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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예산 고효율의 스릴러 / 영화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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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02-27

  • 조회수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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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럴 영상 한 편이 화제다.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확산된다고 해서 붙여진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은 어원대로 입소문 촉진 전략을 말한다. 특출한 광고 영상을 본 누리꾼들이 퍼 담거나 공유하는 식으로 전달해 상품을 알리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화제가 된 바이럴 영상은, 맛보기 수준으로 영화 장면을 소개하거나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 능청스런 대화를 곁들여 영화제 수상 경력과 나라 안팎 전문 매체들의 평가를 요란하게 띄운다. 제목마저 감춘 채 궁금증을 높이더니 개봉일이 미정이라는 사실만 강조한다. 영등위 등급 분류엔 아예 <개봉 미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명으로 신청해 12세이상관람가를 받았다. 흥행 작전치고는 생뚱맞고 치기가 넘치지만 나무랄 수는 없겠다. 돈냄새 물씬한 작품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마을버스 배차하듯 스크린을 몰아주는 판이니 궁핍하고 맷집 약한 영화인들에겐 언감생심, 눈치만 보다 나가떨어지기 일쑤이다. 관객 천만 명 달성도 놀랍지 않은 현실에서 ‘풍년거지’ 신세의 영화들은 쪽박마저 깨질까 두렵다. 언제쯤 극장에 걸릴지 모르겠으나 정체를 밝히는 게 좋겠다. <더 길티(Den skyldige, The Guilty)>라는 덴마크 영화다. 관람을 마칠 즈음에 원제는 ‘유죄’보다 ‘죄책감’으로 읽힌다.
 

 
첫 장편 <더 길티>를 발표한 구스타브 몰러 감독의 이력은 단출하다. 31세, 스웨덴 태생, 덴마크 영화학교 졸업, 단편 <어둠 속에서(In Darkness)>로 ‘Next Nordic Generation’ 상 수상. 감독 데뷔에 영향을 끼친 영화는 시드니 루멧 연출에 알 파치노 주연의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1975). 주인공이 한 자리에 붙박이로 앉아 대화나 모니터 화면으로 작품 전체를 꾸미는 방식은 새롭지는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로크>에서 운전대를 잡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사연은 통화와 독백만으로 풀려나간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는 90분 동안 관 뚜껑을 열어젖힐 생각이 없다. 전체에서 5분을 뺀 모든 시간을 생매장당한 남자의 목소리로 채운다. <서치>에서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노트북과 유튜브, 페이스북 등 디지털 영상만으로 사건을 매듭짓는다. <더 길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상영시간 내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앞질러 얘기하면 세 작품에 견줘 규모는 작고 서사는 간결하지만 몰입감과 반전은 조금 더 높고 강하다. 할리우드에서 제이크 질렌할을 내세워 리메이크에 들어간다는데 스포일러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
 

어둔 밤 112 긴급 구조 센터에서 근무 중인 아스게르 홀름(야곱 세데르그렌)은 약물에 취한 주정뱅이의 헛소리를 들어주거나 홍등가에서 지갑을 털린 남자가 내지르는 푸념이나 받아줘야 하는 처지다. 그가 발이 묶여 장난질 전화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은 중반부턴 대충 알아차릴 수 있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무렵 어느 여자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보채는 아기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여자는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차로 이동하는 상태라며 겁에 질린 목소리를 이어간다. 아스게르는 여자에게 “예, 아니오”로만 답변할 수 있게끔 유도해 납치범을 안심시키고 자동차 추적에 나선다. 전화가 자주 끊기자 다급해진 아스게르는 규정을 어겨가며 혼자 사건을 해결하려는데, 동료 대원들은 오지랖 넓은 그에게 눈총을 보낸다. 여섯 살짜리 딸과 갓난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 부부. 두 아이만 남은 집에 경찰관 친구를 보내고 본부에 차량 수배를 요청한 아스게르는 납치범의 신상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사건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이들을 찾아간 친구가 알려온 소식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현장이 아닌 구조 센터에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수단은 전화뿐이다. 아스게르의 동료들은 몇 마디만 건넬 뿐 구경꾼이자 드라마의 병풍에 머문다.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아스게르 곁을 벗어나질 않는다. 1인 밀실 실험극이자 공간의 미니멀리즘. 잘 들을수록 잘 보이는 원리. 집중력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릴 터이니 헤드셋을 착용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좋다. 클로즈업의 적절한 쓰임새를 비롯해 푸르고 붉은 조명을 번갈아 사용해 ‘내 코가 석 자’ 지만 본분에 충실하려는 사내의 피로와 불안, 고독을 담아내는 수법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정밀한 사운드 설계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본령을 확인하게 한다. 비 오는 소리와 차창을 닦는 와이퍼 움직임, 초인종 소리와 경찰차의 경적, 문 여닫는 소리 등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상상하는 일은 오싹하면서도 즐겁다. 한정된 장소에서 전화로 실시간 중계하는 사건사고. 청각으로 화폭을 짜고 소리로 붓질하는 경험은 흔치 않을 터이다. 잔혹한 폭력과 무책임한 성욕으로 한몫 보려는 영화들의 흥미를 훨씬 뛰어넘는다. 스웨덴 중견 배우 야곱 세데르그렌의 표정 연기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반전이 기발한 스릴러를 이야기할 적마다 빠지지 않는 영화가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이다. 특히 두 작품의 스포일러는 그야말로 천기누설 수준이었다. 각각 수수께끼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한 케빈 스페이시와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까발리면 ‘쳐 죽일 놈’ 취급을 받아야 했으니까. <더 길티>의 주요 정보 또한 그에 버금갈 정도이니 입이 근질근질해도 앙다물어야할 일이다. 인간적 이해와 긍정적 존중, 수용을 바탕에 둔 ‘감정이입’ 문제를 다룬 범죄 스릴러지만 한편으론 ‘구원과 속죄’의 주제로도 비친다. 결말부는 오스카 와일드의 따뜻한 독설을 떠올리게 한다. “성인과 죄인의 차이는, 성인은 누구나 과거가 있고 죄인은 누구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날개를 단 상상력.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와 강렬한 서스펜스, 경이로운 반전. 저비용에 고효율. 촬영 기간은 13일이면 충분했다는 점도 기록해야겠다. 자본과 스타가 영화의 완성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더 길티>를 본 영화인이라면 제작 여건 따위의 핑계를 늘어놓긴 어려울 터이다. 민망하고 구차한 변명, 그래서 유죄. 추리극과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있거나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이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다.

글.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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