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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영화 샛별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장>

김한슬 2020-03-25 조회수 : 4373

봉쇄와 격리, 기피와 탈출. 바이러스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현실에서 겪게 될 줄이야. 보이지 않는 실체가 입히는 치명상이어서 공포는 더욱 섬뜩하게 옥죄어 온다. 흉흉한 세상 탓인지 영화계도 온통 뒤숭숭한 분위기다. 쾌적하게 질주하던 열차가 불이 꺼진 채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랄까. 무관중 경기야 가능하겠지만 무관객 상영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나날이 어두워지는 상황에 작은 영화 두 편이 불을 켠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이장>이 환하게 앞을 밝히는데 반갑고도 안쓰럽다. 눈칫밥 먹는 저예산 독립 영화가 마스크로 덮인 극장가에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만든다, 는 사실만 다시금 강조할 수밖에.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소재를 선택해 매끄럽게 풀어낸 솜씨에 박수부터 보낸다. 단편 영화로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진 김초희 감독과 정승오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을 보여준다. 망가진 만큼 막막해진 삶을 홀로 견디는 마흔 살 여성을 위로하고 격려하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 아직껏 남아 있는 악습과 병폐의 고리를 끊으려 나선다. 두 작품에 나온 배우들은 그다지 낯익은 얼굴이 아니지만 모두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관현악 협주로 까만 화면을 삼키는 쇼팽의 장송 행진곡부터 수상쩍더니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시작하자마자 느닷없이 한 방을 먹인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 판에 무슨 놈의 복 타령일까. 영화 프로듀서로 달려왔지만 하루아침에 문화 건달이 된 찬실(강말금)은 산동네 복실 할머니(윤여정)집으로 이사를 간다. “영화하다가 연애도 못하고 아도 못 낳고 땡전 한 푼 없이 이래 가는가보다.” 이름도 실속도 없이 예술 영화만 고집하다 청춘을 날린 여성의 이력이자 푸념이다. 자매처럼 지내온 배우 소피(윤승아) 집안일을 거들며 궁기를 해결하는 찬실은 젊고 잘 생긴 프랑스어 선생에게 홀랑 빠진다. 그런데 138억 살 우주 나이만 따지며 김칫국부터 마신 게 탈이었다. 영화일도 로맨스도 꼬일 즈음에 등장한 귀신이자 귀인은 홍콩 배우 장국영. <아비정전>에서 맘보춤을 추던 옷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흐느적이는 그 몸짓, 느긋한 그 표정이 그립다. 말동무에서 길잡이로 나가는 장국영 (김영민) 에피소드는 꽤나 참신하고 기발하다. 팍팍한 현실과 몽롱한 환상의 우물에서 길어내는 우습고도 따뜻한 슬픔. 유령의 잦은 출몰은 엉뚱한 재미만 겨냥한 게 아니다. 꿈을 찍고 영혼을 불어넣으며 세월을 이기는 영화의 영원성을 깨닫게 한다. <동경 이야기>의 쓸쓸함과 <집시의 시간>을 꾸민 마법도 서서히 잔잔하게 스며든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영화광 백수 노처녀를 내세우지만, 난관을 극복하려 청승을 떨거나 예술 강박에 요동치는 자의식 따위로 겉멋 부리지 않는다. 나이도 성격도 형편도 전혀 다른 세 여성을 대비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눈여겨볼 일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지만 애써서 한다, 는 복실 할머니의 단조롭되 성실한 세상살이는 어떤 요란한 설법보다 울림이 크다. 까치밥처럼 매달린 모과와 비밀스런 골방에 놓인 소품들, 죽은 이의 낭랑한 목소리와 나태주 시인의 <풀꽃> 등 감독은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숨겨놓고 하나씩 의미를 캐게 만든다. 요즘 여성 영화인들 독서량이 대단하다. <벌새><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냈고 이번엔 당나라 고승 임제선사의 <시중편>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이든 어떤 상황이든 주눅들지 말고 네 멋대로 살라는 가르침이겠다. 밝고 씩씩하고 때론 능청스런 찬실을 살아낸 강말금은 이 작품이 건진 복덩이다. 어둠 속에서만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결말부에 찍힌 김초희의 인장이 빛난다.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유령이 남긴 메시지는 마음을 흔든다. 그런데 똑같은 의상을 입히고도 맘보춤을 이끈 마리아 엘레나 (Maria Elena)’ 연주는 한 번도 들려주지 않는 걸까. 궁금하고 아쉬움이 크다.


