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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영상으로 소통하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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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4

  • 조회수 283

영상으로 소통하는 세대
* 이 글은 위원회 공식 입장이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0. 문자에서 영상으로
 
아이들이 글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 시답잖은 영상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수천 년의 지식이 녹아있는 책을 멀리하고 곧 사라질 영상에 빠져 있다니. 어른들은 한숨을 쉰다.
“하라는 독서는 안 하고! 영상이 아이들을 다 버려놨어!”
 

고대 그리스의 교사와 학부모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기원전 6세기경에는 ‘하프를 연주하며 시를 암송하기’가 주요 교과목이었다. 이해하고 외워야만 시가 주는 교훈을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아이들은 쉽게 부서지는 점토판에 돌로 찍어 시를 새겨놓고 곁눈질로 외운 척을 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잔털이 엉성한 양피지를 나뭇가지로 긁어 시를 쓰고는 손에 숨겨놓고 외운 척을 했다. 시의 정신을 되새기며 외우지 않고 조악한 글자에 의존하다니. 어른들은 탄식하며 말했다.
“하라는 암송은 안 하고! 글자가 아이들을 다 버려놨어!”
 
음악과 시가 분리될 때도 어른들은 걱정했다. ‘음악 없이 어떻게 시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단 것이지? 음악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인데 말이지.’ 피리가 교과에 도입될 때도 어른들은 걱정했다. ‘손으로 연주하지 않고 입으로 피리를 불면 암송은 어떻게 하나?’
지금 생각하면 다소 엉뚱한 고민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이 아니므로 당시 어른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참담함을 알 수 없다. 다만 비슷한 질문을 통해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글자 없이 영상만으로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글자야말로 가장 훌륭한 정보전달의 수단인데 말이지.’ ‘검색해서 정보가 나오더라도 어느 정도는 암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 어른들의 걱정은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원전 8세기에 글자로 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있었지만, 글자가 장문의 글로서 거대한 담론을 다루게 된 것은 11세기부터의 일이다. 영상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달리는 말의 사진을 연속으로 보여준 ‘주프락시스코프’가 있었지만, 생생한 현존감을 보여주는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이 일상화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그런 영상문화의 목전에 서있다.
 
1. 다르게 걱정하기
 
서론이 길었다. 유튜브 리터러시를 연구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걱정’이다. 하루 종일 영상만 보고 있어서 걱정, 스트리머의 무례한 언행을 따라하니 걱정,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있어서 걱정, 온갖 걱정할 일들 투성이다. 어떤 스트리머들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마 소크라테스가 살아 돌아와도 작금의 상황을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고민해보자. 과연 이 걱정들 중 어디까지가 적정선의 걱정일까? 혹시 우리는 아이들이 시를 안 외운다고 ‘글자를 나무랐던’ 고대 그리스의 교사들처럼 ‘영상을 나무라고’ 있진 않을까? 우선은 걱정의 방향부터 올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영상을 많이 보는 것도, 짬을 내어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편집을 배워 주말 내내 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우리가 걱정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영상을 대하는 태도다.
 
 
기존의 영상에는 항상 거름망이 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든 영화든 아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상은 특정한 집단이나 기관에 의해 시정이 이루어졌다. 영상기술을 가진 제작자는 시청대상의 연령층을 염두에 두고 영상작업을 했다. 그것이 제작자가 가지는 최소한의 직업윤리였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다르다. 누구나 제작자가 되고 누구나 시청자가 된다. 대상 연령층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구독자와 조회수가 영상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 넘지 말아야할 선이 어디인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나는 규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채널을 삭제하거나 댓글작성 창을 막는 등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계정이 정지되면 새로 만들면 그 뿐이다.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미봉책으로 그친다. 지우고 지워도 다시 생기고 모방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다면 무엇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인가. 무엇으로 아이들이 영상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2. 구조로 접근하기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교육 연구모임 ‘미라밸(Work and Life Balance와 Media의 합성어)’ 연구원들은 플랫폼의 구조에 주목했다. 모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각각 내세우는 UI 및 UX 구조가 다르고, 이용자에게 허락된 인터랙션에 차이가 있다. 영상 플랫폼 역시 마찬가지다. 왜 유튜브와, 아프리카와, 트위치와, 틱톡과, 옥수수와, 넥플릭스는 서로 다른지. 무엇이 사람들을 특정 동영상 플랫폼으로 이끄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 차이를 연구원들이 내린 결론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미라밸’이 수행하는 8차시 교육의 가장 큰 목표다.
 
