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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역사다!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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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01-31

  • 조회수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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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을 지나는 장례 행렬. 흑인 인권운동에 온 생애를 바쳤던 이를 애도하는 어느 중년 여성의 젖은 눈망울을 클로즈업한 화면에 해설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깔린다. “미국의 역사는 곧 흑인의 역사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라울 펙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I Am Not Your Negro)>는 미국인에겐 민망하고 수치스럽겠지만, 모든 인류가 기억해야할 시간들을 담담하게 되돌린다. 멀게는 백인 기병대가 어린이를 포함한 인디언 라코타족 300여명을 살해한 1890년 ‘운디드 니’ 참극부터 가깝게는 경찰에게 비무장 상태에서 총을 맞은 흑인 소년의 죽음이 촉발시킨 2014년 퍼거슨시 소요 사태까지 인종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친 세월이다. 쇠사슬을 토막 내는 듯 맹렬한 제목을 내세운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1924~1987)의 미완성 회고 에세이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뉴스릴과 텔레비전 좌담회, 강연과 인터뷰, 푸티지 영상과 현장 사진 그리고 할리우드 클래식 등 풍성한 자료화면과 사무엘 L. 잭슨의 내레이션으로 수난의 흑인 역사를 들여다본다.
 
 

본디 다큐멘터리란 플롯보다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어서 각 장면은 극영화보다 훨씬 자유롭게 배열된다. 이 작품도 굵직굵직한 사건에 등장인물이 많고 입자가 각기 다른 흑백과 컬러 영상이 섞이기 때문에 간추린 미국 역사라도 훑어보고 감상하는 게 좋다. 미국 ABC 방송의 딕 카베트 쇼에 출연한 볼드윈이 추억하는 세 사람은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 메드가 에버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들은 스크린에서도 낯선 인물이 아니다. 롭 라이너 감독의 <미시시피의 유령>은 에버스의 피살 사건을 파헤쳤고, <말콤 X>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한 덴젤 워싱턴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남자연기상)을 따냈으며, 재작년에 개봉한 <셀마>는 역사를 바꾼 킹 목사의 행진을 따라갔다. 삶의 목표가 같았을 뿐 아니라 생애도 짧았고 죽음 또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닮았다. 세 사람 모두 40세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으며 똑같이 총격을 받고 숨을 거뒀다.
 
인간사에서 가장 저열한 분규라는 인종 갈등. 피부색이나 겉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증오를 키우고 학대하며 목숨까지 빼앗는다. 아이티 출신 라울 펙 감독은 챕터를 나누듯 ‘노력’ ‘영웅들’ ‘증인들’ ‘순수’ ‘흑인 팔아넘기기’ ‘나는 검둥이가 아니다’ 라는 작은 제목을 붙여 화면을 여닫는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For Whites Only(백인만 출입 가능)’ ‘No Blacks and Dogs(흑인과 개는 사절)’ 같은 문구가 공공장소를 도배한 시대였다. 흑인은, 검둥이가 아니라 검둥개 정도로 취급되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백인들의 피켓엔 저주와 혐오, 살의가 가래침처럼 붙어 있다. “검둥이는 백인이 되고 싶지 않나?” “인종 혼합은 공산주의다.” “인종차별 영원하라.” “주님은 살인과 간통은 용서하시지만, 인종 통합에 대해선 분노를 금치 못하신다.” 경찰들이 거리에서 흑인을 짓이기는 장면은 분노를 넘어 인간 행세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밀도살꾼이 입맛을 다시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동작과 다르지 않으니까.
 
 

온건한 통합주의자 마틴 루서 킹과 과격한 분리주의자 맬컴 엑스. ‘비폭력과 자기방어’, ‘흑백 통합주의와 흑인 민족주의’, ‘기독교 신앙과 이슬람 교리’라는 서로 다른 삶과 사상의 극심한 대립. 현실 인식과 해결 방안 또한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와 “나는 악몽을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의 가치관과 해결책이 합쳐질 무렵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맬컴 엑스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도록 함께 노력한 동료 집단에 사살당했고, 백인들과 공존과 타협을 지향한 킹 목사는 백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킹 목사의 피살 소식을 알리자 비명과 휘파람 소리가 뒤엉킨다. 변화와 희망은 꿈도 꿀 수 없는 건가.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40년 뒤 미국 사회를 예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잠꼬대이거나 뜬구름 잡는 이 목소리를 연결하는 장면이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위대한 기적이자 지혜로운 선택.
 
미국 사회를 지배한 백인 앵글로색슨과 노예 신분을 벗어났어도 만년 빈곤층을 형성한 흑인들.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두 계급의 관계를 꿰뚫어 본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킹콩>, <댄스, 풀스, 댄스>, <더 몬스터 워크스> 등 1920~30년대 서부극과 멜로드라마, 스릴러와 판타지, 뮤지컬 영화는 어떤 통계나 자료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당시 미국인들은 스크린의 흑백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인종 문제에 영화는 어떤 구실을 했을까. “도덕적으로 미성숙도 미덕이 되어버렸다. 평생 영화 속에서 인디언에게 훈계를 해온 그는 성숙해질 필요가 없었다.” 서부 들판과 계곡을 누비는 정의의 카우보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보수 우파 애국자. 볼드윈이 야무지게 꼬집은 그 배우 이름은 퀴즈로 남기겠다. 백인 후손을 낳은 흑인들의 아픔은 <슬픔은 그대 가슴에>(1934)의 초등학교 교실 장면만으로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맬컴 엑스가 자기 머리칼이 붉은 색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게 한다.
 
 

할리우드에서 시드니 포이티어 이전에 주연을 맡은 흑인 배우는 없었다.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베를린영화제 은곰상도 포이티어의 몫이었다. 데뷔작 <노 웨이 아웃>부터 <흑과 백>, <초대 받지 않은 손님>, <밤의 열기 속으로>등 4편을 골라 핵심을 요약하고 상황을 비교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흑과 백(The Defiant Ones)>의 예를 들면, 포이티어가 달리는 열차에서 감방 동기 토니 커티스 때문에 결정한 행동을 놓고 흑인과 백인의 반응을 살펴보는 식이다. 1991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과 폭동에 <하오의 연정>과 <브로드웨이의 자장가>의 댄스 장면을 얹는 수법도 눈길을 끈다. 게리 쿠퍼와 도리스 데이를 두고 ‘세상에 실현되지 않은 순수를 가장 그로테스크하게 대표’ 한다거나 <What'd I Say>를 열창하는 레이 찰스는 ‘음지에 있지만, 꼭 필요하며 부정당한 존재의 이미지’라 규정하는 대목은 예리한 대중문화 비평으로 읽힌다.
 
“예전에는 흑인을 목화 농장에서 썼지만 이제 더는 필요 없어서 너희를 전부 죽일 거야 인디언한테 한 것처럼.” 2007년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비무장 흑인 7명 사살, 서부 개척시대 <커스터 장군>과 <솔저 블루>에서 기병대의 인디언 공격. 차별과 편견, 적개심에서 나온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뿐더러 마침표를 쉽게 찍을 수도 없음을 일러준다. 이 영화 제목이 저항과 다짐의 현재 진행형으로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손을 든 흑인 소년이 사격 표시판처럼 총탄을 여섯 발이나 맞고 죽은 게 겨우 4년 전 일이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에겐 자유로울 권리뿐 아니라 자유로울 의무가 있다.” “우리는 역사를 품고 산다. 우리가 역사다.” 언제나 당당했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메시지가 힘차고 명확하다.

 
글. 영화평론가_박평식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이미지를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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