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도 하는 보다 인간적인 협상가를 보여준다. 지난해 ‘공조’로 흥행 파워를 과시했고, 장동권과 함께 출연한 ‘창궐’의 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현빈은 ‘협상’에서 인질범 역을 맡았다. 멋진 외모를 지닌 그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서서히 그의 말에 빠져들게 만들며 연민을 갖게 만드는 인질범을 연기하고 있다. 각기 새로운 느낌의 협상가와 인질범을 연기한 손예진과 현빈의 협상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원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즉, 한 건물에 2층에는 손예진이 있는 모니터실 세트를, 1층에는 인질극을 펼치는 창고 세트를 지어 동시에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그래서 두 배우는 ‘레디 액션’이라는 소리에 각자의 모니터를 보며 즉흥 연기에 가깝게 연기했으며, 그래서 실제 협상에 가까운 긴장감을 준다. ‘협상’은 한국영화 최초의 협상가 캐릭터를 연기한 손예진과 생애 첫 악역을 연기한 현빈,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러닝타임 내내 몰입감을 주는 새로운 장르영화다. ? ■ 풍수지리와 역사의 만남, ‘명당’ ? ‘관상’, ‘궁합’에 이은 주피터필름의 역학 시리즈 마지막 편인 ‘명당’은 19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왕이 될 수 있는 천하명당을 차지하려는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과 김씨 부자(백윤식, 김성균)의 대립과 욕망을 그린 영화다. 삼국시대 때 도입된 풍수지리는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며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과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은 풍수지리 입장에서 보면 거의 완벽한 명당자리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명당’은 왕의 자리를 탐냈으며, 결국 자신의 아들을 왕의 자리에 앉게 한 흥선대원군이 충남 가야사 옛터에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썼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명절과 어울리는 풍수지리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흥행 포인트다. 영화 내내 풍수지리가 권력에 어떤 영향을 주고, 권력에 눈이 먼 흥선과 김씨 부자가 왜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려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지성과 백윤식, 김성균이 연기한 세 인물은 야욕에 불타는 모습을 열정적으로 연기한다. 이들 사이에서 순리를 지키며 왕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의 인물 박재상을 연기한 조승우의 연기 또한 빛난다. 가상의 인물인 박재상을 연기한 조승우는 각 인물들과 관계하면서 전체 이야기를 조율하는 연기를 보여주며 그가 왜 뛰어난 배우인지를 각인시킨다. ‘명당’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명당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이를 역사에 잘 결합시킨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조승우의 연기가 볼만한 영화다. ? ■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액션 블록버스터 ‘안시성’ ?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안시성’은 654년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 태종이 20만 군사로 안시성을 침공하자 이에 맞서 성주 양만춘과 전사들이 결사항전을 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그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사극은 많았으나 민족 최대의 제국인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안시성’은 역사에 남아 있는 안시성과 양만춘에 관한 단 3줄뿐인 기록으로 시작됐다. 남아 있는 사료로 고증 가능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했으며, 나머지 부분은 역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지략 싸움이 돋보인다. 그래서 마치 실제 고구려 역사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답게 총 제작비 220억 원이 들어간 ‘안시성’은 보조 출연자 6,500여 명, 말 650필, 당나라 갑옷 168벌, 고구려 갑옷 248벌, 총 7만 평 부지에 11m 수직 성벽 세트, 총길 180m 안시성 세트, 5천 평 규모의 토산 세트 등에서 영화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여기에 영화의 포문을 여는 주필산 전투를 시작으로, 2번의 공성전,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토산 전투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사극 액션의 최고치를 보여준다. 특히 리얼한 액션 신 촬영을 위해 스카이워커 장비로 360도 촬영을 했고, 드론, 로봇암, 팬텀, 러시안암 등 최첨단 촬영 장비가 총동원됐다. 또한 영화의 중심축을 이끄는 양만춘 역의 조인성을 비롯해 그를 보필하는 안시성의 부관 추수지 역의 배성우, 최강 기마부대를 이끄는 기마대장 파소 역의 엄태구, 당나라 황제 이세민 역의 박성웅 등의 연기가 곁들여지며 ‘안시성’의 화려한 볼거리를 완성한다. ‘안시성’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사극 액션과 지략 싸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앙상블을 이룬 한국 사극영화의 이정표를 이룬 영화다. ? 글. 국제신문_?이원 기자 ? 사진제공. ‘물괴’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 ‘협상’ CJ엔터테인먼트 / ‘명당’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안시성’ NEW ?

  • 작성일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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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르고 아득하고 허망한 사랑, 영화 <체실 비치에서>

[칼럼] 서투르고 아득하고 허망한 사랑, 영화 <체실 비치에서>

영국 영화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의 원작은 국내에도 꽤 알려진 이언 매큐언의 장편 소설이다. 명조체를 기울여 쓴 제목에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길을 떠나는 흰 원피스의 여인. “당신이 가지 않았던 길 그 끝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라는 뒤표지 글귀. 사연 많은 멜로드라마 예고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목뼈에 진동이 일어난다. “하나의 점처럼 무한히 작고, 거의 추상에 가까웠던 그 느낌은 작고 둥그스름한 얼룩처럼 커지더니 계속 팽창해갔다.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한 개의 모낭에서 발산되는, 기분 좋은 통증의 공허한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몸 전체로 확신되다가 이제 몸 속 깊은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전희 과정을 묘사한 이 대목엔 내로라하는 에로티시즘 신봉자도 마른 침을 연거푸 삼켰을 터이다. ‘인간의 나약함이 빚은 슬픈 운명’ 은 매큐언이 즐겨 다루는 주제다. 여기 해변에서도 그는 탄식하듯 뇌까리며 돌아선다.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 매큐언 원작의 영화는 모두 세 편이며 이번이 두 번째다. “아름답고 장엄한 허구적 파노라마”로 평가받은 동명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어톤먼트>는 유려한 연출을 과시한 조 라이트 감독을 비롯해 끔찍한 오해의 제물이 된 연인들로 나온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열연이 볼 만했다. 특히 현실과 환상을 혼동해 '평생 잊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13세 소녀를 연기한 시얼사 로넌은 데뷔작으론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라이징 스타’에서 ‘차세대 리더’로까지 성장한 로넌은 <체실 비치>에서 적역 캐스팅의 위력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도미닉 쿡은 낯선 이름이지만, 원작자가 직접 각색한 덕분에 영상은 활자의 무게에 눌리진 않는다. 체실 해변은 잉글랜드 남서부 브리드포트에서 포틀랜드 섬까지 이어진다. 파도가 수천 년 공들여 깎은 자갈들이 갯벌 석호를 보호하는 방파제처럼 200미터 폭으로 29킬로미터나 깔린 절경이다. 소설은 첫 단락에서 주인공 남녀의 이력과 특성을 간결하게 두 줄로 표현한다. 그런데 영화는 밝고 빠른 재즈 색소폰 연주로 적막한 바닷가를 흔들며 화면을 연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이런 이질감이다. ? 1960년대에 들어선 영국은, 식민지들이 하나둘씩 독립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명성이 기울어가는 시기였다. 에드워드 (빌리 하울)와 플로렌스(시얼사 로넌)는 체실 비치의 외딴 호텔로 신혼여행을 온다. 웨이터들의 시샘 어린 장난과 첫날밤을 맞는 남녀의 어색한 몸짓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익숙해진 광경이다. 그런데 런던에서 온 이 커플은 밤이 이슥한데도 똑같은 포즈로 구경꾼들을 감질나게 만든다. 수입소의 허벅지에 목도장 찍듯 키스를 하는가 하면, 술래잡기 스타일로 포옹만 해대니 말이다. 게다가 가까스로 올라간 침대에서는 별난 육탄전을 치른다. 신랑이 얌전하게 공격하면 신부는 완강하게 방어한다. 민망함과 미안함이 서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성문제를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시대라지만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가 아닌가. 어떻게 만나 어떤 식으로 사귀었기에 이토록 소심하고 서투를까. 영화는 모두 14번에 걸친 플래시백을 통해 닫힌 시간들을 불러낸다. 가까운 과거에서 먼 과거로 이동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어수선하지는 않다. ? “사랑은 이성(異性)을 환상으로 만들지만, 섹스는 환상의 대상을 현실로 만든다.” 이어령의 예지에 넘치는 에세이 한 대목이다. 로큰롤을 좋아하는 남자와 클래식에 심취한 여자. 취향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한다. 뇌를 다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와 온순하되 무기력한 아버지를 둔 뒤숭숭한 집안에서 자란 에드워드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대학교수로 자주 격식을 따진다. 처음엔 무시당했으나 데릴사위처럼 귀염을 받는 에드워드에겐 건강한 남편으로 사랑을 나눌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들 관계는 결혼을 앞둔 성인들의 교제라기보다 몰이해에 바탕을 둔 소꿉놀이 같은 연애였다. 자석처럼 상대를 끌어 들이면서 동시에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왜 두 사람은 성에 대한 인식 차이를 털어놓지 못했을까.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과 다프네 흉내를 내려는 걸까. 에드워드는 싱싱한 욕망을 무기로 어떻게 돌진할 것인가를 고민한 반면 플로렌스의 내면 밑바닥에는 어린 시절의 악몽이 똬리를 틀었다. ? 감상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 몇 가지를 올린다. 스포일러는 아니고 참고 사항. 117년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위그모어 홀은 550석 규모의 실내악 전문 공연장으로,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탐내는 영국 데뷔 무대로 유명하다. 에드워드의 유대인 친구가 흠모하는 가브리엘 마르셀(1889~ 1973)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다. ‘불안과 고독’보다는 ‘기쁨과 경탄’을 사유의 바탕으로 삼은 철학자답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 걸 뜻한다.”는 멋들어진 명언을 남겼다. 파울로 우첼로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로 ‘원근법의 발명자’로 불린다. 에드워드의 어머니가 모사한 <숲속의 사냥>은 우첼로 말년의 걸작으로 꼽힌다. 플로렌스가 이끄는 현악오중주단 ‘에니스머’는 여자 기숙사 이름에서 따왔다. 에드워드와 요란하게 춤을 추는 플로렌스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옥타브 도약”이라 목청껏 소개한 클래식은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1악장이다. 에드워드가 열광한 가수 척 베리(1926~ 2017)는 로큰롤 음악의 창시자이자 기타 연주의 전설이며 영화에선 이 흐른다. ? 스스로 유폐시킨 기억은 두려움을 낳고 혐오를 키운다. 플로렌스의 음습한 기억은, 소설에서는 짧아도 뚜렷이 잡히지만 영화는 빠른 크로스 커팅으로 암시만 할 뿐이다. 차이를 인정하지도 않거니와 아량도 포용력도 없는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욕망과 공포, 망설임과 외면. 매큐언의 이전 소설 <칠드런 액트>의 한 구절을 차용해도 좋겠다. “그가 머무른다면 모욕, 그가 떠난다면 심연.” 해변에서 카메라의 긴 호흡을 능숙하게 빨아들인 두 배우는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원작과 동떨어진 에필로그를 놓고 매큐언답지 않다고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반부 위그모어 홀에서 에드워드가 내지른 환성을 떠올린다면 사족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무엇보다 눈물이야말로 그들 노령의 마지막 물기일 터이니까. “사랑하면 섹스를 할 수 있다.”에서 “섹스를 해 봐야 사랑을 할 수 있다.”로 바뀌어 가는 시대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와 자고, 여자는 함께 잔 남자를 사랑한다.”는 웃지 못 할 농담도 쉽게 내던진다. 섹스는 사랑을 위해 나누는 몸의 교감이 아니겠는가. 나약하고 어리석고 교만한 선택에 대한 회한과 연민을 담은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인생에서 인내와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일깨운다. 그러니 타인의 말과 행동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배울 일이다. ?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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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며 도전하는 인생의 파도타기, 영화 <비트윈 랜드 앤 씨>