‘미라밸’의 8차시 교육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유튜브를 영상 플랫폼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구조적 분석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검색 알고리즘을 연구하게 한다. 검색에는 문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 음악, 지도, 영상 등 다양한 검색을 알아보고, 원하는 정보를 적합한 방식으로 찾는 법을 배운다. 다음으로 추천 알고리즘을 살펴보게 한다. 인식 범위를 좁은 틀에 가두지 않고 폭넓게 활용하는 법을 알아본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단원을 정리하며 자신만의 영상 플랫폼 이용기준을 정립하는 것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
 
 
구체적으로 유튜브 구조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플랫폼의 형태다. 보통의 이용자라면 홈, 인기, 구독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화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때 보이는 영상들은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에게 특화되어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참고해서 다른 영상 플랫폼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한다. 태어날 때부터 유튜브를 봐왔기에 별다른 의구심 없이 화면을 보아온 아이들은 그제야 화면의 구성요소를 유심히 뜯어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왜’라는 질문이 시작된다. ‘왜 카테고리별 영상은 이런 식으로 보여주지?’ ‘왜 좋아요 표시한 동영상은 따로 모아두지?’ ‘시청기록과 검색기록은 왜 저장하지?’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유튜브의 존재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플랫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준비가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색과 추천의 알고리즘이다. 검색은 하나의 점을 향해 수렴하는 과정이다. 수많은 영상이 떠있는 정보의 바다에서 내가 원하는 정답을 가진 영상을 솎아내는 행위다. 반면 추천은 하나의 점에서 무수히 많은 갈래로 발산하는 형태다. 내가 보았던 영상을 기반으로 비슷한 해시태그를 단 영상들을 찾아 추천목록에 계속해서 밀어 올린다. 예를 들어 가수 ‘잔나비’의 노래를 들었다면 그들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이 추천되는 식이다. 앞선 영상과 추천된 영상은 ‘잔나비’라는 해시태그로 이어져 있다. 해시태그의 용도는 검색 시 특정 내용을 찾기 쉽게 하는 것이지만, 영상을 추천할 때는 해당 해시태그와 동일한 해시태그를 쓴 영상들을 모두 끌어오기 때문에 불필요한 영상들도 함께 올라온다. 우리는 이것을 ‘해시태그의 역설’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평소대로라면 추천 영상이 떠있으니 별다른 의심 없이 영상을 눌러봤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5차시 수업인 ‘섬네일 달리기’를 예로 들어보자. 아이들은 각자 섬네일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해시태그를 3개 이상 작성해서 칠판에 붙인다. 먼저 나온 아이는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자신과 비슷한 해시태그를 가진 그림을 찾는다. 지목을 당한 아이가 나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지만 앞사람이 해시태그를 보고 추측한 내용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즉 해시태그만 같을 뿐 관계없는 영상을 클릭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추천 영상을 무작정 이어보면 시청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수업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아이들이 영상 플랫폼을 주체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플랫폼이 의도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비판적이고 선별적으로 영상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숨겨진 설정창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나만의 플랫폼을 만든다면 설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모두 동일한 목적이다. 콘텐츠 내용 역시 개개인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어른들이 특정 스트리머를 두고 ‘누구는 좋다 누구는 나쁘다’는 식으로 주입해서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용자 개개인이 스스로 더 낫다고 판단하는 제작자에게 구독과 좋아요로 힘을 실어줄 때, 그리고 그런 이용자의 선호도가 제작자에게 반영될 때, 비로소 플랫폼의 큰 흐름이 바뀔 수 있다.
 
3. 미래를 생각하기
 
다시 기원전 6세기 그리스를 생각해보자. 점토판을 가져오지 못하게 막고 양피지를 압수한다고 해서, 글자가 사라지고 아이들이 시를 술술 암송하게 될까? 글자의 편리함을 맛 본 아이들이 글자를 쉽게 포기할 리 없다. 기원전 9세기만 해도 문자는 구술의 단순한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형태는 자음만 존재했으며 단어를 기반으로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소통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ㅇㅈ? ㅇㅈ.”
이윽고 문장이 나타나고, 빠르게 마모되는 저장성을 극복하기 위해 종이와 인쇄가 발명됐다. 문자문화는 인류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글자는 그렇게 ‘아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영상은 어떨까. 컴퓨터와 스마트폰 접근을 제한한다고 아이들이 영상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보여준 유튜브 영상으로 ‘영상언어’를 습득한 세대다. 요즘 영상은 한 번 보고 휘발되는 영상이 아니다. 오히려 클라우드의 높은 저장성 때문에 ‘박제’를 걱정해야할 처지다. 글자가 쇼트(shot)라면, 문장은 신(scene)이다. 이제 아이들은 영상을 편집해서 영상으로 된 문장과 이야기를 만들고 소통한다. 앞으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로 이루어진 담화를 마주할 아이들에게 영상을 읽고 쓰는 능력은 ‘아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는 영상언어의 입지가 점점 커지는 시대다. 그러니 아이들이 문자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것을 너무 참담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일부에 불과한 부적절한 영상에 집중하느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영상을 못 보게 할까’ 골몰하지 말자.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영상언어를 세련되게 구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주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나은 영상을 선택하고 영상 플랫폼의 의도가 아닌 자신의 의도대로 영상을 이용할 수 있을지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이것이 영상문화 시대를 목전에 둔 어른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방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교육 연구모임 ‘미라밸’ 연구원 배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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