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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시대의 빛과 그림자 / 영화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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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04-24

  • 조회수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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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인터넷으로 보내는 메일을 ‘email’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e’가 없어지고 그냥 ‘mail’이 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ebook’도 그냥 ‘book’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9년 전, 일본의 IT 저널리스트 사사키 도시나오가 <전자책의 충격>에서 종이책의 운명을 가늠해 본 대목이다. 그가 예상한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전자기기가 독서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인쇄술에서 네트워크로. 지적 공간의 새로운 생태계 구축. 길고 뛰어난 수명과 내구성, 저장성과 접근성. 구글은 십 수 년 전부터 도서관의 엄청난 책들을 코딩해왔고, 종이책을 팔던 아마존은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반듯하게 키워냈다. 음악의 디지털화에 성공한 애플도 태블릿 아이패드로 삼국지 전자전에서 컬러풀한 화력을 뽐낸 지 오래다. 버글스가 부른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미디어 변천사를 얘기할 적마다 수 없이 인용돼 온 노래다. 전자파에게 피습당한 종이책도 사망 신고를 내야할 처지에 이르렀나. 이제 종이책 읽기는 고상한 빈티지 취미로만 남을 것인가. 소멸이냐 공존이냐. 출판업계의 실상을 중심에 둔 프랑스 영화 <논-픽션(Non-Fiction)>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이들의 불안과 갈등, 고민을 숨 가쁘게 풀어놓는다.
 

연출을 맡은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아시아 문화와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프랑스 감독이다. 홍콩 영화에 열광한 청소년에서 열혈 청년 평론가로 문필을 날린 아사야스는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완령옥>으로 홍콩 영화를 세계에 알린 장만옥을 파리로 불러들였다. 줏대 없는 프랑스 영화 산업을 야무지게 꼬집은 <이마 베프(1996)>를 촬영하며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했으나 3년 만에 갈라섰다. 5년 뒤 <클린>에 장만옥을 다시 주인공으로 세운 아사야스는 동료로 돌아간 옛 연인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훗날 장만옥은 “영화를 보는 관점을 키워준 이가 아사야스 감독”이라고 술회했다. 난데없이 케케묵은 스캔들을 꺼내는 건 <논-픽션>의 결말부가 주는 느낌 때문이다. 아사야스 영화라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를 먼저 손꼽을 듯싶다. 거기서 스크린 안팎 배우들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한 연출에 감탄했다면 이전 작품도 찾아보기를 바란다. 예술의 가치와 영속성을 수채화처럼 새긴 <여름의 조각들>, 유럽 좌파를 사로잡은 제3세계 전사의 일대기 <카를로스>, 혁명과 예술을 함께 꿈꾼 시대를 되돌아본 <5월 이후> 등 소재는 다양하고 완성도는 높다. 이제 아사야스 감독의 재산 목록에 <논-픽션>을 추가해야겠다.
 

출판사 편집장 알랭(기욤 까네)은 전자책이 몰고 올 파장에 흔들린다. 오랜 친구인 소설가 레오나르(빈센트 맥케인)가 새 작품의 출간을 부탁하지만 창작자로서 그의 사고와 태도에 믿음이 가질 않는다. 알랭의 아내 셀레나(줄리엣 비노쉬)는 범죄 수사극의 강인한 캐릭터로 인기를 모은 배우인데, 감수성은 풍부해도 차기작 선택엔 지나치게 신중하다. 국회의원 비서관 발레리(노라 함자위)는 남편 레오나르와 달리 활달하지만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여기에 종이책 시대를 끝내고픈 로르(크리스타 테렛)라는 디지털 마케터가 끼어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프랑스 원제 <이중생활(doubles vies)>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종이책을 옹호하면서도 태블릿을 끼고 사는 나날, 가정에 충실한 이가 빠져드는 불륜, 자신의 경험을 허구로 포장해 활자로 옮기는 작가, 속아주면서도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 등 대다수가 위태롭게 경계를 넘나든다. 심리학자에겐 양가감정이나 딜레마로 비칠 수도 있겠다. 커피 한잔 즐기는 시간인 5분 만에 책이 나오는 ‘에스프레소 북 머신’. 도서관은 책의 창고로 머물 뿐 책의 내용은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증거일 터이다. “글로 된 인류의 기억 전체를 인질로 삼아 사용자들을 광고주에게 판다.” 2천만 권 이상을 전자화한 글로벌 기업의 폭주에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탄식한다.
 

상영시간 108분에 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1687개. 그야말로 언어의 향연 아니 말 폭탄이다.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르며 터뜨리는 작품과 인물을 거론하기엔 지면이 좁다.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과 베리만 연출작 <겨울빛>에 최근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보탠다.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에 원작을 제공한 시칠리아 작가 람페두사를 필두로 독일어권 문학의 이단아 토마스 베른하르트, 로맨스 소설의 대모 노라 로버츠, 철학자 아도르노, 화가 모네, 시인 말라르메 등 대충 추려도 어질어질하다. 신경증에 오지랖과 입심을 자랑하던 전성기의 우디 앨런이 울고 갈 지경이다. “서로 알지만 말려들고 싶진 않은 게 암묵이지.” “탈진실의 시대야, 각자의 선입관이 정해준 허구 세계에서 사는 거지.” 같은 아포리즘 수준의 대사를 쏟아내는가 하면, 신뢰나 소비 분석 알고리즘으로 정치인과 비평가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장소를 바꿔가며 토론과 논쟁을 이어가는데, 실없거나 허투루 사용한 대사는 찾기 어렵다. 따분하게 들리지 않거니와 현학 취미와도 거리가 멀다. 유쾌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건 상황과 비유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치적 소신과 무실서와 혼돈을 이야기할 땐 5세기 유럽을 거의 삼켰던 훈족왕 아틸라를 비롯해 정복자 칭기즈 칸,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인용하는 식이다. 대사의 리듬과 강약을 조절하는 카메라와 편집이 돋보인다.
 

과학기술의 총화로 일백년 가까이 군림한 필름이 몸 둘 바를 모르는 영화 시장.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놀던 영사실의 필름 돌아가는 소리도 멈췄다. 사라졌고 사라지는 것들. 미련과 반추, 향수. 아사야스 감독이 굳이 16mm 필름으로 촬영해 35mm로 확대한 이유일 것이다. 입자가 거친 영상이지만 몽당연필로 종이책에 밑줄을 긋는 것처럼 정겹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당당하다고 주장해도 불륜을 독려하거나 권장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 불륜 행위는 너저분한 패륜이라기보다 느긋한 바람기 정도로 비친다. 악다구니 치거나 징징대지 않으며 무책임한 욕정을 자극할 생각이 없다. 특히 야릇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에선 관록과 경륜이 느껴진다. “쿨하다”는 표현은 낡았어도 아직은 쓸 만하다. 근엄한 도덕론자라면 질색하거나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삶이라는 현실에 담긴 수많은 허구, 불안과 확신의 공존, 진실과 거짓의 충돌, 침묵과 은폐, 모순과 아이러니의 인생사. 실제 이름을 통해 짧지만 크게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은 주제와 맞닿아 있다. 픽션과 논픽션, 팩션이 뒤엉켜 도돌이표를 찍는 기분이다. 디지털 변혁의 시대를 맞아 관계와 상황과 흐름을 격조 있게 탐구한 <논-픽션>이 남긴 메시지는 두 대사로 요약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변하려면 모든 게 변해야 한다.” “관습과 기준을 넘어선 인간의 재발견이 디지털의 과제다.”
 
글.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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