[칼럼] 꿈꾸며 도전하는 인생의 파도타기, 영화 <비트윈 랜드 앤 ...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벨벳처럼 부드럽게 거품을 뿜는 기네스 맥주. 서유럽 끄트머리에 놓인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두 가지이다. 살기 좋은 나라나 행복지수를 따질 적마다 아일랜드는 상위권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그곳 풍경과 국민들 특성은, 아이리시 후손 존 포드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긴 <말 없는 사나이(The Quiet Man)>(1952)에 잘 드러난다. 그런데 과묵한 사나이가 맹렬히 밀어붙인 탓인지 한국에선 <아일랜드의 연풍>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최근 들어 아일랜드 알리기에 가장 공을 들인 영화로는 <원스>가 꼽힌다. 버스킹으로 유명한 거리 그래프턴과 악기점 월튼, 커피숍 사이먼즈 플레이스 등 수도 더블린의 명소를 두루두루 담았다. <러브, 로지>와 <프로포즈 데이>는 포트마녹 해변과 위클로 공원을 비롯해 선사시대 유적이 남은 글렌달록과 딩글 반도를 오가며 관광객을 유혹했다. 이제 아일랜드 감독 로스 휘태커가 소개할 곳은 서쪽 클레어 주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라힌치. 세상 모든 서퍼들의 놀이터이자 낙원, 그래서 ‘비트윈 랜드 앤 씨(Between Land and Sea).’ ? 널빤지 하나로 파도를 가르는 사람들 이야기는 한여름 극장가의 단골 소재였다. 미국 사회가 겪는 혼란상을 젊은이들의 사계절 서핑에 투영한 <빅 웬즈데이>를 비롯해 <드리프트>와 <라이드>의 물결도 거셌지만, <폭풍 속으로>에서 드라마와 즐겁게 동업한 파도는 가히 명물이었다. 궤변도 그럴싸한 은행 강도 패트릭 스웨이지가 거대한 풍랑에 휩싸이는 엔딩은 시원하고 섭섭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크레타 섬 부근일 것이다. 한국 여성이 외국인 남편의 식당일을 거든다는 오래 전 기사였다. 지중해 에메랄드빛에 반해 눌러앉았고 끝내 그리스 어부와 결혼했다는 그 여인의 안부가 궁금하다. <비트윈 랜드 앤 씨>에서 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톰과 아내 라켈의 사연도 비슷하다. 국적이 다른 남녀의 사랑을 키워 가정을 꾸리게 한 브로커는 파도였으니까. 광산 기술자 남편은 틈만 나면 파도를 타고, 아내는 과학 전공자다운 부업으로 생계를 돕는다. 의지와 결정, 책임. 노력하고 즐겨라.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 ? ? “어떤 스포츠에도 이보다 좋은 곳은 없어요.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여기죠.” 그에게 바다는 세상이 제공한 짙푸른 원형경기장. 서핑 스타로 이름을 떨치다 귀향한 올리 오플레어티의 서핑학 개론에 곁들인 영상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생생하다. 고도의 평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이 필요한 몸놀림. 빌딩 한 채만한 물결을 끌고 가는 서퍼들의 동작은 마술이자 곡예이고 예술이다. 초강력 자석이 달린 듯한 보드로 공중제비를 돌며 매끈하게 빠져나가는 테크닉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쾌감과 스릴, 낭만만 있는 경기장은 아니어서 서퍼들은 치솟자마자 곤두박질치며 묻혀버리기도 한다. 높이와 폭을 변덕스럽게 바꾸는 괴물, 낮은 포복으로 덮치는 하얀 포말의 군단. 순간이 방심이 빚어내는 참극. 히말라야를 오르다 눈덩이와 함께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공포에 버금간다. 다치지 않고 얼마나 오래 파도를 탈 수 있을까. 돈이 안 되는 일을 어떻게 더 열심히 계속할 수 있을까. 고뇌에 잠긴 서핑 철학자는 후배들을 길러낼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바다에 뛰어든 휘태커 감독은 서핑의 종류와 방법, 장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신나고 날렵한 점프와 텀블링을 가까이서 온 몸으로 느끼지만 서핑 찬가만 부를 생각이 없다. 퍼갤 스미스, 이전엔 세상 곳곳의 파도를 제압한 선수였고 지금은 임대한 밭을 일구며 가족을 돌보는 농부이다. 보드대신 곡괭이를 든 그는 마음을 때리는 풍랑과 맞서야 한다. 청춘을 투자했지만 서핑은 가장의 생계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싹을 틔운 농작물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그를, 아일랜드 시인의 노래로 응원하려니 조금은 머쓱하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을 일구고 꿀벌 집을 지으리라/ 벌들이 윙윙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 거기서 평화롭게 살리라.” (<윌리엄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에서>). 퍼갤은 농부로서 소박한 삶을 소망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몽골인의 게르 엇비슷이 천막을 엮어 거처를 마련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바다를 떠나 유랑하는 삶에 이니스프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 “난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나?” 청소년 시절에 서핑 대회를 석권했고 잡지 표지 모델로 활약한 서핑 강사 존 매카시. 멋진 파도를 만날 때마다 인생을 걸고 덤볐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런 그가 생애 처음 맞닥뜨린 엄청난 파도에 갇혀 바다 깊숙이 납덩이처럼 가라앉는다. 숨이 멎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 존이 체험한 기적은 어떤 유창한 설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감사할 조건을 찾는 삶. 감사의 분량이 바로 행복의 분량이라는 확신. 자기 재능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를 귀하게 여기면 그가 다 살필 것이니.” 존의 고백과 평안은 <불의 전차>의 유대인 스프린터 에릭 리델을 떠올리게 한다. 서퍼들의 꿈과 현실, 갈등을 들여다 본 <비트윈 랜드 앤 씨>는 잔잔하게 때론 휘몰아치는 인생의 파도타기에 관한 메시지를 남긴다. 굳이 ‘욜로 라이프’를 들먹일 필요는 없겠다. 싫어하는 일로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그러니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며 도전해볼 일이다. 200미터 높이로 8킬로미터를 늘어선 모허 절벽과 파도가 눈에 밟힌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이 무더위를 씻어줄 선물이자 우리 인생살이에 교훈을 주는 영화다. ?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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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훔치고 체온을 나누다, 영화 <어느 가족>