▲ 영화 <이장> 스틸컷


<이장>은 다섯 남매의 맵고 쓴 이야기를 다룬다. 딸 넷에 막둥이가 아들이라면 딸 한 명에겐 후남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했다. ()’에 사내 ()’, 다음엔 반드시 아들을 얻고야 말겠다는 옛 어른들의 맹세이자 불확실한 욕망. 지금은 달라졌지만 20년 전만해도 한국 신문의 부고란은 가부장, 남성주의의 전시장이었다. 망자가 여성이면 이름 자체를 알릴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는지도 모를 해괴한 부음이다. 아들과 사위는 당연히 유족 명단을 차지하지만 딸은 얼씬도 못한다. 개인으로 살기도 어렵지만 개인으로 죽기는 더욱 어려운 여성의 운명이었다. 초등학생 꼬마 (강민준)가 행패를 부리는 첫 장면은 <이장>을 에워싼 공기를 짐작케 한다. 아버지 묘를 옮기기 위해 혜영 (장리우)은 흩어져 사는 세 여동생들을 픽업해 큰아버지 집에 온다. 하지만 장남 없인 이장도 없다는 큰아버지의 불벼락 호통에 네 자매는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집안 외아들이자 장남인 막내 동생(곽민규)을 찾아 나서면서 누나들 사연이 짧게 소개된다. 육아 문제로 직장을 잃게 된 싱글맘, 속 썩이는 남편 때문에 자주 폭식하는 아내, 결혼을 앞두고 계산기만 두드리는 현실주의자, 졸업까지 미루며 여성 인권을 부르짖는 대학생 등 모든 고민거리가 남자와 얽혀 있다. 작은 일에도 티격태격하는 자매들의 노곤한 표정에 가부장제 그림자가 겹친다.



▲ 영화 <이장> 스틸컷


군림하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큰아들. 굴욕과 모멸에 희생을 보탠 어머니와 딸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겪거나 귀담아 들었을 내용인데, 영화는 싱싱하게 파닥이기보다 쌈밥에 곁들이는 된장국의 깊은 맛을 선사한다. 새파란 녀석부터 늙은이까지 나오는 남자마다 국가 대표급 심술을 자랑한다. 얼마나 얄밉고 옹졸하고 고약한지 누군가 줄 세워 꿀밤을 놔줘도 말리고 싶지 않다. 여성이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상황은 실감나고 대사는 찰지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정승오는 남성 동지들을 옹호하거나 동정할 생각이 없다. 전통과 인습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뻔뻔한 태도를 신랄하게 때로는 에둘러 비판한다. 성별 따라, 세대 따라 펼쳐지는 전투가 맹렬하고 우습다. 큰아버지가 여자는 아들 낳는 게 임무라며 으름장을 놓으면 조카는 고추가 벼슬이에요?”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뛰어난 연기와 끈끈한 팀워크로 드라마의 균형을 맞춰나간 장리우와 이선희, 공민정과 윤금선아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가끔 도식성이 비치긴 하지만 전체 완성도를 깎아내릴 수준은 아니다. 딸들에게 판정승을 안겨준 영화는 쑥스럽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며 악수를 건넨다. 이장은 무덤을 옮긴다는 뜻인데 파헤쳐 뒤집는 일로도 읽힌다. 가부장제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폐습을 굴삭기의 굵은 갈퀴손으로 갈아엎었으니까.



. 영화평론가 박평식



* 스틸은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홍보용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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