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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 부르다 내가 죽을 그 이름.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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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8-10-24

  • 조회수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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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두려워하랴. 차이를 딛고 하나가 되는 기쁨.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달릴 뿐이다. 영국 출신 폴 맥기건이 연출한 <필름스타 인 리버풀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의 두 연인을 보며 시 한 편을 떠올렸다. “기차의 육중한 몸체가 순식간에/ 그대 몸을 덮쳐 누르듯/ 레일처럼 길게 드러눕는 내 몸/ 바퀴와 레일이 부딪쳐 피워내는 불꽃같이/ 내 몸과 그대의 몸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짧은 불꽃/ 그대 몸의 캄캄한 동굴에 꽂히는 기차처럼/ 시퍼런 칼끝이 죽음을 관통하는/ 이 지독한 사랑/ 내 자궁 속에 그대 주검을 묻듯/ 그대 자궁 속에 내 주검을 묻네.” ( 채호기의 <지독한 사랑>). 필름 스타란 할리우드 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1923 ~ 1981)을 가리키며, 리버풀은 비틀즈와 축구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항구 도시. 범죄 스릴러 <리얼 맥코이>에 경비원으로 잠깐 얼굴을 비친 피터 터너라는 배우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수입사가 토막을 낸 본디 제목엔 무슨 의미가 담겼을까. 회고록에 따르면 동명의 책 제목은, 상심에 빠진 저자를 동료가 다독여 주는 말이었다고 한다. “스타 배우는 리버풀 같은 동네에선 죽지 않아.” 가볍지만 진심어린 위로.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면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반갑게 다가올 이름이다. <오클라호마>와 <지상 최대의 쇼>로 노래와 춤을 뽐냈지만, 범죄 영화에서 갱스터의 음모에 가담하거나 남의 집안을 파탄내는 게 글로리아의 전공이었다. <고독한 영혼>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얼이 나가도록 흔들었고, 커크 더글라스와 라나 터너를 앞세운 <악당과 미녀>에서는 시나리오 작가의 바람기 많은 아내 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따냈다. 무엇보다 요부 연기로 애간장을 녹인 <빅 히트>를 빼놓을 수 없다. 요염하면서도 앙칼진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아 마땅하다. 글로리아는 니콜라이 레이 감독을 비롯해 네 남자와 차례로 가정을 꾸렸는데, 네 번째 남편의 정체는 입에 담기가 조금은 민망하다. 그런데 폴 맥기건 감독은 도덕론자들이 개탄할 스캔들을 실명까지 밝히며 짓궂도록 까발린다. 화려한 남성편력, 그래서 마지막 사랑이 더 소중하고 맹렬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틸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력을 다진 맥기건 감독은 엽기적 상상력이 만개한 옴니버스 영화 <케미컬 제네레이션>을 선보인 뒤 스릴러 장르만 시원찮게 파고들더니 BBC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감각을 되찾았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을 준비하는 분장실. 빅 클로즈업으로 잡힌, 주름살도 아름다운 입술 모양이나 섬세한 손놀림만으로도 주인공의 경험과 능력을 짐작하게 한다. 글로리아 그레이엄 (아네트 베닝)은 한때는 팬덤을 거느릴 만큼 유명한 배우였으나 지금은 ‘썩어도 준치’ 신세로 연극 무대를 기웃거린다. 1981년 리버풀. “그대 날 떠나 멀리 갔지만 난 계속 살아가겠지. 나에겐 울 시간도 없으니까.” 어둔 밤길에 내려앉는 ‘소울 퀸’ 어마 토마스의 <I Haven't Got Time To Cry>노랫말이 심상치 않다. 형에게 야유만 받는 풋내기 연극배우 피터 터너 (제이미 벨)에게 우울한 소식이 날아든다. 쇠약해진 몸으로 나타난 글로리아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이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적막한 공간을 슬그머니 빠져나간 카메라가 기억의 문을 하나씩 여닫는다. 농염한 56세 여성과 한껏 들뜬 28세 사내는 어떻게 체온을 높일까. 마음 가는 곳에 몸도 가는 건가. 몸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머무는 건가.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존 트라볼타와 카렌 린 고니가 과시한 디스코 댄싱을 땀이 베이도록 따라하는 두 사람. 관능의 온도를 재고 싶을 지경이다. 연애 초반 데이트에는 공포 영화가 특효라는 건 익히 아는 사실. 영국의 대문호가 창조한 비련의 캐릭터는 복선으로 놓인다.
 