[칼럼] 마음을 훔치고 체온을 나누다, 영화 <어느 가족>

괴상하게 바뀐 제목이 또 말썽이다. 원제 <만비키 가족>에서 일본어 ‘만비키(万引き)’는 ‘도둑’ 또는 '도둑질'을 뜻한다. 어감이 마뜩찮거나 흥행에 걸림돌로 점쳐진다면 내용을 헤아려 ‘좀도둑 가족’ 이나 ‘가족 도둑단’ 정도로 옮기면 될 일이었다. 집단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준 명사대신 어렴풋한 무언가를 가리키는 관형사를 고집한 까닭을 모르겠다. 도둑질 자체를 스포일러라 생각하고 미리 연막을 치는 걸까. 영어 제목도 좀도둑을 가리키는 ‘Shoplifters’를 사용했으니 더욱 아리송할 뿐이다. 요즈음 영화업자들의 등급 하향을 겨냥한 가위질이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노이즈 마케팅, 돌팔이급 작명술은 관객에 대한 무례를 넘어 농락이자 만행이다. 도둑을 도둑이라 부르지 못하는 구경꾼 신세라니. 그런데 분통을 삭이고 헛똑똑이들의 몰상식을 잠깐 눈감아 준다면 영화 <어느 가족>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칸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모조리 제친 도둑들은 마음까지 훔친다. ? 21세기 일본 영화를 세계무대에 우뚝 세운 주인공이자 가족 영화 전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비정한 사회가 내팽개친 네 남매의 비극 <아무도 모른다>를 비롯해 <걸어도 걸어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작품 목록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가족은 고레에다 감독에게 오랜 화두였다. 신문 기사 한 줄에서도 소재를 캐내며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그는 가정이란 둥지에서 겪는 갈등과 고통, 상처를 들여다본다. 늘 따뜻한 눈길에 희망을 제시하는 마무리. 일찍이 할리우드는 <패밀리 비즈니스>(1989)에서 세대별 도둑으로 숀 코너리와 더스틴 호프만과 매튜 브로데릭를 내세웠는데, 이제 보니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뛰는 도쿄 패밀리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도쿄 선수들의 실력은 첫 장면부터 출중하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슈퍼마켓에서 통신병처럼 신호를 주고 받더니 진열대의 상품들을 쇼핑하듯 익숙하게 훔쳐낸다. 깔끔한 뒤처리에 돌아가는 발걸음도 경쾌한 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어린 소녀를 발견한다. 흉터와 야뇨증이 알려주는 학대와 방치. 다섯 살 소녀 쥬리의 절도단 편입은 권유가 아닌 선택이다. ? 난민 수용소와 엇비슷한 다다미방에서 북적대는 좀도둑 일당. 독거노인 행세를 하는 할머니 하츠에 (키키 키린)를 비롯해 아들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며느리 노부요(안도 사쿠라), 손녀 아키(마츠오카 마유)와 막내둥이 쇼타, 그리고 신참 쥬리는 궁핍한 형편에서도 결속력 하나는 남부럽지 않다. 아들 부부는 각각 공사판과 세탁 공장에 나가고, 손녀는 ‘숫총각 죽여주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벌이는 시원찮다. 주요 수입원은 할머니가 받는 연금이지만 2인조 때론 3인조 털이범이 생계를 거든다. “가게가 안 망할 정도만 훔치자.”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다.” 고양이가 생선 가게 걱정하는 꼴이 우습고, 소유권 이전을 선포하는 위용엔 압도를 당한다. 잔기술에 능숙한 원로부터 고강도 스킬을 보유한 중년과 점점 대담해지는 소년, 섬세하고 재빠른 손놀림을 전수받는 신입 등 팀워크는 단단하고 끈끈하다. 그렇다고 범죄를 독려하거나 미화한다고 시비를 걸면 곤란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혜와 포용력이라는 점에서 구멍가게 할아버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방관하거나 냉담한 기성세대를 에둘러 비판하는지도 모르겠다. ? 3대를 잇는 족보지만 차근차근 뜯어보면 야릇한 구석이 있다. 아들 녀석은 어찌된 일인지 부모를 아빠, 엄마로 부르는 법이 없다. 잠자리를 갖지 않는 건 접어두더라도 부부는 남편과 아내로 보기엔 석연치 않으며, 배 다른 자매라는 처제 또한 수상쩍다. 나들이할 적마다 위자료 명목으로 봉투를 챙겨오는 할머니의 전력도 의심스럽다. 이렇듯 특이한 직업보다 훨씬 특이한 인물 관계가 플롯의 역동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의혹어린 눈초리를 잠시 거둔다면 누구들처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맛 볼 수 있다. 저마다 목을 빼고 감상하는 불꽃놀이, 매미 유충 채집에 나선 정겨운 남매, 바닷가에서 작별을 앞둔 애틋한 미소, 부부의 한낮 정사를 식히는 빗줄기, 거울에 비친 자매의 살가운 포옹 등 단란하고 화목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잡채와 밀개떡을 버무린 전골 요리, 컵라면에 곁들이는 고로케, 삶은 옥수수와 소면 같은 고레에다표 식단은 식구와 밥상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훈훈한 가족 이야기로 내달리던 영화는 스키드 마크를 찍듯 사회성 짙은 스릴러로 뒤튼다. 여린 그는 저항했을까, 투항했을까. 스포일러가 지뢰처럼 깔린 후반부는 자칫 뇌관을 건드릴까 귀띔하기도 쉽지 않다. 꼬이고 감춰진 비밀들이 한 가닥씩 풀리며 냉기서린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쾌감까지 안겨 줄 수 있는 사건과 상황이었다. 카메라를 가정에서 사회로 옮긴 감독은 매섭지만 분노하지 않는다. 독창성에 보편성을 더하고 때론 우아함을 얹은 연출이어서 신파는 얼쩡거릴 틈도 없다. 그동안 고레에다의 배우들 연기는 감정 절제, 문장으로 치면 행간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클로즈업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격렬하게 터뜨린다. 특히 안도 사쿠라가 구사한 다양한 감정 표현은 취조실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렇게 뜨겁도록 서러운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전율을 자아내는 72초의 클로즈업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키키 키린은 여유롭고 넉넉한 자세로 경륜을 보여주고, 릴리 프랭키는 특유의 능청에 진지함을 보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아무도 모른다>로 칸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따낸 고레에다는 이번엔 죠 카이리와 사사키 미유라는 어린 배우들을 기막히게 조련한다. ? 모든 사회 문제는 가족 문제다, 라는 지적은 옳다. 갈등과 해체, 소외와 방황 등 가족 문제를 한 집안의 골칫거리나 개인에게 맡겨진 고민 정도로 취급하면 안 된다.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로 인식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거 말고는 가르칠 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역부족이야.”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절도단 부부가 뇌까리는 외마디가 가슴을 후빈다. 그들은 힘에 부쳤어도 실패하지는 않았다. 아픈 만큼 소중한 기억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극심한 양극화와 헐거워진 사회 안전망을 보며 고레에다 감독의 근심은 깊어가지만 돌아눕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에세이 한 구절을 읽어보자.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굴곡의 인생사에서 관계를 탐구한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영화 세계의 확장이자 가족 영화의 결산으로 평가받아야겠다. 나눌수록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세상을 꿈꾸며.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 작성일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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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여름시즌을 노리는 국내외 대작 영화들

