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Quick menu

[칼럼]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에 빠져든다

김지현 2021-06-09 조회수 : 194

[시네톡톡 – 칼럼]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에 빠져든다


수년 전 주변 사람들이 한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이며 바로 우리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기가 막히다는 감상들을 쏟아내면서 다들 한 마디씩 잊지 않았다. 꼭 보라고이상하게도 꼭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게 되는 작품이 있고 채널을 돌리다가 꼭 그 장면만 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 별로 챙겨 볼 마음도 아니었는데 그냥 어쩌다 보고는 흘려보내는 작품도 있고. 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 편만한 콘텐츠이지만 결국은 나와 연이 닿아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준비와 함께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어 지인들이 그렇게 추천해 주었던 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 드라마는 바로 <나의 아저씨>이다. 1회를 보면서 어쩌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영화 한 편이 떠올라 버린다. 어라, 이 드라마 <타인의 삶> 같잖아! (어쩔 수 없다. 나는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고 실제로 영화 콘텐츠를 훨씬 많이 접하게 되니까)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타인의 삶> 스틸 컷


독일이 통일되기 수년 전. 비밀경찰 비즐러는 냉철하고 감정의 동요가 없으며 그 누가 되었든 끈질기게 고문을 해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비밀경찰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질문이 나오면 그 학생의 이름에 표식을 남기며 언제 어디서고 늘 안정되고 무감하며 차분한 표정으로 무장한 사람인 비즐러.

 

그에게 비밀리에 임무가 주어진다. 동독 최고의 극작가 라슬로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최고의 배우인 크리스타를 감시하라는 것이다. 드라이만은 동독의 신념과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걸릴 만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동료이자 상관은 장관의 명령이라며 라슬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말고 뭔가 꼬투리를 잡아내라고 압박한다. 그렇게 그는 라슬로 드라이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집이 비었을 때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장치와 모니터를 설치하고 비즐러는 그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 그의 행동과 말에는 의심을 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재능을 가진 좋은 극작가이며 이념에도 문제가 없고 사생활도 깨끗하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동독의 시민일 뿐이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을 감시하라고 했는지 냉혈한인 비즐러조차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비즐러는 그의 집 앞에 선 차 한 대를 보게 된다. 차에서 내리는 여자는 크리스타. 그리고 그 차는 문화장관의 차이다. 그렇군. 순진한 라슬로 모르게 여자는 장관과 다른 짓을 하고 있군그래. 아마도 이 지점에서 비즐러는 라슬로에게 아주 작은 동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을 감시하고 도청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겠지만 비즐러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모르게 드라이만이라는 사람에게 감동하고 그의 삶에 빠져든다. 도청장치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그가 이야기한 책을 슬쩍 집어와 읽는다. 그렇게 그는 변화한다. 자신이 도청하는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감동을 받으며 그 감동이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영화는 사실 누군가의 삶을 (혹은 삶의 일부를) 엿보는 행위와도 같다. 실제로 영화이론가들은 관음증을 영화이론으로 끌고 왔고 관객들은 카메라를 통해 훔쳐보기라는 욕망을 충족한다. 관객들 스스로가 그 점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말이다아마도 영화와 관음증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엘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들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레이스 켈리와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이창 rear window>은 아예 주인공이 망원경으로 건너편 이웃의 집을 대놓고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사진작가 제프리스인데 다리를 다쳐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되면서 무료함을 달래느라 자신의 카메라를 대체할 망원경을 손에 쥔 것이다. 그렇게 이웃의 생활을 엿보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이때부터 영화는 히치콕의 전매특허인 서스펜스로 진입한다. (제프리스는 남의 사생활을 엿보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에 따른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 사건 해결에 일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에 빠져든다. 

생각해 보라.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우린 시작부터 누군가에게 (주로 주인공) 이입이 된다

그래서 그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가 처한 상황과 헤쳐 나오는 용기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영화는 타인의 삶을 자세히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매체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전지적 시점을 갖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이나 마음을 알 리 없는 타자들은 그를 구박하고 그를 옥죄고 그를 슬프게 만들고 그에게 행복을 주며 그를 도와주지만 그들 서로는 서로가 어떤 심경인지 서로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알 바 없다. 서로가 타자이며 타자에 대해서는 드러나는 표면밖에 볼 수 없고 그 표면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일부분만 있을 뿐.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관객은 주인공이 다른 등장인물 앞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미처 행동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겉으로는 그렇게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관객은 쉽게 (자신이 감정을 이입한) 주인공의 입장이 되고 전지적 시점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를 이해하고 편들게 된다. 그것은 또 그를 이해하는 근거가 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렇게 타인을 이해하는 근거를 갖는 것과 다름 아니다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돌아와 보자. 그 또한 박종훈이라는 영화를 보는 이지안이다. 박종훈의 24시간을 도청하면서 이지안은 그의 삶에 이입된다. 회사에서는 전혀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던 접점도 별로 없었던 부장이지만 그를 도청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주변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가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 사진 출처 :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타인들 앞에서는 늘 괜찮다는 얼굴이지만 혼자 길을 걸으며 내뱉는 깊은 한숨은 그의 내면이 얼마나 타들어가고 있는지 그가 얼마나 큰 짐들을 어깨에 지고 있는지 그가 얼마나 쓸쓸한지 말해주고 있으니 박종훈에 한 해 전지적 시점을 가지게 된 이지안은 (마치 영화를 보듯) 그에게 이입되지 않을 방도가 없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박종훈의 삶에 개입하게 된 이지안에게 박종훈 외의 다른 인물들은 영화 속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조연내지는 엑스트라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집중해서 보게 되는 사람 박종훈은 이지안이 보는 영화속 주인공이니만큼 깊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만 다른 조연이나 엑스트라는 이입할 이유가 없고 그럴만한 여지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지안에겐 박종훈만 중요한 사람이 되고 그의 마음만 중요하다.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이니까.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주인공이니까.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것조차 주인공의 삶만 특별하게 비춰주는 거시의 세계이다. 그래서 영화 <타인의 삶>에서 비즐러가 크리스타에게 하는 말은 큰 의미를 가진다.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많은 이야기를 담은 대사인가. (크리스타 자신을 그가 단순히 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 주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신지혜 (시네마 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제작 및 진행)

 

참고도서

<영화사전> 김광철, 장병원 공저. 미디어2.0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 가지 것들> 구회영 저. 한울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영상물 등급위원회이(가) 창작한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에 빠져든다 저작물은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목록