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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흐린 세상과 시린 마음에 꽃등불 /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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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01-30

  • 조회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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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보모가 돌아왔다. 자그마치 54년 만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까만 우산을 잡고 내려와 후크 선장과 볼드모트 같은 악당을 때려눕힌 여성들을 기억하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는 아예 대놓고 시그니처 포즈를 흉내 낸다. 푸른빛 궁사 욘두 우돈타가 우아하게 하강하며 엉뚱하게 웃긴 그 패러디의 주인공이 바로 메리 포핀스다. 영국의 아동문학가 패멀라 린던 트래버스(1899~1996)가 펴낸 연작 소설 <메리 포핀스>는 1964년 스크린에 옮겨져 뮤지컬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타이틀 롤을 맡은 줄리 앤드류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메리’라는 이름은 지금도 보모를 지칭하는 품사로 여길 정도이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말썽만 부리던 남매가 빠져드는 환상과 모험의 세계. 사람들이 굴뚝 연기를 타고 지붕을 날아다니거나 그림 속을 드나들며 춤을 추는 경이로운 장면들. 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 많았던 사연은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월트 디즈니(톰 행크스)가 영화화 판권을 얻으려 23년 동안 트래버스(엠마 톰슨)를 설득했다는 사실이며 어릴 적 상흔과 치유는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Mary Poppins Returns)>를 연출한 롭 마셜은 브로드웨이 안무가 출신답게 뮤지컬 영화를 즐겨 찍었다. 할리우드 진출작 <시카고>는 춤과 음악이 신명나게 동업할 뿐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교차 편집을 이용해 같은 시퀀스를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신선할뿐더러 쇼 비즈니스 세계와 언론에 대한 야유, 갱스터풍 총격과 관능미는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을 만했다. 트로피 수집가로 불러도 좋을 만큼 상복도 터졌는데, 두 번째 뮤지컬 영화 <나인>에선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자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소문난 바람둥이 사내와 그를 에워싼 여성 7명의 현란한 쇼는 정신 사나운 퍼포먼스에 그친다. 말이 좋아 ‘버라이어티 뮤지컬 영화’이지 ‘영화’는 지치도록 ‘뮤지컬’ 뒤치다꺼리만 한다. 디즈니가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가져온 <숲 속으로>는 어설프게 재해석한 퓨전 동화였다. 숲보다 나무에 신경을 쓴 탓인지 감독은 자주 머뭇거린다. 투박하게 정리하면, 롭 마셜의 뮤지컬 영화 대전 성적표는 1승 1패 1무이다. 4번째로 도전한 마셜 감독에 거는 기대는 크지만 설렘과 불안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뮤지컬 영화의 속편은 기획 자체가 쉽지 않다. 노래와 춤이 뛰어나도 스토리가 빈약하면 약효 떨어진 재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원작의 명성이 높을수록 속편에 대한 부담감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눈치도 빠르게 뱅크스 집안의 족보부터 손에 넣은 롭 머셜은 말썽꾸러기 남매를 20년 뒤로 보낸다. “가로등을 끄더라도 슬퍼하지 말아요. 햇살이 런던을 훤히 비춰줄 테니.” 첫 장면에 흐르는 <Lovely London Sky>는 경제 대공황의 수렁에 빠진 시대라는 걸 넌지시 일러준다. 누나 제인(에밀리 모티머)은 미혼이지만 동생 마이클(벤 위쇼)은 아내와 사별하고 3남매를 키운다. 지지리 궁상 화가에서 파트타임 은행 직원으로 전업했으나 며칠 지나면 가족과 함께 거리에 나앉아야 할 형편이다. 착하되 세상 물정 모르는 홀아비가 탐욕스런 은행장 윌리엄(콜린 퍼스)의 흉계에 걸려든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증권만 찾으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어 구석구석을 뒤지지만 마이클의 눈엔 잡동사니만 잡힌다. 칙칙한 날씨와 치솟는 종이연, 회오리바람이 판타지의 출발을 알린다. 그때 그 자세로 귀환한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는 불우이웃 전담관 노릇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해. 불가능한 것들까지도.” 원작에서 포핀스의 조력자로 활약한 굴뚝 청소부는 가로등에 불을 붙이는 잭(린 마누엘 미란다)으로 바뀐다. 마법사와 점등원이라는 주요 인물에 이따금 추임새를 넣는 퇴역 해군 제독이 가세하면 디즈니 영화 특유의 포근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보존하되 영리하게 재활용하는 솜씨가 만만찮다. 세 녀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Can You Imagine That> 선율, 욕조 거품을 타고 미끄러지면 곧바로 깊고 푸른 세상. 디즈니가 30년 전에 건져 올린 <인어공주>를 생각나게 한다. 예전처럼 의인화를 시도하진 않지만 황홀한 유영과 해저 풍경만으로도 흐뭇하고 신난다. 꽃잎 날리는 동산에서 시작한 실사와 2D 애니메이션의 콜라보는 로얄뮤직홀 무대에서 정점을 찍는다. 합성 장면을 놓고 어색하다거나 유치하다고 투덜댄다면 꿈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동심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근엄하게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따지며 시비를 거는 건 어리석다. 원작 판권을 놓고 다투기 시작할 때 트래버스는 단 한 장면에도 애니메이션을 용납하지 않았다. 얄궂고 경박한 손장난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저질과 불량이라는 딱지를 떼기까지 만화는 온갖 수모를 견뎌야 했다. 우리에겐 아직도 “만화 같다”는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니까. 만화가 지닌 무한대의 상상력과 표현력. 영화의 숏이 만화의 칸을 따라잡기 불가능한 이유다. 롭 마셜의 내공을 보여주는 대목은 밤거리에서 펼치는 군무인데, 노래 제목대로 반짝반짝 판타스틱 행진이다. 자전거와 사다리, 횃불을 이용한 춤판은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인다. 곡예사와 체조선수 뺨치는 묘기와 역동성이 한껏 흥을 돋운다. 그리고 “인생의 안개를 뚫자”는 맹렬한 함성.
 