[기타] [기자노트] 여름시즌을 노리는 국내외 대작 영화들

[글. 국제신문_이원 기자] ? 1년 영화계의 가장 큰 대목인 여름 시즌을 앞두고 더위만큼이나 극장가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미 4월 25일에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5월 극장가를 한 차례 달궜으며, 이후 ‘독전’,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예열을 마쳤다.?올해 여름 시장을 노리는 <앤트맨과 와스프> <인랑> <미션임파서블: 폴아웃> <신과함께-인과 연> 등 국내외 기대작들은 7월초부터 8월까지 대거 포진해 있어 뜨거운 더위에 맞서는 피서 관객을 극장으로 모을 태세다. 올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여름 영화들을 개봉 순서대로 살펴봤다. ? ■ <어벤져스4>의 단서를 지닌 <앤트맨과 와스프> ? 본격적인 여름 극장가의 포문을 여는 작품은 한국 관객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마블스튜디어오의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다. 전 세계 최초로 7월 4일에 개봉하는 <앤트맨과 와스프>는 ‘시빌 워’ 사건 이후 히어로와 가장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트맨과 새로운 여성 파트너 와스프의 활약을 그린 블록버스터다. 이번 편에서 앤트맨은 신체는 물론, 물건들의 사이즈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능력을 선보인다. 또한 앤트맨과 마찬가지로 신체 사이즈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양손에 장착된 블래스터와 날개를 활용해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는 와스프가 파트너로 등장한다. 이들이 맞서야 할 악당은 정체불명의 빌런 고스트로, 고스트 또한 여성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 무엇보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마블 10주년이 히든카드이자 20번째 작품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어두운 분위기로 마쳤던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치트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마블 맨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로 꼽히고 있다. 치트키의 힌트를 주자면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로의 세계로 축소돼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모든 개념이 사라지는 ‘양자영역’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 마블의 영화 세계는 무한 확장된다. ■ 속편으로 돌아오는 <인크레더블 2> ? <앤트맨과 와스프>에 이어 가족 관객들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인크레더블 2>가 북미보다 한 달 가량 늦은 7월 19일(예정) 지각 개봉한다. 북미에서는 6월 15일 개봉해 단박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인크레더블 2>는 화려한 액션과 더불어 코미디와 가족애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방학을 맞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극장을 찾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전편에 이어 엄마 헬렌이 국민 히어로 일라스티걸로 활약하고, 대신 아빠 밥은 3남매를 맡아 육아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악당이 등장하면서 슈퍼파워 가족은 다시 한번 ‘인크레더블’(믿기 힘든)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올 여름 유일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흥행 포인트다. ? ■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빅뱅, <인랑> VS.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올 여름 극장가의 관전 포인트 중 빼놓을 수 없는 큰 판이 7월 25일 펼쳐진다. 김지운 감독,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주연의 <인랑>과 ‘톰 아저씨’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 정면충돌하기 때문이다. 두 기대작이 같은 날 개봉을 하면서 관객들은 어느 영화를 먼저 볼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됐다.? ? 먼저 순제작비 160억 원이 투입된 <인랑>은 남북한이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반통일 테러단체가 등장한 혼돈의 2029년,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숨 막히는 대결 속에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담았다. 북미회담으로 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는 현재 사회적 정서 때문에 <인랑>에 더욱 관심이 가는데, 늑대를 비롯한 요원들 간의 강력한 액션과 카 체이싱, 총격 액션이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만나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최정예 특기대원 임중경 역을 맡은 강동원, 임중경의 눈앞에서 자폭한 빨간 망토 소녀의 언니 이윤희 역에 한효주,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 역에 정우성, 특기대 해체를 주도하는 공안부 차장 한상우 역에 김무열, 섹트 대원이자 이윤희의 친구 구미경 역에 한예리, 임중경을 엄호하는 정예 특기대원 김철진 역에 최민호 등 초호화 캐스팅은 올 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친한파 배우 톰 크루즈가 최고 스파이 요원 에단 헌트로 돌아온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그간 에단 헌트와 IMF팀이 행한 모든 선의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로 돌아오면서 피할 수 없는 미션을 끝내야만 하는 위기의 상황을 그린다. 톰 크루즈는 연기 인생 최초 헬기 조종에 도전해 스턴트맨 도움 없이 직접 헬리콥터 액션을 선보이며, 리얼 스카이다이빙, 바이크 액션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이 영화 전편을 수놓는다. 또한 기존의 배우들 외에 <슈퍼맨>의 헨리 카빌과 <블랙 팬서>의 안젤라 바셋 등 새로운 배우들의 대거 합류한 것과 주요 액션 시퀀스를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에서 촬영한 것이 눈에 띈다. 전 세계 최초 개봉으로, 흥행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 천만이여 다시 한번, <신과함께-인과 연>? 지난해 12월 개봉해 전국 1440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함께-죄와 벌>의 속편이어서 천만 관객은 따 놓은 당상이며, 과연 ‘명랑’의 1760만 관객을 넘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영화가 ‘신과 함께-인과 연’이 8월 1일 개봉한다. ? 전편에 이어 환생이 약속된 마지막 49번째 재판을 앞둔 저승 삼차사가 그들의 천 년 전 과거를 기억하는 성주신을 만나 이승과 저승, 과거를 넘나들며 잃어버린 비밀의 연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편에 이어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 김동욱이 출연하며, 흥행의 키 마동석이 현세의 사람을 돕는 성주신 역을 맡아 웃음과 감동을 맡게 된다. 영화계에는 ‘전편보다 재미있는 속편은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신과함께-인과 연>은 전편보다 더욱 재미있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다. 어떤 웃음과 감동으로 찾아올지 기대된다. ?? ■ 칸이 보증한 황정민의 <공작> 지난 5월 개최된 제71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호평을 받은 <공작>은 8월 8월 한국 관객과 만난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담은 한국형 첩보영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의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공작>은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포진해 영화에 신뢰감을 준다. ? ? 칸영화제에서 상영 후 미국의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뛰어난 영화감독 윤종빈이 선사하는 이 화려한 한국영화는 아시아 영화 특유의 스타일리시하며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가득 차 있다”고 호평했다. 특히 영화 속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한 황정민, 주지훈 등에 대해 “<공작>은 캐릭터들이 이끌어 가는 매우 흥미진진한 영화다. 배우들의 뛰어난 열연으로 완성된 감동적인 캐릭터가 큰 울림을 전한다”고 전했다. 액션보다는 밀도 있는 사건과 캐릭터들의 깊은 감정이 흡입력을 전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첩보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 아바 음악으로 흥겨운 뮤지컬 <맘마 미아!2> ? 10년 전 스웨덴 출신의 팝그룹 아바의 음악으로 구성된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맘마 미아!>가 8월 중 <맘마 미아!2>로 다시 찾아온다. 10년 전 결혼식 입장을 앞두고 진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방황했던 소피가 결혼 이후 임신을 해 그리스 섬을 다시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어머니 도나의 어린 시절을 그린 과거가 등장하고, 소피는 다시 한번 3명의 아버지 후보를 만나게 된다. 물론 전편과 마찬가지로 아바의 흥겹고 감동적인 명곡이 멋진 안무와 함께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아름다운 그리스 섬의 풍광이 뮤지컬 넘버를 더욱 아름답게 해줄 예정이다. 전편에 이어 아만다 사이프리드, 메릴 스트립, 줄리 월터스, 크리스틴 바란스키,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출연해 한 여름의 꿈같은 뮤지컬 영화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이원 기자(국제신문) ? (사진 크레딧 <앤드맨과 와스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인크레더블 2>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인랑>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롯데엔터테인먼트 / <신과함께-인과 연> 롯데엔터테인먼트 / <공작> CJ엔터테인먼트) / <맘마 미아!2> UPI 코리아)

  • 작성일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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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다, 마을 화랑의 얼굴 풍경 /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칼럼] 경이롭다, 마을 화랑의 얼굴 풍경 / 영화 <바르다가 사랑...

