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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처칠, 불굴의 초상 / 영화 <다키스트 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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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7-11-29

  • 조회수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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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국의 국영 방송 BBC는 자국민 1백만 명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해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뽑았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다이애나 왕세자비, 넬슨 제독, 존 레넌 등 여러 분야에서 영국뿐 아니라 세계를 움직인 이들이 10위권에 올랐다. 1위는 누구였을까. 90년의 생애에서 55년을 의회 멤버로, 31년을 장관으로, 9년을 총리로 보낸 정치인. 15번이나 전쟁에 나간 군인이자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며, 500점이 넘는 유화를 그린 왕립미술원 소속 화가. 평생 먹고 살 돈을 혀와 펜으로 번 사람. 저명한 정치인을 학교 이름으로 짓는 전통이 없는 영국에서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만 10개가 넘고, 작년에 발행한 플라스틱 재질의 5파운드짜리 지폐 뒷면에 얼굴이 새겨진 사람. 트레이드마크는 두툼한 시가와 승리를 뜻하는 손가락 V자.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흔들었고 21세기에 신화가 된 그 영국인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의 삶을 다룬 영화는 많았어도 대부분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브라이언 콕스, 앨버트 피니와 시몬 워드가 도전했으나 모두 근접하는 수준에 그쳤다. 불도그를 닮은 얼굴에 매섭게 노려보는 시선은 웬만한 분장과 연기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거장 켄 로치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2013)은 실제 처칠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만, 1945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 정부와 1980년대 대처리즘을 통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쟁을 제기했다. 영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의회 연설문에서 제목을 따왔다. 파리 함락 직전 프랑스 정부와 회담에서 좌절감만 맛본 처칠은 그 상황을 ‘Darkest Hour’ 라 설명했다. 어둠은 짙었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에 맞선 처칠의 라디오 방송. “우리의 의무를 상기하고 분발합시다. 훗날 사람들이 그때가 ‘최고의 시절(The Finest Hour)’이었노라’고 말하도록.” 런던 시민들은 4만3000명에 이르는 가족과 이웃을 잃었지만 9개월 동안 의연하게 버텨냈다. 최고의 시절을 여는 자부심.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과 프랑스와 벨기에 연합군의 덩케르트 철수, 다시 말해 다이나모 작전을 실행하기까지 처칠 수상(게리 올드만)의 보름 남짓한 기간을 따라간다. 1940년 5월 9일의 전시 상황을 자막으로 알려준 영화는 도입부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배우 게리 올드만은 없고 정치인 처칠만 있으니 말이다. 감쪽같다는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올드만 특유의 마르고 날카로운 모습은 흔적도 없다. 말라깽이 에디 머피가 자신보다 체구와 얼굴이 서너 배는 큰 화학 교수로 바뀐 <너티 프로페서>(1966)의 분장술을 훨씬 뛰어넘는다. 처음 출근한 여비서 엘리자베스(릴리 제임스)가 작은 실수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닦달하는 처칠. 아내 클레멘타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말대로 거칠고 냉소적이고 고압적이고 무례한 노인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전시 내각 총리로 처칠을 추천하는데, 속내는 ‘급한 불부터 끄자’거나 ‘꿩 대신 닭’이었을 터이다. 국왕 조지 6세(벤 멘델슨)도 처칠이 달갑지 않다.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하자 모든 내각이 동생 조지 6세의 즉위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처칠 혼자 끝까지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그러니 총리 임명은 미운 놈에게 케이크 한 쪽 더 주는 심정이었으리라.
 
 

헝가리와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영국의 유일한 동맹국 프랑스도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었고, 미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있으니 영국은 고립무원의 처지. 5월13일, 내각 수장에 오른 처칠은 그 유명한 어록을 선보인다. “내가 국민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피와 땀과 눈물뿐입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의회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처칠의 연설을 세 번 들려준다. 반복과 대조, 은유와 역설에 유머를 곁들인 처칠의 연설은 비탄과 절망에 빠진 영국인들을 일으켜 세운다. 선동의 천재 히틀러도 넘볼 수 없는 마법의 명연설. 처칠은 평생 하루 여덟 개의 시가를 피우고 매일 낮밤으로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다. “어찌 그렇게 낮술을 잘 드시오?” “연습하면 됩니다.” “나도 당신이 무섭소.” “농담 마십시오, 제가 무서울 게 뭐 있습니까?”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거든요.” 조지 6세와 처칠의 대화가 유쾌하다.
 
