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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 영화 <빈폴>

관리자 2020-02-26 조회수 : 717

러시아 영화 <빈폴 (Dylda, BEANPOLE)>에 밑그림을 제공한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부터 열어보자. 책을 펴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를 일구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아 논픽션 형태로 풀어낸 작가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나치 군대와 스탈린 병사들이 맞붙은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고 긴 전쟁으로 꼽힌다. 4년 동안을 쉼 없이 싸웠으며 민간인을 포함해 3천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전쟁은, 늙은이가 일으키고 젊은이들이 죽는다고 했던가. 탱크를 몰고 돌진하는 소녀들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에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그들 호칭대로 대조국전쟁에 지원한 소련 여성은 백만 명이 넘는다. 알렉시예비치는 기꺼이 살육전에 뛰어든 200여 명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탄식이자 비명이며 더러는 아스라한 낭만이다. 싹이 난 감자처럼 들판에 뒹구는 시체들, 눈알이 뽑히고 가슴이 잘린 간호병, 터져 나온 내장을 배 안으로 밀어 넣는 부상병, 지뢰를 안고 달려가는 임신부, 남자 병사들 앞에서 생리혈을 쏟으며 걷던 행군, 적군에게 들킬까봐 우는 아기를 늪 속으로 넣었던 엄마, 사탕을 잔뜩 싸들고 오거나 총부리에 제비꽃을 꽂는 소녀. 생생한 증언인데도 꾸며낸 이야기로 믿고 싶을 만큼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


 

일찍이 호메로스가 기록한 트로이 전쟁을 필두로 인류의 모든 전쟁사는 남자들 언어로 쓰인 영웅 서사였고 영광도 상처도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 작가가 책 제목에 여자를 내세운 까닭을 알아채긴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전쟁에 참여한 어머니와 누이들이 쏟아낸 눈물과 절규에 충격을 받고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칸테미르 발라고프 감독은 아래 목소리에 밑줄을 그었을 듯싶다. “나는 전쟁을 회상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도 내 모든 삶이 전쟁 중이니”. 카메라는 날마다 내면의 백병전을 치르는 이들을 느리게 따라잡는다. 배경은 1945년 가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신음인지 딸꾹질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와 함께 넋이 나간 듯 차갑게 굳은 어느 여성의 얼굴이 크게 잡힌다. 얼굴이 꼬집혀도 반응이 없고 막대처럼 뻣뻣이 서 있더니 한참 뒤에야 정신이 돌아온다. 전쟁에서 얻은 뇌진탕으로 이따금 온몸에 마비가 오는 이야(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는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다. 러시아어 영화 제목 ‘Dylda’는 키다리를 가리키는데 야물지 못한 사람을 놀리는 말로도 쓰인다. 이야는 궁핍한 생활에 발작 증세까지 겪지만 어린 아들과 놀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아들의 재롱이 더 없이 즐겁던 어느 날 어미의 경직된 육체는 시간까지 화석으로 만들어버린다. 초현실주의 무성영화 한 장면처럼 몽롱하고 아득하다. 몸을 이길 수 없는 정신의 슬픔.


 