자그마한 88살 여성과 껑충한 33살 청년을 쫓아가는 카메라가 이들의 대화를 슬쩍 흘린다. “멋진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게 좋았어.” “지금처럼 계획 없이 계속 여행을 할까요?” “그래, 우연은 항상 최고의 조력자거든.” 우연에 몸을 맡긴 여정, 여유롭고 담담하고 나른하게 추억을 새기는 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합성어 ‘아트멘터리(Artmentary)’가 어울리는 영화지만, 예술가의 성찰과 사유를 경쾌한 필치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에세이 필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프랑스어와 영어 제목 가 여정의 방향을 일러준다. 크고 작은 마을을 화랑으로 삼아 얼굴 축제를 여는 두 프랑스인은, ‘여성 영화의 대모’ ‘누벨바그의 어머니’로 불리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본명보다 이니셜로 알려진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JR이다. 인간사 희로애락이 담긴 표정들을 보노라니 사진에 관한 명언 몇 마디가 스쳐간다. “사진은 기억을 가진 거울.” “사진의 특유한 가치는 감정을 격동시키는 힘에 있다.” “사진 촬영은 이성적 판단과 직관적 반응이 결합된 행위이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바르다 필모그래피에 따라다니는 말이다. 주체적인 포즈라 우길 순 없지만, 진귀한 흑백 스틸 하나를 소개한다. 탁자 위에서 한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카메라 지지대를 붙들고 있는데, 웬 젊은 여성이 남자의 등을 짐짝처럼 밟고 서서 뷰파인더에 눈을 붙인다. 첫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을 찍던 바르다 감독의 모습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여성의 불안을 실시간 중계한 바르다는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었다. 감독의 심상 풍경이자 자화상인 <아녜스의 해변>을 비롯해 <방랑자>와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등 바르다 영화는 대상과 타자에 머물던 여성을 중심에 세우길 반복했다. “JR의 작업은 예술과 실천이 하나 되어 헌신과 자유, 정체성과 한계를 이야기한다.”는 평가대로 지난 10년 동안 그는 맹렬했고 거침이 없었다. 텅 빈 수영장 바닥과 돌기둥, 빈민가 계단과 무너진 다리, 컨테이너 선박과 천막촌 지붕 등 세계의 거의 모든 공간과 주변 사물이 JR의 캔버스가 되었다. 프로젝트 대다수가 허가를 받지 않은 게릴라식 작업이며, 스폰서를 두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JR에겐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의 큐레이터이니까. 전쟁과 빈곤, 폭력의 현장을 덮은 JR의 프로젝트 ‘여성들은 영웅이다’ 는 바르다를 사로잡았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와 손자뻘 사내가 키워갈 우정을 예고하듯 손그림 애니메이션으로 꾸민 오프닝 크레딧이 정겹다. 바르다와 JR은 포토 트럭을 끌고 프랑스 시골 곳곳을 돌며 사람들의 얼굴을 찍는다. 그리고 깜찍한 ‘이동 사진관’에 실린 프린터로 집채만한 사진을 뽑아 벽이며 기둥에 바른다. 출력한 사진엔 광부 아버지의 손때 묻은 빵 맛을 잊지 못하는 노인의 쓸쓸함과 거대한 농지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농부의 고단함, 버려진 마을을 되살리려는 주민들의 애환과 염원이 차례로 담긴다. 2대에 걸친 종 연주가의 사명감과 사랑을 약탈한 증조부를 기억하는 손주 이야기는 감동과 웃음을 나눈다. 거세하듯 어린 염소의 뿔을 태워버리는 농장주와 손으로 젖을 짜는 맛을 자랑하는 농부를 통해 생산만 강조하는 세태를 꼬집기도 한다. 소금이 아니라 표백제로 삶은 것 같은 분말 더미에 갇힌 두 사람은 판타지 영화의 어린이들처럼 신난다. 잘 찍은 사진은 생명력을 되살리는 법. 시장 좌판에서 기진맥진 헐떡이던 생선들이 날개를 달고 공중의 급수탑을 맴돈다. 마법 또는 별난 방생. 카메라로 20세기를 증언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패션 사진의 전설적 인물 기 부르댕. 바르다에게는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동지였다. 브레송표 사진예술의 정점이자 유행어로 번진 ‘결정적 순간’. 삶의 순간순간을 예리하게 꿰뚫어본 그가 영화 제작자였고 조연출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듯싶다. 브레송 부부의 묘지를 보는 바르다의 시선이 떨린다. 화면에 오르지는 않지만 브레송의 묘비명엔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이다.” 불멸성을 고집하지 않는 JR의 모든 작업이 그렇듯 이번에도 구경꾼에겐 아쉽기만 하다. 바닷가에 흉물처럼 놓인 거대한 벙커를 장식한 젊은 바르다의 친구 모습은 하룻밤도 버티질 못했으니 말이다. “사진이 사라지는 건 익숙하지만 바다는 너무 빨랐다. 바다는 항상 옳다. 바람과 모래도. 사진은 사라졌고 우리도 사라지겠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고...” 바르다의 독백이 허무를 물어뜯는 시로 들린다. JR과 협업은 즐거워도 그놈의 시커먼 선글라스가 영 마뜩찮은 바르다. “정이 없어 보이고 장막을 친 것 같다”며 투덜대지만, 매정한 선글라스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군데군데 예상치 못한 유머가 튀어나올 뿐 아니라 클래식 필름을 인용하고 뒤트는 수법은 재미를 더한다. 수십 년간 명징하게 초점과 앵글을 조절했던 바르다의 지친 눈동자를 덮치는 <안달루시아의 개>의 면도날이 섬뜩하다. JR의 휠체어를 탄 바르다가 루브르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대목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에서 세 남녀가 벌이는 통쾌한 장난을 끌어왔다. 밤중에 벽을 스크린 삼아 영사기를 돌리던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가 떠오르는 장면도 있다. 여성 영화의 대모답게 바르다의 연출은 르아브르 항만에서 빛난다. 아내를 남편의 뒤가 아니라 옆에 세우거나 거대한 트레일러의 여성 토템, 노동과 연대, 여성과 역사, 영화와 동료, 이웃. 바르다의 침침한 눈과 주름투성이 발가락을 얹은 화물차는 이제 21세기 누벨바그를 꿈꾸며 달릴 터이다. 바르다와 JR이 고다르 감독을 찾아가는 결말부가 흥분을 자아낸다. “고독한 철학자이자 영화계를 바꿔놓은 탐구자.” 바르다의 고다르 평가는 과찬이나 입에 발린 덕담이 아니다. 고다르와 자크 드미와 바르다의 우정. 칸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연출한 남편 드미 감독이 병으로 죽어갈 때 바르다는 그와 지낸 33년 세월을 되돌아본 〈낭트의 자코>로 친구들을 흔들었다. 설레고 들뜬 감정은 현기증으로 바뀐다. 불청객은 아닐 터인데 심술인가, 울리려 작정한 것인가. JR의 말마따나 바르다 영화의 서사 구조를 깨려는 의도인가. 연출된 것이라면 감독의 관록에서 나온 고도의?능청이고, 그게 아니면 예술과 현실의 악연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JR이 바르다에게 안긴 작별 선물이 더 없이 맑고 향기롭다. “얼굴마다 사연이 있다”는 대사대로 그윽하고 더러는 축축한 얼굴 풍경을 이어간 두 감독은 메시지도 묵직하게 전달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가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단락마다 기록과 기억의 신비, 인간 존중과 삶을 감싸는 온기로 가득하다. 느끼면서 이해하게 될 이 영화를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한다.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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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노트] 영화 홍보마케팅의 세계

[기타] [전문가 노트] 영화 홍보마케팅의 세계

[글. 영화홍보마케터_한순호] ?1. 영화 흥행에 마케팅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품질입니다. 품질이 좋은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품질이 좋은 영화가 성공합니다. 여기서 ‘품질이 좋은 영화’란 관객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상업성이 뛰어난 영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품질이 좋은 영화가 항상 흥행에 성공할까요? 안타깝게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흥행성이 있는 영화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영화는 다른 상품에 비해 경쟁이 극심한 상품입니다. 예를 들어 2017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의 편수를 보면 총 1621편입니다. 영화는 매주 목요일, 주단위로 개봉하는데 일 년을 52주로 계산한다면 매주 31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셈입니다. 그 중 비수기(3-6월, 9-11월)에 개봉하는 영화는 매주 개봉하는 영화 중 오직 한 편의 영화만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수기(7-8월, 12-2월)에 개봉하는 영화는 오직 두 편의 영화만이 살아남습니다. 또한 영화의 라이프 사이클은 다른 상품에 비해 엄청나게 짧습니다. 일반 상품, 예를 들어 새우깡 같은 제품은 처음 시장에 나온 지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 팔립니다. 활명수와 같은 소화제는 제품 수명이 무려 100년이 넘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천 만 관객의 영화라 할지라도 극장에서 두 달을 넘길 수 없습니다. 흥행에 실패하면 개봉 1주 만에 극장에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 치열한 경쟁, 짧은 상품수명 때문에 품질이 좋은 영화도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면, 즉 마케팅을 잘못하면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마케팅으로 흥행에 실패한 사례를 들어보죠. 김주혁과 정려원 주연의 <적과의 동침>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드라마인데 애매한 포스터 비주얼과 카피로 관객들로부터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습니다. “전쟁 안해유?”라는 카피에 일반 관객들은 <웰컴 투 동막골>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양호했으나 개봉 초기에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하여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 반대로 마케팅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케팅을 잘해서 흥행에 성공한 최근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곤지암>은 순 제작비 11억의 저예산 영화에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영화 <곤지암>은 장동건, 류승룡 주연에 순 제작비 80억 원이 투자된 영화 <7년의 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와 <쥬라기 공원>을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무비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주말에 개봉했습니다. 외적인 조건을 비교했을 때 <곤지암>이 흥행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개봉 결과 <곤지암>이 <7년의 밤>과 <레디 플레이어 원>을 물리치고 개봉주말 흥행 1위가 되었습니다. 저예산 영화, 유명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가 어떻게 유명배우, 흥행 감독, 블록버스터무비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곤지암>은 개봉 전부터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극대화 할 수 있었습니다.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소름끼치는 곳”이라는 카피와 이를 이용한 티저 예고편은 SNS를 통해 젊은층 사이에 퍼져나갔습니다. CGV페이스북에 처음 공개된 예고편은 공개 하루 만에 무려 1천 만뷰를 기록했습니다. <곤지암> 흥행 성공은 한마디로 영화 마케팅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 2. 영화 광고의 변천사 한국 영화 광고는 1980년대까지는 주로 신문광고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영화시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일간지 흑백광고가 영화광고의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1980년 대 말 미국의 직배사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할리우드의 영화 마케팅 기법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간지와 스포츠 신문 중심의 영화 광고에서 미국 블록버스터무비를 대상으로 TV광고를 하기 시작했고, 2000년 인터넷이 등장하자 TV와 함께 인터넷이 영화 광고의 중요한 매체로 등장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온라인 대형 포탈에 영화 광고가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2000년대에는 수도권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무가지 (메트로, 포커스 등)가 등장하면서 영화 광고의 주요 매체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모바일 시대가 열렸습니다. 스마트폰이 상용화되자 신문, 잡지와 같은 프린트 매체의 영향력은 급격히 상실되고, 2010년 이후부터는 TV, 온라인, 모바일과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같은 SNS가 영화광고의 주요 매체로 등장했습니다. 최근 영화 광고의 추세를 보면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모바일, SNS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매체 광고가 영화 광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80년대 신문광고에 한정되어 있던 영화광고가 이제는 공중파 TV, 케이블 TV, 온라인, 모바일, 아웃도어, SNS 등 다양한 광고 매체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 3. 최근 영화마케팅의 추세 영화 개봉편수가 증가함에 따라 경쟁이 심해지자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마케팅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포스터의 경우 과거에는 본 포스터 하나만 만들었는데 지금은 티저 포스터뿐만 아니라 다중의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의 경우 캐릭터 포스터도 만듭니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포스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도둑들>에서는 6종의 캐릭터 포스터를 만들었고, <베테랑>에서는 대결 구조의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 동영상의 경우에도 본 예고편뿐만 아니라 티저 예고편, 캐릭터 예고편,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제작기 영상,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 영상, 감독이 영화를 설명해주는 코멘터리 필름 등 다양한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타겟 관객별 예고편 제작을 시도하고 있는데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경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키벤져스>(키드와 어벤져스의 합성어)라는 예고편을 제작 배포하였습니다. ? 디지털 광고는 온라인, 모바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너광고, 동영상광고, 이벤트광고 등 다른 매체보다 더 다양한 광고기법을 동원하여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광고는 특정 나이, 성별, 지역 등을 타겟팅하여 광고를 노출할 수 있고, KMA(키워드 매칭 애드)를 통해 이용자의 검색 패턴을 분석하여 특정 키워드를 1회 이상 검색한 사람에게 광고를 송출하는 광고기법으로 효과적인 광고를 할 수 있습니다. ? 아웃도어의 경우 90년대까지는 시민게시판의 포스터 게첨이 주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버스광고, 지하철광고, 전광판광고, 대형 배너광고 등 다양한 아웃도어광고를 이용하고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야구장의 대형 전광판을 이용하여 영화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아웃도어 규제가 약한 외국의 경우 전철 전체를 특정영화 포스터로 장식하거나, 대형 입체간판을 세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 요즘 젊은 관객들의 이용률이 높은 매체는 유튜브입니다. 최근에 영화 마케팅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 또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영화의 컨셉을 이용한 UCC타입의 동영상 제작입니다. 예를 들어 개그맨 박나래를 이용해 만든 UCC영상 <해피 데스데이>는 영화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살해된다는 컨셉을 코믹하게 만들어서 젊은층 관객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선 관객의 시선을 잡고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 마케팅은 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성공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화 마케팅 전쟁이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들의 노력도 있지만 이를 관객에게 잘 설득하기 위한 마케팅의 노력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 *위 글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