<다키스트 아워>가 얼마나 고증에 충실했나를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처칠의 회고록과 수상록엔 시리즈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극적인 일화가 넘친다. 처질이 정치가이기 전에 쾌활한 영혼을 지닌 재담가라는 걸 알려주는 에피소드 몇 가지. 할리우드를 방문한 처칠이 채플린에게 어떤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 물었다. “예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라는 채플린 대답에 처칠이 되물었다. “저작권은 확보해 두셨습니까?” 둘째 딸의 인생을 망친 사위를 증오하는 처칠을 부하 직원이 위로했다. “총리께서는 운이 좋으신 겁니다. 무솔리니를 보세요.” 허수아비 독재자로 전락한 무솔리니는 외무장관인 사위를 반역죄로 몰아 총살했다. 처칠의 퉁명스런 한마디. “그래도 무솔리니는 사위를 죽이기라도 했지.” 처칠이 가장 좋아한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이고, 중간에 뛰쳐나오게 만든 건 <시민 케인>이었다. 처칠은 범죄자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존 웨인의 활약에 열등감을 극복한 자신을 투영했을 것이고, 급한 성미 때문에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끝까지 보기엔 좀이 쑤셨을 듯싶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 등 원작 소설 각색과 시대 재현에 능란한 조 라이트 감독의 또 다른 솜씨는 촬영과 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일필휘지의 영상’인가. 단숨에 죽죽 써내려가는 명필의 붓놀림처럼 카메라는 종으로 횡으로 힘차게 누빈다. 비오는 거리를 떠다니는 행인들과 히틀러 가면을 쓴 아이들, 보따리를 이고 진 피난 행렬과 폭탄 투하 장면의 하이앵글, 미로처럼 얽힌 지하 벙커의 전시 내각실, 파스텔 톤의 깊고 부드러운 화면 등 단락마다 조 라이트의 인장이 빛난다. <엘리펀트 맨>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설국열차>로 친숙해진 존 허트는 독일에게 평화를 구걸하다 밀려난 총리 체임벌린을 열연하는데 안타깝게도 유작이 되고 말았다. 풍전등화의 조국, 지도자로서 무한 책임과 정적들의 무한 압박. 처칠의 겉모습부터 마음 밑바닥까지 체화한 올드만의 연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년 3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덩케르크>가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지만, 남우주연상은 올드만을 제칠 연기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섣부르지만, 따놓은 당상이라는 우리말 축하 인사를 보낸다.
 
5월 29일, 다이나모 작전을 앞둔 처칠은 승부사다운 카드를 던진다. “청동기 시대부터 우리는 바다를 누비며 살아왔소, 독일인은 물이라면 호수밖에 모르는 민족이고.” 히틀러는 군림하고 숭배받기를 원했고, 처칠은 설득하고 격려하며 다가갔다. 결말부의 지하철 장면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위로하려다 오히려 위로를 받은 처칠이 격문처럼 시를 암송한다. “그렇다면 외쳐라/ 이 땅 모든 인간들에게 죽음은 언젠가 오나니/ 나는 가장 명예롭게 죽겠노라/ 두려움과 용감히 맞서.” 18세기 영국 시인 토마스 매콜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에 나오는 <호라티우스> 한 구절로,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톰 크루즈도 들려주었었다. 처칠의 마지막 목소리.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 전쟁에는 결단력, 패배에는 투혼, 승리에는 아량, 평화에는 호의를 신조로 삼았던 생애. <다키스트 아워>는 청소년에겐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용기와 자긍심을 높여주고, 지도자에게는 의무와 책임을 일깨운다.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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