시간을 되돌리는 수법이 흥미롭다. 자르거나 이어붙이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현재와 과거를 매끄럽게 넘나든다. 날짜와 장소를 자막으로 알려주지 않았으면 헛갈릴 정도니까. 특히 거실 문이나 복도를 이용한 플래시백 솜씨가 그만이다. 새로운 형식은 아니고 할리우드 클래식의 인용이자 존경을 바치는 의도로 읽으면 된다. 배경을 투사하는 수법을 비롯해 글로리아가 자신이 출연한 <벌거벗은 알리바이>에 반응하는 모습이나 말리부 해변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리버풀과 뉴욕, 로스앤젤레스의 풍광이 로맨스를 다채롭게 물들인다. 우리말 발음도 어려운 ‘색줄멸(grunion)’은 10cm 길이에 줄무늬가 있는 물고기로, 캘리포니아 밤바다를 뒤척이는 묘기가 장관을 이룬다. 올드팝을 중심에 둔 음악은 드라마의 결을 잘 살린다. <중경삼림> 덕분에 널리 알려진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라틴팝의 대부’ 호세 펠리치아노의 낭랑하고 스산한 목소리에 담긴다. 꿈꾸는 자의 희열로 때로는 꿈이 꺾인 자의 비통함으로 흐르는 선율.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과 발레 선생님이 17년 만에 아들과 어머니로 호흡을 맞춘다. 뜨겁고도 애잔한 제이미 벨과 배려심 많은 줄리 월터스. 성큼성큼 잘 자란 배우와 곱게 늙는 배우를 보는 일은 즐겁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한 마디로 아네트 베닝의 영화다. 무르익었다는 진부한 표현 외에 달리 묘사할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쌓아온 관록은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증거이겠다.
 

히치콕 감독이 그랬다. “드라마란 지루한 것들을 잘라내버린 인생” 이라고. 글로리아와 피터의 관계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지루할 틈이 없지만, 가혹한 운명에 매이면서 두 사람은 더는 드라마를 쓸 수가 없다. 병든 애인을 둔 사내가 무대에서 간호사 역을 맡아 웃음을 끌어내야 하는 인생사의 아이러니. 세 치 혀는 잘 못 놀리면 비수가 되는 법이어서 피터가 내지르는 말들은 보는 이들 마음까지 찔러 후빈다. 각각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 같은 장면을 거듭 보여주는 수법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다투는 까닭을 밝히거나 ‘정 떼기’ 작전이라는 점에서 무리수로 보이진 않는다. “아낌없는 내 마음은 바다처럼 끝이 없고 사랑 또한 깊어요. 많이 줄수록 많이 갖게 되죠, 둘 다 무한하니.” 셰익스피어 비극의 달콤한 첫 키스가 이토록 숙연하게 비친 적이 있었을까. 아름답되 처연한 작별 인사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회고록을 펴낸 피터 작가가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는데, 궁금하더라도 아예 관심을 접는 게 좋다. 환상이 깨질 수 있으니까. 아네트 베닝의 마지막 모습은 ‘올해의 표정’ 상패라도 안겨주고 싶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영상과 환청으로 꽂히는 사운드, 영욕의 세월, 회오와 무상, 흘러가고 스러지는 삶 그리고 마음 속 외마디. 내가 부르다 죽을 그 이름,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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