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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이 영화음악에 빠져드는 이유는

김지현 2021-04-21 조회수 : 410

[시네톡톡 – 칼럼]

당신이 영화음악에 빠져드는 이유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진행한 지 20년이 넘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을까.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수많은 영화음악과 사람들, 사연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그 특정한 시공간에 머물렀던 우리의 마음들은 어디에 간직되고 있을까. 지금도 <신지혜의 영화음악>CBS 음악 FM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이지만 가끔은 지난 시간 속 함께 했던 우리들을 떠올려보곤 한다가끔씩 드는 생각이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이토록 오랫동안 들을 수 있을까.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앞서 말했다시피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놀랍게도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듣는 분들이 있다. 보통 10년 안팎의 청취 이력을 자랑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늘 궁금하다) 그건 아마도 이야기와 함께 하는 음악이라서 더 특별함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야기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문화예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인간은 늘 이야기와 함께 하고 있고 함께 해왔으며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떠올려 보자. 어릴 적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때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침을 꼴깍 삼키던 때를. 때론 흥분하고 때론 무서워하고 때론 뭉클해하며 이야기를 듣곤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경험이 없다면 그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또래집단들과의 놀이 속에서도 이야기는 늘 등장하곤 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소꿉놀이를 할 때도 역할 놀이를 할 때도 그 놀이를 지탱해 주는 것은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였지 않은가.

 

학창 시절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하고 무언가 상상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에겐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지금 문화콘텐츠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다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화콘텐츠들, 이를테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그림, 조각, 게임 등의 토대가 되는 것은 어김없이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들은 서사의 형태로 문장의 형태로 오브제의 형태로 이미지의 형태로 표현되고 수용자들은 그렇게 표현된 문화콘텐츠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라는 문화콘텐츠로 범위를 좁혀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마도 영화 감상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만큼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문턱이 낮으며 손쉽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최다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다. 물론 유럽의 영화들은 그 시작과 지향점이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 영화와 달랐지만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잠깐 되짚어 보자.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의 동시에 영화발명되었다. 초기에 영화는 대중들에게 일종의 놀이, 과학으로 치부되었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연극-예술과는 다른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초창기 영화는 스스로가 예술을 지향점으로 삼고 영화가 연극과 같은 예술의 한 분야임을 정립하고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는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인 듯하지만) 영화는 7의 예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어쨌든 영화는 스스로 예술이 되었고 영화라는 예술은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체가 된다. (실제로 혁명가 레닌은 당시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던 소련에 혁명을 알려야 했지만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탓에 혁명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레닌은 효과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이용하였다)

 

초창기 영화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미국과 유럽은 차이를 보였는데 (사실 유럽의 영화는 각국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큰 시각으로 공통이 되는 지향점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할리우드가 서사-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지향했다면, 유럽의 영화는 이미지, 미장센에 중점을 두어 관객들이 영화에 깊이 빠져들지 말고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스스로의 해석을 내림으로써 영화가 완성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결국 영화는 이야기가 뼈대가 될 수밖에 없고 이 문화콘텐츠의 수용자들은 한 편의 영화가 건네는 이야기에 매료된다.

이제 영화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자. 오쓰카 에이지의 이야기론에 따르면 하나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인도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일상의 공간인 이쪽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주인공은 어떤 계기로 인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극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겠지만 주인공의 시점에서 본다면 일상을 벗어나 일종의 모험 또는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것이 저쪽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저쪽 세계를 경험한 주인공은 다시 자신의 일상의 공간인 이쪽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이쪽 세계로 돌아온 주인공은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쪽 세계의 경험이 이전의 그와 지금의 그를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는 저쪽 세계의 경험을 하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야기들에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대입해본다면 아마 이 이야기론이 더욱 밀착되게 다가올 것이다우리가 영화 한 편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저쪽 세계로 잠시 다녀오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을 생각을 스치는 감상이 생기고 마음에 생각에 남는 영화들-이야기들이 쌓인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기 이전의 나와 그 영화를 본 이후의 나는 같을 수 없다. 이미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왔기에 이전의 나와 미세하게 혹은 강렬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 차이를 깨닫게 된다.

 

다시 영화음악으로 돌아오자.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정말 많아서 우린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부르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은 상당히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영화에 음악을 쓰지 않는 감독들도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영화음악은 장면의 분위기를 전달해 주는 도구이고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전체적인 영화의 톤을 잡아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서사를 다른 측면에서 맡고 있는 것이다. 영화음악이 모두 서사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받쳐주는 영화음악은 그 스스로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확실히 영화음악의 본질인 스코어에서 두드러진다. (당연한 말이겠다. 그 영화를 위해 쓰인 스코어만큼 그 영화를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것이 없지 않겠는가) 장면에 걸맞은 기존의 곡을 인서트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글자 그대로 그 장면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곡을 삽입하는 것이고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영화음악은 그래서 우리를 저쪽 세계로 데려가는 가이드와도 같다. 이미 경험했던 기억을 순간적으로 되살려 주고 그 시공간을 찾아주며, 경험하지 못했던 기억이라면 새롭게 만들어 주어 잠깐의 시간 동안 다른 우주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영화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신지혜 (시네마 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참고도서

<스토리 메이커> 오쓰카 에이지 지음. 북바이북

<영화의 이해> L쟈네티 지음. 김진해 역. 현암사

<세계영화사> C 앨리스 지음. 변재란 역. 이론과실천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제프리 노엘 책임편집. 이순호 외 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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