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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을 바꾼 고뇌와 결단/영화 <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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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02-28

  • 조회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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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약칭한 제목의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감독과 배우 이름만으로도 기대치를 높인다. 세계영화사를 통틀어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온갖 주제와 장르를 넘나든 감독은 찾기 어렵다. 〈E.T>와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와 <마이 리틀 자이언트>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판타지를 곁들인 모험극을 선사한 엔터테이너이자 <쉰들러 리스트>와 <뮌헨>, <링컨>과 <스파이 브릿지>로 시대와 인간 탐구에 몰두한 리얼리스트. 스필버그 작품을 두고 피터팬 콤플렉스나 시오니즘을 지적하는 일은 부질없다. 4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며 유일한 취미가 영화 감상이라는 감독의 웬만한 흠집은 눈감아 주게 만든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인물을 묘사할 단어가 선뜻 잡히지 않는다. ‘메소드 연기’니 뭐니 고리타분한 수식어를 들먹이기보다 다재다능하고 능수능란한 배우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게 낫겠다. 메릴 스트립이 스필버그 영화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스트립이 톰 행크스와 같이 출연한 게 처음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할리우드 어른들의 경륜과 관록이 <더 포스트>를 우뚝 세운다.
 

1966년 베트남 정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 27분을 영화 역사상 가장 리얼한 전투로 꾸민 야누즈 카민스키의 카메라가 다시 생지옥으로 안내한다. 미국인 전략 분석가 다니엘 엘즈버그(매튜 리즈)는 피투성이로 찢겨나가는 미군들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작은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처참하게 펼쳐진 전쟁. 존슨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클라크 클리포드의 술회대로 미국인에게 베트남전은 ‘목표와 전략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베트콩이 아니라 베트남의 민족주의와 싸웠으니까. 게다가 상대편은 전쟁 영화의 영웅도 주눅들만큼 맹렬하고 끈질겼다. 7만 여명이 지하 30m 땅굴에서 3년 반을 버티는가 하면, 하룻밤에 산악지대 50km를 내달리는 건 기본이었다. 미군들이 제2차 세계대전보다 4배나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는데도 호치민은 코웃음을 쳤다. “폭격을 해라. 그러면 웅덩이가 파여 연못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그 연못에서 자란 메기를 잡아먹고 투쟁할 것이다.” 호기롭게 덤벼든 미국이 끝까지 멱살 잡혀 끌려간 전쟁에 관한 기밀문서가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로 <더 포스트>에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큐멘터리 <전쟁의 안개>로도 알려진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지시를 받아 엘즈버그가 작성한 펜타곤 문서는 한 마디로 ‘미국의 베트남전 기획과 연출’이다. 가장 문제가 된 내용은 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구축함을 선제공격했다는 ‘통킹만(Gulf of Tonking)’ 사건인데, 훗날 베트남전 확전을 정당화하려는 미국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진다. 내부자 엘즈버그로부터 펜타곤 문서를 입수한 뉴욕타임스는 30년에 걸쳐 정부가 감춘 사기극을 폭로한다. 경쟁지가 이토록 엄청난 비밀을 쏟아내는 판국에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의 딸 결혼식 취재에나 열을 올렸으니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의 눈엔 불이 켜진다. 특종 경쟁에 나서거나 기사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은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이익과 안보에 회복 불능의 위해를 끼쳤다며 뉴욕타임스를 닉슨 정부가 기소하자 법원은 추가 보도를 중지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우리의 적이야. 반드시 기소해야 해.” 화면 밖에서 이악스럽게 내뱉는 닉슨의 대사에서 지금 백악관 주인장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이라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가짜뉴스’라며 핏대를 세우니 말이다.
 
 

기밀문서의 주요 내용을 툭툭 넘기던 영화는 기자로서 정의감과 언론사 사주로서 경영 윤리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브래들리는 천신만고 끝에 펜타곤 문서를 손에 넣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딪친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도 힘겨운 상대지만, 경영난을 겪는 자회사 이사들을 설득하기란 한층 버겁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명색만 사주일 뿐 남성들이 장악한 경영진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특종 보도를 놓고 토론을 벌일 때도 밀리는 처지인데, 오랜 친구인 맥나라마 장관의 회유는 캐서린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가정주부의 삶에 만족했고 직업엔 관심조차 없던 캐서린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얼떨결에 신문사 운영을 떠맡았다. “여자가 설교하는 것은 뒷다리로만 걷는 개와 같다.”는 탄식에 담긴 1970년대 미국사회 여성의 위상. 증시 상장 문제로 회사가 존립까지 위협받는 상황인데 언론 자유와 사명감, 독자의 알 권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딜레마이자 속수무책. <철의 여인>에서 날마다 전투를 치른 대처 수상의 파워와 고독을 온 몸으로 재현한 메릴 스트립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다. 고뇌하고 갈등하는 초보 경영자와 어머니에서 단호한 승부사이자 여성 지도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스트립에게 붙여진 ‘액팅 머신(Acting Machine)’ 호칭을 새삼 확인케 한다. 연기 기계나 기계적 연기가 아닌 부속품을 바꿔가며 눈부시게 변신하는 기계 말이다.
 
<스포트 라이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조쉬 싱어는 드라마의 빼어난 완급 조절로 몰입감을 높인다. 중반부터 캐서린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스필버그는 첩보 스릴러 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끌어내는 한편 소녀의 레모네이드로 쉼표를 찍기도 한다. 미국은 왜 그렇게 베트남전에 매달렸을까. 패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젊은 목숨들을 사지로 내몬 까닭이 무엇일까. 굴욕을 잠재울 굴욕이라니, 미련하고 저급한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를 잇는 제4부로서 언론이 제 소임을 포기할 때 권력은 녹슨 칼날을 시퍼렇게 다듬어 세운다. 마지막 장면은 워싱턴포스트 100년 역사에서 가장 큰 특종이자 미국 현대사를 뒤흔든 스캔들을 캐낼 것을 예고한다. ‘꿈의 공장’ 공장장 스필버그가 비통한 심정으로 연출 의도를 밝힌다. “이토록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처음이다. 누구도 정치에서 도망칠 수 없다. 올해의 사회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국내 일부 단체와 언론에서 세계인들의 겨울 잔치상에 벌건 재를 뿌릴 때 워싱턴포스트는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을 ‘이번 올림픽의 의미를 규정한 순간’이라 찬사를 보냈다. 국익을 등에 업은 국가의 위선과 폭력, 시도 때도 없이 날뛰는 사이비 애국주의, 어설프고 곰팡내로 찌든 안보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더 포스트>가 세상 모든 언론 매체에 전하는 메시지는 엄중하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라!”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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