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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은 특별해요, 이겨내세요 / 영화 <돈 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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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07-31

  • 조회수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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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워리(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자신을 소개한다. “난 존 캘러핸이고 생모가 누군지 몰라요.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에요.” 다양한 불행이라니, 세상 모든 고난을 떠맡은 듯한 처연함이 묻어나온다.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 포틀랜드에서 활동한 카투니스트 존 캘러핸 (1951~2010). 풍자만화 그리기가 본업이지만 음반을 낼 만큼 작곡과 노래에도 재능이 많았다. 영화 타이틀은 그가 펴낸 회고록과 카툰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캘러핸 작품은 얼핏 거칠고 잡스러워 보이지만 냉소와 해학으로 찌르고 비트는 유머 감각은 탁월했다. 그의 카툰이 신문과 잡지에 오를 때마다 독자들 평가는 열광 아니면 비난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국내에는 회고록이며 만화 모음집 등 캘러핸에 관한 서적은 출간되지 않았다.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Touch Me Someplace I Feel>(2007)과 몇몇 카툰은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는 있으니 다행스럽다. 구성에서 완성까지 <돈 워리>에 20여 년 세월을 쏟아부은 사람은 미국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다.
 

 
남들이 연습할 때 구스 반 산트는 실험한다. 첫 작품 <말라 노체>로 독립영화의 지평을 넓혔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와 <굿 윌 헌팅>,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 등 메이저와 비주류 영화판을 넘나들며 거둔 성과는 엄청났다. 변방을 떠도는 이들과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점도 기록해야겠다. 이제 그가 <투 다이 포> 이후 24년 만에 호아킨 피닉스와 호흡을 맞춘다. 풋내기에서 연기 도사가 된 배우와 늙수그레한 거장 감독이 재회한 <돈 워리>는 처음부터 기승전결 구성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존 캘러핸이 참석한 토크 모임과 강연장 두 곳을 오가며 현재와 과거를 뒤섞는다. 시공간이 널뛰듯 뛰어도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보다 집중력이 높은 건 매끄러운 편집 덕분이다.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이며 과정이나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른바 인간 승리로 내딛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적절한 방법이다. 사건을 파고들기보다 주인공이 맞닥뜨린 고통과 변화에 중점을 둔다. 반 산트 감독이 즐겨 쓰는 롱테이크 기법에 클로즈업을 빈번하게 사용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존 캘러핸 (호아킨 피닉스)에게 숙취 없는 아침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일찍이 13살부터 술병을 딴 사내가 맨정신으로 아침을 맞았다면 변고가 아니겠나. 예상치 못한 기갈에 오장육부가 난동을 부리자 낮술로 대응한 존은 술고래 덱스터(잭 블랙)와 새벽까지 달린다. 결국 존의 몸뚱이는 휴지처럼 구겨진 자동차에 낀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는 소문난 술꾼답게 이죽거렸다. “알코올 중독자란 자기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자다.” 바다보다 술이 더 많이 사람을 익사시켰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여기 중독자들은 저마다 푸념을 늘어놓는다. “술을 즐기며 혼돈을 만드는 것과 술에 의존해 혼돈을 만드는 건 얇은 종이 한 장 차이예요.” 뭔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익히 알고 있는 한 마디면 정리가 된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다음엔 술이 술을,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잃어버린 주말>(1945)과 <술과 장미의 나날>(1962)은 알코올 중독의 폐해를 소름이 돋도록 묘사한다. 거실 선반에 놓인 술을 바라만 봐야 하는 존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수영장 물 속에 가라앉으며 술을 마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한없이 부러웠을 터이다. 황홀했던 음주의 추억을 6개 숏으로 붙인 뒤 판타지로 연결하는 대목은 재치가 넘친다.
 

유년의 트라우마가 키운 주량인가. 폭음과 좌절, 고통을 전투 치르듯 묘사하지만 영화는 동정할 생각이 없거니와 갈등을 부풀리지도 않는다. 술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존이 술로 망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간다. 티베트 어느 첩첩산중 토굴에서 막 나온 듯한 리더 도니(조나 힐)는 존에게 자아 성찰의 1단계, 희망을 심는 2단계 등 금주와 치유의 12 단계를 제시한다. 존에겐 날마다 상처들과 씨름할 일만 남았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아누(루니 마라)를 만나면서 존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난다. 캘러핸 카툰이 중간중간 쉼표 찍듯 유머를 선사하고, 하나님을 사탄 인형 ‘처키’로 부르는 이유와 악마숭배에 모성을 얹은 스릴러 <로즈메리의 아기> 인용은 흥미를 더한다.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들보다 무서운 게 있겠어요?” 라는 대사에 꼬집히는 여자들 정체를 밝히진 않겠다. <마스터>와 <너는 여기에 없었다>로 베니스와 칸영화제를 장악한 호아킨 피닉스는 풍부한 표정으로 클로즈업을 너끈히 소화한다. 특유의 과장된 액션으로 허풍을 날리는 잭 블랙과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아름답게 나오는 루니 마라, 차갑고 무심한 척해도 속 깊고 지혜로운 조나 힐 등 조연진의 연기도 무르익었다.
 
 
무위자연의 삶, 도니가 설파하는 노자 철학은 고지를 눈앞에 둔 존을 통해 <도덕경> 28장으로 넘어간다. 원문은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으며 무극, 다시 말해 우주의 근원이 되는 조화로움의 지극한 경지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미워할 대상이 많았고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렸으며 자신을 돌아보길 애써 거부한 존. 용서라는 말처럼 무겁고 힘들고 어려운 게 또 있을까. 흔히들 관용과 화해를 용서와 한 덩어리로 묶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 했다. 용서할 만한 것만 용서한다면 용서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구스 반 산트의 담담하되 노련한 연출은 ‘용서와 치유, 자유의 시퀀스’ 라 부름직한 대단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을 두 남자가 나눈다. 치사량의 고독을 그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엔딩 크레딧을 감싸는 <Texas When You Go>는 생전의 존 캘러핸이 곡을 쓰고 직접 부른 노래다. 침대에 온몸이 묶인 채 신세를 한탄하는 존에게 아누가 속삭인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겠나. <돈 워리>가 특별한 영화로 다가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글.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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