  • 작성일 201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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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문화 그리고 삶의 무게, 영화 <트립 투 스페인>

[칼럼] 맛과 문화 그리고 삶의 무게, 영화 <트립 투 스페인>

“무차스 그라시아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안내하는 ‘트립 시리즈’ 세 번째로, 지중해 햇살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분위기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탈리아와 영국 식당가를 옮겨가며 입맛을 다셨던 수다쟁이 사내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이번 목적지는 정열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이다. 투우 경기와 플라멩코, 하루 다섯 차례 식사와 한낮의 달콤한 휴식 시에스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포함해 40개. 근대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돈키호테>와 136년째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20세기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번진 내전과 종신 총통제, 호날두와 메시가 골을 다투는 프리메라리가, 입체파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세계영화사를 새롭게 쓴 감독 루이스 브뉘엘과 카를로스 사우라를 배출한 나라. 안개 낀 마음을 담은 루이 암스트롱의 리듬이 잦아들면 영화는 친구를 부추기는 목소리로 화면을 연다. “이번엔 스페인이야. 같이 가겠어?” ? 먼 옛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세계로 향했던 선조들처럼 플리머스 항만에서 의지를 다지는 두 친구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그런데 이들의 여행 일정은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엔 눈길을 주지 않거니와 소싸움이나 축구장 함성에도 관심이 없다. 눈물을 흘리고 떠나 웃으며 돌아온다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도로 표시판만 슬쩍 보여줄 뿐이다. 닻은 내린 곳은 로저 무어가 주연한 <007 문레이커>의 촬영지였던 항구 도시 산탄데르. 그릴에 구운 생선을 발라먹던 두 사람은 억양을 조절하더니 정력절륜의 유명 인사부터 식탁에 올린다. 일흔둘 나이에 늦둥이를 본 가수 믹 재거의 저음과 공작새 제스처를 따라하는가 하면, 팔순에 들어서도 자식을 낳은 찰리 채플린에 견주면 자기들은 청소년이라며 능청을 떤다. 지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스티브와 롭이 구사하는 성대모사가 유머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이 순간을 즐겨야 돼. 50대는 인생의 황금기잖아.” “우린 잘 익은 과일이지만 매달려만 있으면 말라 죽어. 떨어져야지, 누가 따 가든가.” 앞질러 얘기하면 스티브의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생애나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다면 궁금증을 넘어 답답함을 안겨준다. 스티브가 나침반처럼 들고 다니는 책 <한여름 아침의 보행(As I Walked out One Midsummer Morning)>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영감을 준 사람은 로리 리죠.” “이번 스페인 여행은 로리 리처럼 해보고 싶어.” 작가 이름과 행보를 거듭 강조할뿐더러 버스킹(busking) 까지 재현할 정도니 윈터바텀 감독이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시인 로리 리(Laurie Lee 1914 ~ 1997)가 1969년에 펴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을 세밀히 관찰한 회고록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엔 아직껏 출간되지 않았는데, 영화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기둥 줄거리를 살펴보자. 런던에서 길거리 바이올린 연주와 건축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젊은 리는 미국인 무정부자의 딸을 사랑한다. 스페인어 “나에게 물 한 잔 줄래요?” 한 마디만 외운 상태에서 그는 홀로 스페인으로 떠난다. 바이올린과 담요를 생존 도구로 삼은 리는 1년 동안 북쪽 지방 비고(Vigo)에서 남부 해안까지 걸어서 가로지른다. 사회당의 승리와 파업,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의 갈등 등 요동치는 스페인 사회를 지켜본 그의 여정은 내전과 함께 끝이 난다. ? “부에노스 디아고(좋은 아침이에요)!” 두 남자가 기지개를 펴며 슬슬 시장기를 자극하는데, 이전 두 작품에 비해 조리하는 방법이나 평가는 짧고 단순하다. 맛은 덜해도 영양가 높은 식단을 받은 기분일까. 빨간 파프리카로 간을 맞춘 소시지 초리소와 옥수수 크로켓, 당근즙을 입혀 끓인 초록입 홍합과 숯불에 구운 피망, 석쇠에 달군 가리비와 페놀로페 크루즈의 출세작 <하몽하몽>이 내놨던 말린 돼지 뒷다리 하몽, 풀 향기가 나는 청포도 쇼비뇽 블랑을 숙성시킨 화이트 와인 등 메뉴는 다양해도 감칠맛 나게 설명하진 않는다. ‘차콜의 신’ ‘바비큐의 제왕’이라 불리는 빅토르 아르긴소니스의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편하게 전기와 가스를 사용하기보다 나무와 불의 불편함으로 승부를 거는 식당인데, 영화는 “셰프가 자기 할머니처럼 요리를 만든다.”는 종업원의 귀띔으로 처리할 뿐이다. 원초적 불맛이 아니라 할머니의 손맛이라는 주장에 저항하긴 어렵다. “음식보다는 문화”를 강조한 스티브의 태도에서 여정을 가늠해보는 게 좋을 듯싶다. 그런데 스티브가 두 번이나 소스라치게 놀라는 악몽과 환각이 심상치 않다. 스릴러 영화도 아닐 터인데 무슨 반전이라도 숨겨둔 걸까. ? 이번에도 잡학사전 엮듯 엮어가는 스크린과 배우 이야기는 풍성하다. 인용하는 작품은 <노 맨스 랜드>와 <엘 시드>와 <몬티 파이튼> 등 여러 편이 소개되는데, 아들을 강제로 입양 보내야 했던 여인의 실화를 옮긴 <필로미나의 기적>이 눈길을 끈다. 메시지가 강하고 완성도도 높은 수준이어서 각본과 주인공을 맡은 스티브의 자랑이 밉지 않다. 테리 길리엄 감독 필생의 프로젝트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와 그 실패담에 관한 다큐멘터리 <로스트 인 라만차> 뒷얘기는 영화광들에겐 아쉽고도 반갑다. 중년의 두 악동에게 성대모사 대상으로 찍힌 스타들은, 말론 브란도를 필두로 로버트 드 니로와 로저 무어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모사를 넘어 판박이 수준으로 웃음을 끌어내는데, 믹 재거 스타일의 햄릿과 데이빗 보위의 트윗에 얽힌 농담은 까무러쳐 쓰러질 지경이다. 유럽 감독들이 직유와 직결된 은유로 도배하길 좋아한다는 말에선 은근한 야유가 묻어나오고, <네 마음의 풍차(Windmills of Your Mind)>의 시적 노랫말은 음미할 만하다. 드론에 카메라를 장착한 덕분인지 쭉쭉 뻗은 해안 도로와 쪽빛 바다 등 부감으로 잡힌 풍광들이 시원스럽다. 여기에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 음악으로 친숙해진 마이클 니만의 피아노 선율은 빗방울처럼 튄다. ? 갑옷차림에 조랑말을 타고 풍차 앞에 선 스티브와 롭. 후반부에 들면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에 집중한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지만, 완독한 사람도 드문 소설이 <돈키호테>일 것이다. 광기와 이상이 절묘하게 뒤섞이는 데다 무모함과 우직함을 대표하는 두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만 650여 명에 이른다. 1부가 출간되고 2부가 나오기까지 10년 동안 가짜 속편들이 쏟아졌다. 그러자 세르반테스는 가짜 속편의 에피소드를 진짜 속편에 옮겨버렸다. ‘메타픽션의 선구자’다운 기발한 되치기이자 응징이다. 가장 강대하고 부유하고 빈곤했으며 가장 빛나고 어두웠던, 격동과 격변의 스페인 역사. 히틀러가 사부로 모셨을 법한 종교재판소 소장 토르케마다의 만행과 프랑코의 40년에 걸친 폭정은 끔찍하지만, 8세기 초엽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과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는 안데스 산맥의 잉카, 마야 문명만큼이나 흥미롭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우쭐거리던 50대 사내가 흔들린다. 스포일러여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의 주변에도 그늘이 드리워진다. 혼곤한 잠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을까.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마지막 장면이 낮은 비명을 지르게 한다. 중심에 놓인 건 음식이나 문화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삶의 무게였다. 흔들릴수록 온몸으로 돌파해야 할 그에게 <돈키호테>의 두 구절을 읽어주겠다. “각자가 자기 운명의 창조자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다.” ?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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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로 영화의 기승전결

