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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꿈꾸며 도전하는 인생의 파도타기, 영화 <비트윈 랜드 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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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08-08

  • 조회수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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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벨벳처럼 부드럽게 거품을 뿜는 기네스 맥주. 서유럽 끄트머리에 놓인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두 가지이다. 살기 좋은 나라나 행복지수를 따질 적마다 아일랜드는 상위권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그곳 풍경과 국민들 특성은, 아이리시 후손 존 포드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긴 <말 없는 사나이(The Quiet Man)>(1952)에 잘 드러난다. 그런데 과묵한 사나이가 맹렬히 밀어붙인 탓인지 한국에선 <아일랜드의 연풍>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최근 들어 아일랜드 알리기에 가장 공을 들인 영화로는 <원스>가 꼽힌다. 버스킹으로 유명한 거리 그래프턴과 악기점 월튼, 커피숍 사이먼즈 플레이스 등 수도 더블린의 명소를 두루두루 담았다. <러브, 로지>와 <프로포즈 데이>는 포트마녹 해변과 위클로 공원을 비롯해 선사시대 유적이 남은 글렌달록과 딩글 반도를 오가며 관광객을 유혹했다. 이제 아일랜드 감독 로스 휘태커가 소개할 곳은 서쪽 클레어 주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라힌치. 세상 모든 서퍼들의 놀이터이자 낙원, 그래서 ‘비트윈 랜드 앤 씨(Between Land and Sea).’
 

널빤지 하나로 파도를 가르는 사람들 이야기는 한여름 극장가의 단골 소재였다. 미국 사회가 겪는 혼란상을 젊은이들의 사계절 서핑에 투영한 <빅 웬즈데이>를 비롯해 <드리프트>와 <라이드>의 물결도 거셌지만, <폭풍 속으로>에서 드라마와 즐겁게 동업한 파도는 가히 명물이었다. 궤변도 그럴싸한 은행 강도 패트릭 스웨이지가 거대한 풍랑에 휩싸이는 엔딩은 시원하고 섭섭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크레타 섬 부근일 것이다. 한국 여성이 외국인 남편의 식당일을 거든다는 오래 전 기사였다. 지중해 에메랄드빛에 반해 눌러앉았고 끝내 그리스 어부와 결혼했다는 그 여인의 안부가 궁금하다. <비트윈 랜드 앤 씨>에서 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톰과 아내 라켈의 사연도 비슷하다. 국적이 다른 남녀의 사랑을 키워 가정을 꾸리게 한 브로커는 파도였으니까. 광산 기술자 남편은 틈만 나면 파도를 타고, 아내는 과학 전공자다운 부업으로 생계를 돕는다. 의지와 결정, 책임. 노력하고 즐겨라.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
 
 

“어떤 스포츠에도 이보다 좋은 곳은 없어요.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여기죠.” 그에게 바다는 세상이 제공한 짙푸른 원형경기장. 서핑 스타로 이름을 떨치다 귀향한 올리 오플레어티의 서핑학 개론에 곁들인 영상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생생하다. 고도의 평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이 필요한 몸놀림. 빌딩 한 채만한 물결을 끌고 가는 서퍼들의 동작은 마술이자 곡예이고 예술이다. 초강력 자석이 달린 듯한 보드로 공중제비를 돌며 매끈하게 빠져나가는 테크닉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쾌감과 스릴, 낭만만 있는 경기장은 아니어서 서퍼들은 치솟자마자 곤두박질치며 묻혀버리기도 한다. 높이와 폭을 변덕스럽게 바꾸는 괴물, 낮은 포복으로 덮치는 하얀 포말의 군단. 순간이 방심이 빚어내는 참극. 히말라야를 오르다 눈덩이와 함께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공포에 버금간다. 다치지 않고 얼마나 오래 파도를 탈 수 있을까. 돈이 안 되는 일을 어떻게 더 열심히 계속할 수 있을까. 고뇌에 잠긴 서핑 철학자는 후배들을 길러낼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바다에 뛰어든 휘태커 감독은 서핑의 종류와 방법, 장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신나고 날렵한 점프와 텀블링을 가까이서 온 몸으로 느끼지만 서핑 찬가만 부를 생각이 없다. 퍼갤 스미스, 이전엔 세상 곳곳의 파도를 제압한 선수였고 지금은 임대한 밭을 일구며 가족을 돌보는 농부이다. 보드대신 곡괭이를 든 그는 마음을 때리는 풍랑과 맞서야 한다. 청춘을 투자했지만 서핑은 가장의 생계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싹을 틔운 농작물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그를, 아일랜드 시인의 노래로 응원하려니 조금은 머쓱하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을 일구고 꿀벌 집을 지으리라/ 벌들이 윙윙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 거기서 평화롭게 살리라.” (<윌리엄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에서>). 퍼갤은 농부로서 소박한 삶을 소망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몽골인의 게르 엇비슷이 천막을 엮어 거처를 마련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바다를 떠나 유랑하는 삶에 이니스프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난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나?” 청소년 시절에 서핑 대회를 석권했고 잡지 표지 모델로 활약한 서핑 강사 존 매카시. 멋진 파도를 만날 때마다 인생을 걸고 덤볐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런 그가 생애 처음 맞닥뜨린 엄청난 파도에 갇혀 바다 깊숙이 납덩이처럼 가라앉는다. 숨이 멎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 존이 체험한 기적은 어떤 유창한 설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감사할 조건을 찾는 삶. 감사의 분량이 바로 행복의 분량이라는 확신. 자기 재능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를 귀하게 여기면 그가 다 살필 것이니.” 존의 고백과 평안은 <불의 전차>의 유대인 스프린터 에릭 리델을 떠올리게 한다. 서퍼들의 꿈과 현실, 갈등을 들여다 본 <비트윈 랜드 앤 씨>는 잔잔하게 때론 휘몰아치는 인생의 파도타기에 관한 메시지를 남긴다. 굳이 ‘욜로 라이프’를 들먹일 필요는 없겠다. 싫어하는 일로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그러니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며 도전해볼 일이다. 200미터 높이로 8킬로미터를 늘어선 모허 절벽과 파도가 눈에 밟힌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이 무더위를 씻어줄 선물이자 우리 인생살이에 교훈을 주는 영화다.
 
글. 영화평론가_ 박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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