원조 포핀스는 물론 에밀리 블런트와 벤 위쇼를 비롯해 연기자 대다수가 영국 출신이다. 런던 중심가에는 지금도 가스 회사 직원들이 오렌지 빛 가로등을 밝힌다. 카메라는 곳곳을 돌며 영국 문화와 전통을 확인시킨다. 빨간 이층 버스는 기본이고 런던의 명물 빅 벤과 버킹엄 궁전, 세인트폴 대성당을 거쳐 로얄덜튼 도자기 자랑도 한다. 장면마다 오색 물감을 흩뿌린 듯 화려한 색채는 뮤지컬 장면들을 더욱 풍성하게 꾸민다. 과욕을 부리거나 무리수를 두지 않는 연출이 좋다. 디즈니표 돋보기와 영국산 망원경을 여유롭게 사용한 덕분이다. 에밀리 블런트에게 포핀스 역은 반갑지만 내키지 않은 모험이었을 듯싶다. “잘해보았자 본전”이라는 압박감. 언니보다 나은 동생은 아니지만 능란하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원작의 굴뚝 청소부 딕 반 다이크가 93세에도 씩씩하게 춤추는 장면을 보니 줄리 앤드류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단조롭고 성긴 이야기 짜임새와 악당이 싱겁게 퇴장하는 대목이 흠으로 비치지만, 티가 조금 있다고 해서 옥을 외면할 순 없겠다. “사람들이 끝이라고 할 때 시작이란 걸 보여줘.” “인생은 풍선, 희망과 즐거움으로 채워요.” “올라갈 일만 남았어.” 지혜로운 마지막 노래들이 후렴구로 맴돈다. 살벌한 경쟁심부터 배우며 건물주를 꿈꾸는 아이들. 고단하고 때론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흐린 세상과 시린 마음에 등불을 켠다.

 
글.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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