[기타] 한국 에로 영화의 기승전결

[글. 영화평론가_김형석] ? - 조짐, 호스티스 영화와 토속 영화 ? <영자의 전성시대>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충무로에 ‘성인물’, 즉 ‘에로티시즘 영화’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82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조짐은 있었다. 심의와 검열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지만, 196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시도되었던 에로틱한 표현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를 통해 조금씩 그 수위를 높여갔다.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과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쏟아지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여성의 운명을 담보로 펼쳐지는 인생 역정 드라마였다. 이 영화들은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여성의 육체에 짐 지운다. 변장호 감독의 (1978)는 그 전형이다. 주인공은 관광회사 안내원이었지만 아버지의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호스티스가 된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거쳐가며, 이 과정에서 여자는 무정한 남자들 틈에서 상처만 입는다. 두 번째 조짐은 <애마부인> 이전에 등장한 ‘토속 영화’였다.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던 이 영화들은 1960년대부터 지속되었던 ‘문예 영화’, 즉 문학적 가치가 높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과 에로티시즘의 결합이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정진우) <산딸기>(1982. 김수형) 등이 대표적인데 이 영화들 역시 여성의 육체에 가학적이라는 점에서 호스티스 영화와 궤를 같이 했다. ? ? - 시작, <애마부인>과 <변강쇠> ? <애마부인>과 <변강쇠> ?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를 시기 구분해본다면 기승전결의 구성이 가능하다. ‘기’(起)에 해당하는 1981~84년은 앞에서 언급한 토속 영화가 등장하고 <애마부인>으로 남한 사회에 거센 에로의 물결이 불기 시작한 기간이다. 여기엔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의 우민화 전략인 ‘3S 정책’(섹스, 스크린, 스포츠)도 크게 한몫 했다. 5공화국은 자신들의 정당하지 못한 정체성을 무마하기 위해 통금을 없애고,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으며, 컬러 TV 시대를 열었다. 강요된 화려함의 시기였다. 이때 영화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발판이었으며, ‘최초의 심야 상영’ 영화였던 <애마부인>은 섹스와 스크린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던 1980년대 초 한국영화를 확실한 에로티시즘의 왕국으로 끌어들였다. 사실 <애마부인>은 모순적인 영화였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 성적 욕망에 대한 표현만큼은 분명 이전 시대와 단절된 지점이었다. 여성의 욕망은 더 이상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같은 해에 나온 <빨간 앵두>(1982. 박호태)도 기억할 만하다. <애마부인>과 <빨간 앵두>는 ‘유부녀의 억눌린 욕망’이라는 주제를 끌어들이며 1980년대 에로 영화를 이끌었던 쌍두마차로, 이후 비디오 영화 시기까지 긴 시리즈로 이어졌다. 염재만 원작의 <반노>(1982. 이영실)는 1980년대 초기 에로의 이색지대다. 이 영화는 거미줄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여성의 강력한 성욕을 다루는데, 이 영화의 유산은 이후 <색깔 있는 남자>(1985. 김성수) 같은 ‘팜므파탈 에로’로 이어진다. 이 시기를 마무리하는 영화는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이장호)였다. 정신분열증적 상황을 통해 여성의 뒤틀린 욕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당대의 파격이었던 이 영화는 한때 소프트코어 포르노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5~86년은 기승전결의 ‘승’(承)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사극 쪽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영화는 <어우동>(1985. 이장호)과 <변강쇠>(1986. 엄종선)와 <뽕>(1986. 이두용)이었다. <어우동>은 사극과 에로티시즘의 결합이 엄청난 흥행력을 지닐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다. 왕과 사대부를 농락했고 신분과 계급을 넘나들었던 여인 어우동. 사실 이 영화는 당시로선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지닌 영화였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에로 영화’라는 레이블로 이뤄졌다. <뽕>은 앞에서 언급한 토속 영화의 흐름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잘 버무린 코믹 에로 사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사극 장르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변강쇠>다. ‘변강쇠’ 이대근과 ‘옹녀’ 원미경이라는 완벽한 조합을 바탕으로, 이 영화는 당대 에로 사극의 관습과 트렌드를 확립했으며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낳았다. 특히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찾아 헤매는 옹녀는, 에로 사극의 중심 캐릭터였던 ‘수절하는 과부’에서 벗어나 이 시기 에로 영화의 여성 캐릭터 스펙트럼을 한 뼘 정도 넓혔다. ?? - 번성, 비디오 영화의 등장과 <매춘> ? <매춘>과 <애란> ? 1987~88년은 한국 에로 영화가 양적으로 완전한 성숙기에 들어선, 기승전결의 ‘전’(轉)에 해당하는 시기다. 1980년대 전반기에 등장했던 <애마부인> <변강쇠> <빨간 앵두> <산딸기> <뽕> 등의 에로 흥행작들은 이 시기 우후죽순처럼 속편을 내놓았고, 거의 매달, 아니 매주 ‘에로 신작’이 개봉되었다. 신작이 등장한 건 극장가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IPTV로 넘어간 ‘에로 비디오 문화’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첫 비디오는 1988년에 나온 <산머루>. <산딸기>를 패러디한 제목이며, <자녀목>(1985. 정진우)의 제목을 변형한 <나녀목>(1988)도 등장했다. 에로 영화가 비디오 시장으로 서서히 영역을 이동했다는 건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한국에 VCR 보급률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데, 그러면서 좀 더 많은 영상 콘텐츠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 한 축을 에로 콘텐츠가 든든히 맡게 된 것. 유호프로덕션을 선두로 굴지의 ‘에로덕션’들이 1990년대에 등장하며 극장가에서 서서히 사라지던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통을 가정 속으로 가져왔다. 한편 1987~89년 한국 에로 영화는 조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양적 팽창의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전복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매춘>(1988. 유진선)은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매매춘이라는 한국 사회의 음지에서 이뤄지는 행태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사회파 에로’로 분류할 만하며, <어둠의 자식들>(1981. 이장호)와 맥이 닿는 작품이다(두 편 모두 나영희 주연이다). 1989년 이후 1990년대 초까지는 기승전결의 ‘결’(結)에 해당한다. 올림픽 전후로 다소 느슨해졌던 검열을 등에 업고 번성했던 극장용 에로 영화들은 급속히 비디오 시장으로 흡수되었고, 충무로에선 서서히 ‘에로 장사’를 접게 된다. 특히 1992년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른바 ‘기획 영화’의 흐름은 로맨틱 코미디와 모던 스타일의 액션에 초점을 맞추며 에로의 끈적끈적한 정서를 지워나갔다. 그럼에도 그 끝물인 1989년엔 몇 편의 인상적인 에로가 등장했다. <사방지>(1989. 송경식)는 겉모습은 여자이지만 남성의 물건을 지닌 ‘사방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중엔 거의 유일한 퀴어 시네마가 된다. <애란>(1989. 이황림)도 1980년대 에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마치 ‘한국판 <감각의 제국>’과도 같은 이 영화는 엑조티즘과 에로티시즘의 기묘한 결합이다. ? ? - 쇠퇴와 부활, IPTV 시장의 등장 ? <물 위의 하룻밤>과 <젊은 엄마> ? 사실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모든 것은 1980년대에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 시기 사극과 현대극을 아우르며 모든 에로 공식이 확립되었고, 비디오 영화를 통해 에로만의 마켓을 형성했다. 1990년대 말, 이승희를 내세운 <물 위의 하룻밤>(1998. 강정수)이나 심의 이슈로 화제가 된 <노랑머리>(1999. 김유민) 등이 있었지만 이미 멸종한 극장용 에로의 흐름을 잇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면 <젖소부인 바람났네>(1995)로 스타덤과 결합하며 빅뱅을 맞이한 에로 비디오 산업은 2000년대 초 미소녀 트렌드와 결합하면서 절정을 맞이했지만, 대여점 산업의 몰락과 함께 순식간에 파산했다. 이후 짧은 동영상 중심으로 모바일 등을 통해 유통되던 에로 콘텐츠는 IPTV 시장이 열리면서 다시 장편화 경향을 띠기 시작하며 부활한다. 그 기폭제 역할을 했던 작품은 공자관 감독의 <젊은 엄마>(2013). 이 영화의 흥행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에로 영화들의 양적 위용은 유호프로덕션과 한시네마타운과 클릭엔터테인먼트가 건재하던 시기를 방불케 한다. 1980년대 퀴퀴한 동시 상영관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한국의 에로 영화는 비디오를 거쳐 산업적 팽창을 겪었지만, 산업적 격변 속에서 21세기 극도의 침체를 겪다가 지금은 IPTV와 다운로드 시장에 둥지를 튼 상태. 담는 그릇은 계속 변했지만 그 도도한 흐름은 한 세대 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위 글은 위원회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작성일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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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이 있나요? <소공녀>