승리는 했지만 900일내내 폭격을 맞은 레닌그라드는 폐허가 되었다. 일상을 꾸려가기에도 모든 게 부족했고 병원엔 몸도 마음도 조각난 병사들로 넘쳐난다. 저격수로 이름을 떨쳤으나 이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남자를 이야가 보살핀다. 실없는 농담이나 던질 뿐 그에게는 사는 게 죽는 일보다 고통스럽다. 가족에겐 짐이 될까봐 두렵고 스스로 결단을 내릴 기력도 없다. “미안해, 전쟁 때문에.” 평안을 찾은 이가 못된 세상에 남긴 인사가 가슴을 저민다. 함께 사투를 벌였던 전우 마샤 (바실리사 페렐리지나)가 돌아왔지만 이야는 수상쩍게 뒷모습으로만 반긴다. 사흘 밤낮을 통곡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마샤는 전혀 분노하지 않는다. 세상사에 달관한 도인 같은 미소는 아리송하고, 수줍은 건달 사내와 나눈 쾌락은 우스꽝스럽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복수심에 베를린까지 진격했던 마샤에겐 몸이 품은 비밀이 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누군가 옆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서…… 감독이 영감을 받은 알렉시예비치 책에는 수많은 말줄임표가 있다. 목소리를 끊고 잇기를 반복하는 작은 점들은 머뭇머뭇 기억을 불러내거나 몇 십 년을 숨겨온 감정을 토해내게 한다. 카메라도 줄임표를 찍듯 인물들의 대화는 물론 불안과 두려움, 침묵까지 떨리는 호흡으로 담아낸다. 카메라를 삼각대 받침 없이 들거나 어깨에 맨 핸드헬드 촬영과 클로즈업 기법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유이다.


 

 

트라우마란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닥칠 뿐 아니라 통제도 어렵고 평생토록 지속되는 경우가 적잖다. <야곱의 사다리><하얀 전쟁> 등 전쟁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라면 피로 물든 전장과 주인공이 악몽에 짓눌린 현재를 오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빈폴>은 이야와 마샤가 대공포를 쏴댄 병사로 활약했는데도 전쟁터로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다.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내상을 입은 지금의 참혹한 상황만 조용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몸에 남은 흉터보다 더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 그래서인지 설정은 기이하고 묘사는 리얼하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주도권을 다투며 나가는 과정은 미스터리 영화에서 보임직한 긴장감이 묻어나온다. 카메라로 붓질하듯 정교하게 구성한 화면도 눈여겨볼만 하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화폭을 연상시키는 영상들은 눅눅하되 신비스런 분위기가 물씬하다. 두 여성에게 번갈아 입힌 컬러는 상황과 심리 변화에 따라 바뀌는데, 붉은색이 상처와 소멸이라면 초록색은 소생과 성장을 나타낸다. 스크린에 처음 도전한 두 여성은 배역에 딱 맞아떨어졌을 뿐더러 표정 연기가 좋다. 연출과 연기, 촬영을 모두 20대 젊은이들이 맡았다는 점도 기록해야겠다. 묵직하지만 노쇠해진 러시아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나폴레옹에게 망신살을 안겨준 선조들처럼 히틀러를 헛물만 켜게 만든 소련의 여성 병사들은 의기양양 승전가를 울리며 돌아왔으나 환대는커녕 군대의 암캐로 내몰리거나 매춘부 취급을 받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런 모욕과 수모의 세월을 되돌리는 지점이다.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고 카메라도 인물들 표정 잡기에 바쁘다. 링에 오른 선수들처럼 탐색전으로 출발해 잽을 주고받는데 회심의 일격은 언제 누가 날릴 것인가. 앙갚음과 공허함이 엇갈리고 밖에선 트릭을 슬쩍 얹기도 한다. 코피가 그토록 붉디붉은 액체일 줄이야. 가뜩이나 힘겨운 여자들이 쓸데없이 자주 벗는다고 시비를 걸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여성의 발가벗은 몸을 몇 차례 보여주지만 선정성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형태도 반응도 다른 죽음들 그리고 야릇한 갈등, 특히 마샤가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계략은 스포일러일 터이니 밝히긴 어렵다. 대신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말을 옮기겠다. “......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에겐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전쟁이 있을까. 한 번도 없었고 결코 없을 터이다. <빈폴>은 야만의 얼굴을 한 전쟁과 그 야욕이 남긴 상처를 아프도록 덧낸다. 어둡고 질펀한 길에 선 이들의 절박한 몸부림, 어쩌면 씩씩한 연대일 수 있는 엔딩에 어울릴 구절 하나를 찾았다. “사람은 시대와 이념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영상물 등급위원회이(가) 창작한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 영화 <빈폴> 저작물은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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