[칼럼] 당신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이 있나요? <소공녀>

2011년, 경향신문의 특별취재팀은 사회적,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채 사는 청년층을 ‘삼포세대’로 명명했다. 이 용어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곧 포기 항목을 늘린 ‘오포세대’, ‘칠포세대’ 등의 단어까지 유행시켰다. ‘삼포세대’에서 ‘오포세대’로 넘어갈 때 동시에 추가된 것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약 1/5이 모여 사는 서울시의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은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 중 하나인 ‘집’(住), 즉 안정적으로 살아갈 울타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메뚜기처럼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하는 처지의 설움이 인간관계 포기, 즉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을 죽이는 것과 유사한 성격 혹은 비중으로 다루어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후 포기 항목에는 꿈, 희망, 건강, 외모관리 등이 추가되더니, 이제 다 헤아릴 수조차 없어 N(natural number)이라는 알파벳으로 표기하기에 이르렀다. 더러는 이 안에 ‘삶’까지 포함시키며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대기를 뒤덮지 않아도 우리 청춘들의 가슴은 충분히 답답하다. ? 지난 수년간 한국 독립영화는 이 절망적인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해왔다. <10분>(이용승),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족구왕>(우문기) 등이 2014년과 2015년 사이에 쏟아져 나왔고, <스틸 플라워>(박석영)와 <초행>(김대환) 등이 뒤를 이어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3월 22일 개봉한 <소공녀>(감독 전고운)는 이런 작품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캐릭터와 화법으로 눈길을 끈다. ? ? 대학을 중퇴하고 가사도우미의 길을 택한 ‘미소’(이솜)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처지다. 일당도 적고 일도 불규칙한데다 한 겨울의 반지하 월세방은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눌 수도 없을 만큼 춥고 낡았다. 궁핍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늘 우울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 만족감의 중심에는 착한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이 있고, 소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위스키와 담배가 있다. 이 세 가지는 N포세대인 미소가 감히 포기하지 않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자 그녀의 취향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 어느 겨울 날, 담배값과 월세가 한꺼번에 오르자 미소는 응당 집을 포기하고 나와 대학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그 때부터 영화는 미소가 스스로 ‘여행’이라고 부르는 떠돌이 생활을 통해 다섯 가지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같은 대학을 나왔고 함께 밴드 활동을 했지만, 몇 년이 흐른 후 멤버들은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가고 있다. 미소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 캐릭터와 가장 가깝냐고 물어오는데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무례하거나 폭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 ? 미소가 처음 찾아간 곳은 베이스를 치던 동기, ‘문영’이 일하는 대기업 빌딩이다. 점심시간에 손수 링겔을 꽂아가며 일할 정도로 성실한 직장인이 된 문영은 보증금을 모아 월세가 싼 곳을 얻어보겠다는 미소에게 ‘바람 든 것 같다’는 말로 응수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예민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잘 수 없다는 그녀에게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서 더 좋은 직장에 가겠다는 목표가 현재 가장 중요해 보인다. 대학 합격과 동시에 취업을 준비해온 세대들이라면 십분 이해할 만한 인물이다. ?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있는 ‘현정’은 미소를 뜨겁게 환영하지만, 시댁에 얹혀사는 처지로 손님을 들이는데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학창시절 키보드도 잘 치고 곡도 잘 쓰고 잘 놀고 잘 웃던 현정은 이제 시댁에서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남편과도, 시부모님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고 겉도는 그녀의 형편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미소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 이들에게도 그 자체가 위안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또 한 명의 인물이 후배, ‘대용’이다. 결혼한 지 8개월도 안 돼 이혼남이 된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던 그가 드디어 미소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들려주는 아파트 이야기는 재미있는 대사들로 가득 한 이 영화 안에서도 압권이다. 그는 결혼할 때 아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빚을 내서 산 아파트가 이제 20년 동안 꼼짝 없이 대용을 묶어두는 감옥으로 전락해버렸음을 고백한다. 그나마도 술병과 쓰레기로 가득한 더러운 감옥이다. 바로 앞 신(scene)에서 미소가 한솔에게 인생의 목표가 빚 없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이러한 대용과의 대화 중에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타인들이 으레 하고 있는 행위들을 미소는 그녀의 기준에 따라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타인과 구분시키고 자존감을 지킨다. ? 네 번째로 찾아간 ‘록이’의 집에서, 미소는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적당한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 록이에게 미소는 집은 없지만 자신에게도 생각과 취향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타협 같은 것은 그녀의 사전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소의 삶의 태도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재워준 ‘정미’에 의해 무참히 공격당하고 만다. 자기 취향이 아님에도 시부모님이 준 큰 집에서 아이와 남편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는 정미는 록이가 언급했던 안정감을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도 끊지 않으면서 남의 집 신세를 지는 것은 ‘염치’가 없고, ‘한심’하다며 미소를 비난한다. 정미가 후배를 쫓아내며 마지막으로 내미는 것은 따뜻한 말 한 마디 대신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다. ? 등록금이 비싸 대학을 중퇴했던 과거도, 가사도우미라는 직업도, 집이 없다는 사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꿋꿋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소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멤버들의 집을 떠날 때마다 그녀가 보여주는 개념 있는 행동들, 예의, 따뜻함과 배려는 그녀를 그저 멋진 N포세대의 한 사람이 아니라 성녀(聖女) 같은 존재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청소와 요리, 엽서 등을 통해 멤버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해고하기 직전인 술집 아가씨를 오히려 위로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미화는 다분히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장례식장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미소를 회상하는 장면은 마치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 안에서처럼 가공된 판타지적 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 타인들의 기억 속에 웃는 게 예쁘고, 밥을 잘하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고, 스타일이 멋있었던 미소는 집에 이어 인간관계도 포기해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위스키를 즐긴다. 친구들도, 고용주도, 남자친구도 떠나보낸 그녀가 위스키를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연출된 장면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한심해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허세로 보일지 몰라도 미소는 그렇게 우아한 자신의 취향을 끝까지 고집함으로써 팍팍한 사회를, 고된 인생살이를 버텨낸다. ? ‘소공녀’의 미덕 중 하나는 N포세대, 특히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에서 익숙히 보아왔던 사건이나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고운 감독은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행, 강간, 폭언과 욕설 등을 배제하고, 자극적인 영상 하나 없이 동시대 청춘들의 씁쓸한 자화상을 그리는데 성공했다. 어두운 시대를 끔찍한 사건들로 설명하기보다 주변에 있음직한 캐릭터를 유심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조명해낸 점이 훌륭하다. 주인공과 달리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전전긍긍 하는 인물들까지도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은 데서 신인감독답지 않은 여유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빚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누가 뭐래도 포기할 수 없는 취향 하나가 간절해지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 글. 영화평론가_윤성은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 작성일 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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